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이라는 이름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남 통영에 지어지는 음악당 이름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윤이상국제음악당으로, 다시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 윤이상은 수구 파쇼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

알려진대로 윤이상(1917~1995)은 통영 출신으로 세계가 알아주는 현대 음악가입니다.
윤이상은 1956년 유럽으로 음악 유학을 가 독일에 정착했습니다. 1963년 북한을 찾아갔고,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끌려 들어와 재판을 통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두 차례 감형을 거쳐 이태만에 석방된 뒤 독일로 갔습니다.

1981년 광주항쟁을 소재로 삼아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고 1994년 한국에서 열린 윤이상 음악 축제에 참석하려 했으나 우리 정부와 갈등 끝에 불발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채 숨을 거뒀습니다. 동·서양을 훌륭하게 아우른 작곡가라는 평가가 드높지요.

원래 조감도. 통영시 제공. 이제 3분의 1로 줄어들어 '국제적'은커녕 '국내적'도 안 되게 생겼다.


윤이상은, 이처럼 음악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이념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민족을 중심에 놓고, 이념에 관계없이 조국을 사랑한 사람 정도라고 할까요. 극우 수구 집단은 이 점이 못내 아쉬운 모양입니다. 자기네 이념 쪽으로 윤이상이 기울어져 있지 않다는 점 말씀입니다.

제가 알기로 윤이상은 숨진 뒤에도 복권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2006년 1월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사건의 외연과 범죄 내용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힌 것이 전부입니다.

이런 가운데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서는 윤이상이 숨진 1995년 민간 차원에서 윤이상 추모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1999년 윤이상 가곡의 밤이 열렸습니다. 이때만 해도, 나라밖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계 5대 음악가로 대접받던 윤이상이 나라 안 더 나아가 통영에서조차 ‘빨갱이’로 금기시됐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에 통영현대음악제가 열려 이듬해까지 계속되는데 이때부터 통영시가 주체로 참여하는 등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2002년에는 통영국제음악제로 이름을 갈아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이상 이름이 들어가는 행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하나뿐인데 그나마 2008년까지는 ‘경남국제음악콩쿠르’였습니다.

2002년에는 재단법인도 만들어졌습니다. 초대 이사장은 박성용 금호그룹(통영에는 금호마리나리조트가 있습니다) 당시 명예회장이 맡았습니다. 이를테면 행정기관과 재벌이 행사 운영의 주축이 된 것입니다. 마산MBC 또한 2000년부터 중계방송 관여를 해 왔고. 과실은 당연히 그이들이 나눠 가졌을 것입니다.

음악당을 짓는 애기는 2000년 어름부터 나왔고 이름에 ‘윤이상’을 넣어야 한다는 얘기도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통영에 음악당을 짓는 까닭이 통영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윤이상 덕분이라는 명분뿐 아니라, ‘윤이상’이 ‘통영’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기에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2005년 경남도와 통영시가 음악당 건립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면서도 ‘윤이상’을 쓰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으로는 국책 사업으로 지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위의 발표가 나온 뒤에는 윤이상의 유족이 태도를 누그러뜨린 덕분도 있답니다.

이에 따라 경남도와 통영시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윤이상 음악당’ 건립을 위해 기본 조사와 기본 설계 용역비 10억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해 왔다. 2007년 9월 기본 조사는, 세계적인 음악당을 만들려면 기왕에 확보한 480억원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보고를 내놓았습니다.
 
미국 월트디즈니콘서트홀 ㎡당 건축비가 1176만원이고 영국 세이지 게이츠헤드 ㎡당 건축비가 771만원인 데 견줘, 윤이상 음악당은 ㎡당 392만원밖에 안 된다는 비교를 내놓으며 “국책사업 전환을 통한 1000억원 이상 사업비 확보”가 핵심과제라고 짚었습니다.

이에 진의장 통영시장은 2008년 11월 “국책사업으로 전환은 되지 않았지만” 절실하게 상대방을 설득해 김태호 경남도지사로부터 500억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500억원 해서 모두 1000억원 예산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고 발표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열성으로 뛰던 통영시장이 올 7월 들어 말을 바꿨습니다. 경남도와 중앙정부의 1000억원 예산 지원이 어렵다고 보고 포기하는 한편 음악당 이름에서도 ‘윤이상’을 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화부나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어떤 외부 압력도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반역 저지 국민 저항 운동의 사령탑’을 자임(?)하는 ‘국민행동본부’라는 단체는, 2008년 12월 17일 ‘좌파를 몰아내라고 뽑았더니’라는 성명을 내어 “좌우 동거 정권을 만든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물으며 “반역자 윤이상을 기리는 초호화판 음악당은 국민 세금으로 지어주기로 하고”라 짚었습니다. 

