1.

"달궁 마을에 살았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옆으로 보나 온통 산. 여기서 나고 자라 세상이 다 이렇게 생긴 줄 알았는데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여기가 산 중의 산 지리산이라고 했다. 관심이 없다가 그 사람들이 봉우리를 꼽아줘서 이름도 알았다. …… 올라본 적은 없다. 만날 나물 따고 송이 따러 가는 길이 온통 산인데, '산에 놀러 가라'는 내게 천부당만부당이었다."

"별명을 가진 논들도 있다. 옛날 어느 농부가 자기 논을 세어 보았는데 하나가 모자랐다. 그는 갸우뚱거렸다. 벗어놓은 삿갓을 집어들었더니 그 속에 논이 숨어 있더라 하여 '삿갓배미'다. 물론 피아골 논만 대단한 예술품일 리 없다. 완만한 구릉이든 까마득한 비탈이든 계단식 논들은 모두 먼 옛날 누군가의 첫 손길로 깎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다듬어졌다."

"사람살이가 켜켜이 쌓인 옛길을 걸으면 시절들이 포개어진다. 깊은 산마을이 겪은 국가폭력, 그리고 산업화의 그림자가 차례로 지나간 폐교 운동장에 해가 기울었다. 기대 이상 길이 예뻤다고 기분이 허공으로 방방 뜨려던 찰나, 마지막에 등장한 폐교 운동장이 길손을 땅으로 끄집어내렸다."

한국방송출판 제공 그림.


"지리산 조망을 좋아하는 이라면 특히 창원마을에서 발을 떼기 어렵다. 지리산의 최고봉들이 이 마을에선 시원스럽게 건너다보인다.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로 본다. 마을 돌담길 사이로, 감자꽃 활짝 핀 밭 사이로, 논둑 저편에서 돌아보면 천왕봉이 있다. 배낭을 짊어지고 줄을 둥 살 둘 올라야 맛보던 눈의 호사를 마을길에서 누리다니, 무임승차를 한 것만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터널과 4차선 도로가 아니라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 주민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큰 도로가 나면 관광객들이 인월과 산내를 들르지 않게 되리라는 생계 차원의 이유도 있었다. 확장 공사는 마침내 저지되었고, 주민들은 기념으로 '강 따라 길 따라 60번 지방도변 마을지도'를 만들었다. '만들어놓은 지도를 보니까 첨엔 남의 동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더라고. 새삼 우리 마을이 이렇게 이뻤던가 싶고. 사람 사는 것이 그래야 해. 차만 씽 하니 가버리면 뭐 해!'"

2.

용유담 세진대 잘 자란 소나무.

"호기심만 들고 찾아간 내게 '지리산길'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음식으로 치면 신선한 산나물과 잘 말린 묵나물을 조물조물 무쳐서 비벼낸 산채비빔밥이었다. 숲길, 마을길과 같은 '전통적인' 길도 걸었고, 수십 년을 쉬다가 이제 막 사람들에게 생의 2막을 보여준 옛 고개도 넘었다. 나무로 수로를 살짝 덮은 '응용' 편의 길도 걸었다. 오기 전에 '산꼭대기로 올라가버리고 싶어 안달하는 것 아니냐'던 의구심을 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시선을 붙드는 게 많아서였는지, 완만하면서도 시야가 탁 트이는 길이라 그랬는지……


길뿐이던가. 오지랖 넓은 큰 산이 제 몸에 새긴 사람살이의 무늬도 만만치 않았다. 산길이 예쁘다며 들뜬 우리에게 '에구, 피란 간다구 저 길로 달구지를 끌고 그 겨울에……' 하며 어제의 일인 것처럼 고개를 흔들어대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서울내기였다가 산마을로 귀농해 논에 물을 대놓고 캔맥주를 들이대며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지리산 사람들은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할 시절'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가 걸어온 옛길들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면, 젊은 그녀들이 가마를 타고 가고, 피란을 오고, 장을 보러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어느 할머니는 한 번도 그 꼭대기에 오른 적이 없다. 열여덟에 시집온 그이는 '죽기 전에 한 번은 저기 가 봐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갈 것 같다'고 했다."


3.

"산 둘레의 작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느꼈다. 그간 내가 산을 올랐던 행위도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 내 욕망을 채우려고 대상의 특정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취한다는 면에서 오르기와 달리기는 겉모습만 달랐지 속성에서는 같았다. 길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떠나온 내 현실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더 큰 상처를 입었거나, 더 애달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걸으면서 마주한 현실은 내 현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더 큰 상처를 입고서도, 걷고 있는 나와 우리를 외할머니처럼 보듬어주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서는 제주올레길로 호기심이 옮아갔다. 제주섬 둘레를 도는 도보길이 지리산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닦이고 있었다. 한 땀 두 땀 올레를 걸으며 돌이켜보니 지리산과 제주섬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제주에도 한라'산'이 있고, 지리산에도 구름'바다'가 남실거린다. 제주의 돌담을 닮은 석푹이 지리산의 다랭이논을 떠받치고 있다."

4.

지리산에 안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있어도 지리산을 안아 본 사람은 아직 없다. 지리산을 품으려면 지리산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지리산을 멀찌감치 또는 가까이 두고 빙 둘러 볼 일이다. 지리산을 걷는 걸음이 여기에 있다. 덤으로 제주도를 걷는 걸음도 일러준다. 그림과 사진과 글이 잘 어우러진다. 예쁜 손수건도 한 장 얹어준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7월 9일치에 실은 글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 10점
이혜영 지음/한국방송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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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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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비 2009.07.09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즐기던 말로서 "인자는 등산이 아니라 요산을 한다"라고 했는데... "오를 때보다 바라볼 때가 더 멋진 지리산"에 한표.

  2. pennpenn 2009.07.10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길을 걷는 즐거움이 고스란이 배어 있습니다.
    산을 오른 후 갯수만을 세려교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3. 이상욱 2009.07.10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개발 새발 가봐야지요. 그 넓디넓은 산을 바라만 보고 우째 알겄습니꺼.
    쓰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