<조갑제 닷컴>의 조갑제도 올 1월 “국가 예산 1480억 원을 투입하는 건물에 ‘국가반역자’의 이름을 붙일 수 있나”라 물으며 “‘애국 운동의 단·중·장기 전략’ 행동방안 가운데 하나로 ‘윤이상 기념 음악당 건립 중지(또는 명칭 변경) 요구’”를 제시했습니다. 우연한 일치인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원래 그런 인물이고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원래 중심 없이 왔다갔다 하는 부류이며 진의장 통영시장이 나름 예술에 조예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치권 입김에 바로 고개 숙이는 보수 인물임은 이미 다 아는 바입니다. 그이들은 잇속이 빤하고 계산을 잘하는 무리입니다.

게다가 이른바 집토끼가 집을 나갈 조짐을 보인다 싶으면 여태 해놓은 말까지도 이처럼 단숨에 뒤집을 줄 아는 족속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몸과 마음을 다치든 말든 그런 데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인간들의 속성을 이번 뒷걸음질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이들에게 예술이나 약속 따위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훤주
※매체 비평 전문 재체 <미디어스>에 7월 13일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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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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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도사 2009.07.15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작자들 때문에 역사가 삐뚤기고 문화가 죽어요.
    통영시장님! "윤이상"이 빠진 음악당 무슨 의미가 있나요?
    윤이상이 있기 때문에, 윤이상 때문에 통영에 음악제가 있고 음악당이 건립되려는 것 아닌가요?
    이런 발상은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안꼬없는 찐방입니다. 차제에 윤이상 음악제도 윤이상 빼고 음악제라고 하시지요? 한심합니다.

  2. 봄나무 2009.07.15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더군.
    이 글 쓰느라 그랬나?

    아직도 한국에서는 매카시즘이 판을 치는구나.
    매카시즘의 특징은,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몰아붙이는 것이지.
    한때 빨갱이였다면 혐의가 풀렸든 안풀렸든 무조건 빨갱이 아니갔어?

    1994년 윤이상 음악제를 열었을 때, 우리 회사가 주최측이었고, 나는 담당 기자였다.
    많은 이들이 힘을 써서, 윤이상씨가 동백림사건 이후 처음으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조선일보>에서 쓴 '윤이상씨의 경우'라는 논설 하나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사설을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인들은 오페라며, 관현악 등을 그 더운 여름에
    개런티도 받지 않고 죽을 둥 살 둥 연습했는데,
    당사자가 없는 음악제는 말 그대로 김빠진 맥주였지.

    2000년 통영에서 윤이상음악제를 시작할 때 2년 연속 내려갔었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 통영은 '세계현대음악의 메카'가 된다.
    무지하고 무식한 철지난 반공주의자들 때문에 통영이
    세계적인 메카가 될 기회를 놓치는 건데...

    놔둬라. 들어오는 복도 차버리는 자들인데, 말도 안되고 입만 아플 것이다.

    당시 내려가서 보니, 통영의 오래된 학교 교가는 모두 윤이상 작곡이더라.

    • 매카시즘 2009.07.15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딱 맞는 말이군요

    • 김훤주 2009.07.15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 아까 전화 줬을 때 아내 운동시키고 있었어. 손을 뺄 수가 없었지.

      그래, 넓은 시야로 보면 윤이상이 더욱 정확하고 뚜렷하게 보이겠지.(사실 나는 윤이상을 잘 모르거든. 그냥 제대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는 정도. 빨갱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정도.)

      사실, 통영은 사람들이 그리 멋진 도시는 아니더라. 좀 부풀려 말하자면, 수구가 절반, 보수가 절반. 그러니 윤이상을 뺀다 해도 아무 말 않고 있지. 친일 극작가 유치진과 친일 시인 유치환이 죽어서도 버젓이 행세하는 도시지.

    • 봄나무 2009.07.15 2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하다니 무슨 말씀을...

      내가 미안하지, 윤동 방해해서...

      이건 보수/진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무지와 깨어 있음의 문제다. 아다시피 윤이상씨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독일에서의 대접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2000년에 열린 윤이상음악제에 어떤 음악인들이 전세계에서 통영으로 몰려왔는지, 그것 정치인들은 다 잊은 모양이구나. 그들은 개런티를 주지 않아도 온다. 윤이상의 고향에서 연주하는 건 큰 영광이거든.

      나 같으면 윤이상이 빨갱이라 해도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기어이 쓰고 말 것이다. 음악 속에 붉은 물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작고한 분이 사상적으로 무엇을 어덯게 하겠나?

      왜 한국만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거냐? 정말 답답하다.
      내 블로그에 와서, 벌떼처럼 공격하던 사람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해주면 좀 좋겠나?

      윤이상을 뺀다 해도 통영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겠으나, 윤이상을 고향에 맞아들이면, 하루 아침에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는 도시가 된다. 속된 표현 하나 쓰자면, 통영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은, 곧바로 통영시민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왜 그렇게들 촌스럽게 구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는, 2000년에 통영 가서 보고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1970년대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 김훤주 2009.07.16 0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 번 천 번 옳으신 말씀이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무지하단다. 하하.
      그나저나, '통영'보다는 '윤이상'이 더 이름 높다는 정도는 나도 아는데........

  3. 지구벌레 2009.07.15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권이 바꼈다고 이런일까지 생기다니..참...당장 입맛대로 수십년, 수백년후에도 영향을 미칠 많은 일들이 오락 가락 하는군요.
    하여간..맘에 안드는 짓만 하고 있으니...쩝.

    • 김훤주 2009.07.16 0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술이 무엇인지, 인간 또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족속들의 횡포..... 알면서도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의 무감함.......

  4. 2009.07.1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대한민국 황대장 2009.07.15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악 한가지로 봐야지 자꾸 색안경을 끼고들 보니깐...
    사상은 다르더라도 그 하나는 지켜주어야 마땅 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화가 나네요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

  6. 법학도 2009.07.15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판성의 글을 보면 본인은 영원히 권력자 밑에만 있을 사람임을 전제로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좌파성을 띠고서 원래 이런 부류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글이다.

  7. 똥꼬아빠 2009.07.15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V익사이팅 "이종범"님의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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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하루되세요

  8. 실비단안개 2009.07.15 1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바다리님의 기사를 읽고 나른 흐뭇했는데,
    이 기사를 읽으니 김이 빠집니다.

    통영 사람들은 통영시장이 문화에 조예가 깊다고 많은 칭찬을 했는데...

  9. 나그네 2009.07.15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일 집단의 대남 무력적화통일 전략은 단 한순간도 멈추거나 변화한 적이 없습니다.

    늑대와 양치기의 우화에서 늑대가 없었던가요? 양치기가 장난을 했던 것은 잘 못이지만 늑대는 존재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북한의 위협을 과장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은 상존합니다. 사실 과장한 것도 아니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과거 정권이 과장했다고 만들었을 뿐입니다. 좌익들의 헛소리에 세뇌된 불쌍한 인간들이 늑대는 없다고 믿고 싶어 할 뿐입니다.

    윤이상이 북한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증거는 많다고합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정일 왕조를 추종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지요.

    이런 인간을 대한민국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구요? 김일성 집단이 벌인 6.25 동란에서 목숨받쳐 싸운 선열들을 욕되게 하자는 것입니까?

    정신나간 짓 그만하고 생각 좀 하며 삽시다.

    • 뇌도 길 떠났나? 2009.07.15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알밥질 하고 다니는 너를 보면 뇌가 나그네인 듯 하구나...ㅉㅉㅉㅉ

    • 그 증거 2009.07.15 1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에게 좀 보여주시죠

      그럼 철저한 반공세력들의 주장을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 것 반성하고 당신의 말을 믿겠습니다

      당신이 말한 수많은 증거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ㅋ

    • 봄나무 2009.07.15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뚜렷한 증거나 혐의도 없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를
      붙잡아 투옥하고 고문하고 했던 일

      2.북한을 방문해 세계적인 작곡가로서 대접 받고, 우리 음악의
      발전을 위해 논의한 일

      이것을 두고 사상적으로 문제가 하면, 이거야말로 매카시즘이지요.

      동백림사건은 조작으로 판명났고, 북한 드나드는 것이야 요즘에는 일도 아니잖아요?

      윤이상씨가 이곳에서 주장하듯이 그렇게 붉은 빨갱이 작곡가라면 역시 분단국가인 서독에 살 수나 있었겠어요?

      이제는 고인이 된 분입니다. 설사 진짜 발갱이였다 해도
      윤이상씨는 이렇게 가벼이 다뤄질 존재가 아니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와 관계없이, 세계의 음악계에서 그를 20세기의 최고 거장으로 평가하고 있으니까요.

      독일뿐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인 서방에서 영웅대접 받는 분이 왜 유독 고향에서만 푸대접을 받는지, 참 이해가 안됩니다.

      세계의 각 도시들이 뭐 한 가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게 없을까 하여 속된 말로 눈이 벌겋게 소재를 찾는 시대인데. 통영과 경남도는 왜 굴러온 보물을 제 발로 차버리는 것인지...

      통영이 그러든 어쨌든 윤이상씨의 위상은 변하는 게 없습니다. 결국 통영시의 손해일 뿐이지요.

      공부 좀 해보세요. 1994년 8~9월 사이에 <시사저널>과 <객석>에 이런 내용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 김훤주 2009.07.16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그네시라니까, 그냥 지나가시기만 하시라 권하고 싶군용.

    • 나그네의말에귀를기우려라 2010.01.27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마디로 기가막힌 코미디다. 천하의 역적에, 남을 사지로 몰아넣은자를 이렇게 칭송하는 나라는 도대체 뭐냐? 윤이상의 죄상을 알고 싶으면 오길남저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 라는 책과 "억지와 위선" 이라는 책을 읽어봐라. 바보놀음에 이용당해서 니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너희들과 네 가족과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말고...

  10. 저런 2009.07.15 1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 정부 들어서 뭐든지 뒷걸음질이다...어디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곳이 없네... 수구언론이 좌파라고 부르짖던 지난 정권때가 훨씬 살기 좋았다..그때가 천국였던거다.. 지옥으로 떨어지는건 순식간이란걸 세삼 느끼고 또 느낀다.

    • 김훤주 2009.07.16 0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만, 제가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니고요, 어쨌거나 지금도 지옥은 아니지요. 노무현이나 그 이전 김대중 김영삼 시절이 천국이 아니었던 것처럼요. 어쩌면 지금이 미래와 연관지어 본다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절대 기준에 비춰본다면 '전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기는 하지만요.

  11. 2009.07.15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마음의 고향 2009.07.15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대 교가 작곡가가 윤이상 선생인데... 세계적 음악가를 존경하지는 못할망정...근본이 없는 위정자..

  13. 서민 2009.07.1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짓들을 보면 개떼같다.
    먹이를 쫒아 이리 저리 헤매이는...
    똥도 먹잇감이니...
    주인이 사나우면 주인처럼 사나운 개.
    주인이 국민인줄 모르는 거 보면 개도 아니고...
    개만도 못한 것들이라 그런가...?

  14. isang yun 2009.07.16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용을 줄이는건 봐준다해도 이름도 바꾸는건 .......백프롭니다.
    우리나라 군사독제시절에 억울하게 조국에서 추방당한 윤이상을 아직도 이딴식으로 대하다니...
    제발 음악에는 좀 집적거리지 않으면 안되겠냐?

    참고로 윤이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으면 윤이상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가 쓴 '내 남편 윤이상'책을 한번 찾아보세요. 거기에 윤이상의 감동적이고 가슴아픈 삶을 알수있고 또 정신나간놈들의 헛소리가 말도 안되는것이라는걸 알수가 있습니다.

  15. 신동섭 2009.07.16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펌질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16. 미디어교육 2009.07.17 0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참 전 티비에서 윤이상선생 다큐 봤는데...그래서 이젠 그 문제 해결됐나 했는데...돌아가셨으니 고국에 올수 있네마네하는...아직 한참 멀었군요...안타깝네요. 한세대가 완전히 지나가야 좀 빛이 보이려나...잘 읽었습니다.

  17. 나그네2 2009.09.03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간조선] 아내·두 딸을 북한에 두고 탈출한 오길남 박사 조선닷컴
    기사 100자평(33) 입력 : 2009.09.03 09:46 / 수정 : 2009.09.03 14:19
    "미 여기자 구출 보면서 가슴 울렁거렸다"
    <이 기사는 월간조선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난달 5일. 북한 억류 142일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유나 리와 로라 링 기자가 비행기에서 내려 가족과 포옹하던 순간 TV로 이를 지켜보던 오길남(67)씨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분명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마음이 결코 편하지 못했다. 북한에 두고 와 23년째 얼굴을 보지 못한 아내와 두 딸 생각이 나서다.

    월간조선이 오길남씨를 만나 가족이 3·8선을 두고 갈라져 사는 사연을 들어봤다.

    194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오길남씨는 1985년 독일 브레멘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43세) 였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 서기 힘들어 방황하고 있을 때 작곡가 윤이상, 재독학자 송두율, 김종한 등이 찾아와 “북에 가서 조국을 위해 경제학자로 일해 볼 생각 없느냐”는 제의를 했다.

    간호사였던 부인 신숙자씨는 월북하자는 오씨의 말에 “당신은 언젠가 월북 때문에 자신의 눈을 찌르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1985년 12월 두 딸과 부인을 데리고 북한으로 갔다.

    오씨 일가족은 3개월간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오씨는 1986년 6월부터 11월까지 북한이 남한 내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한민전 산하 칠보산연락소에서 근무했다. 경제학자로서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1986년 11월 초, 오씨는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 2명을 유인해 월북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부인 신숙자씨는 “당신 자식과 마누라의 생명만 소중하냐. 유망한 젊은 부부를 데려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며 오씨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 큰딸 혜원, 아내 신숙자, 그리고 작은딸 규원의 모습. 1991년 1월 20일, 윤이상이 가족의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 한 개와 함께 전달한 가족사진 여섯 장 가운데 하나다. 그곳에는 큰딸 혜원과 둘째 딸 규원의 짤막한 편지도 들어 있었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아빠! 나 혜원이야요. 며칠 전에 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즐겁게 보내는 꿈을 꾸었어요. 아버지! 부디 몸 건강하세요! 너무 오래간만에 아빠라고 소리 내어 부르니 울음이 납니다. 아빠! 나는 규원이야요!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보고 싶어요, 아빠! 아버지와 만나는 날 나는 무엇을 선물할까요? 아빠, 안녕! 1991년 1월 11일 평양에서'
    신씨는 또 “우리는 죽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내 딸들이 남을 속여 지옥에 빠뜨리는 파렴치범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오씨는 “내 뺨을 때리던 아내의 손길과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86년 11월 10일. 오씨는 간염에다 심근경색, 동맥경화증으로 초췌해진 아내 신숙자와 열감기를 앓고 있던 두 딸을 북한에 남기고 평양을 출발했다. 김정일과 허담의 심복인 백치완 등 북한 공작원 두 명도 따라붙었다. 11월21일, 오씨는 덴마크 코펜하겐 카스트로트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공항 직원에게 구조요청 메모를 전달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오씨는 그 후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윤이상을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을 송환해 달라고 간청했다. 윤이상은 1987년 10월과 1988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있는 부인이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1991년 1월엔 아내와 아이들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 한 개와 가족사진 여섯 장을 주며 “다시 월북하라”고 협박했다. 오씨는 결국 혼자 힘으로는 가족을 송환할 수 없다고 판단해 1992년 4월 독일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했다.

    오씨는 1992년 10월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탈출한 안혁, 강철환으로부터 북에 있는 가족의 소식을 듣게 됐다. 이들은 “부인 신숙자씨와 두 딸은 요덕수용소 대숙지구에 수용돼 있고, 신씨는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는 등 산나물을 뜯으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오씨의 가족은 최근 앰네스티가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비롯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행방불명자들의 명단을 파악할 때 포함 됐다. 오씨는 “솔직히 미국의 여기자 구출을 보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며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혹시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글도 있군요. 참고 하세요

  18. 통영시민 2009.11.26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한마디 적고 갈게요.
    통영은 1000억원을 들여 음악당을 지을만한 곳이 아닙니다.
    저기 도남동인데 예전에 티비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도남동 조선소 분진과 유해물질이
    통영고등학교를 넘어 봉평동 아파트단지까지 다 퍼지고 있답니다.
    통영은 이미 조선소로 인해 썩어가는 도시에요.
    옛날에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렸지만 이젠 아닙니다.
    동남아근로자들이 돈 벌려고 오기까지하는 조선산업 공업도시에요.
    통영은 안됩니다. 천억원 날라가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