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토요일 아이들이랑 함께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을 봤습니다. '<트랜스포머> 볼래?' 이랬더니 아이들 입이 크게 벙글어지더군요. 아버지가 짐짓 진지한 편이다 보니 이런 영화 보러 가자는 말은 하지 않을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영화에 취미가 없습니다. 그날은 아이들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자고 다짐을 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했습니다. 개봉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500만 넘는 사람이 봤다니,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영화를 보는데, 저는 자꾸만 <젖소 부인 바람났네>가 떠올랐습니다. <젖소부인>과 <트랜스포머>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입니다. 닮은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노골적인 상업성이고 둘째는 보여지는 '장면(scene)'의 절대적 중요도입니다.
<트랜스포머>에서 줄거리(story)는 거의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트랜스포머 1>이 <트랜스포머 2>보다 스토리가 풍성합니다. 옳다 그르다(이를테면 배경으로 북한·중국·러시아가 등장하는 점을 두고)거나 하는 관점에서 보는 평가는 아니고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트랜스포머 1>은 스토리에 그나마 복선 또는 반전이 있는데 <트랜스포머 2>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보면서 아무리 넋을 놓고 있어도 이게 무엇인지 저게 어떤 맥락에 있는지 따위가 훤하게 보입니다.
<트랜스포머 1>이 낫다거나 <트랜스포머 2>가 낫다거나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다소 폭력적으로' 단순화해서 말씀하자면, 1이 좋다는 이는 스토리를 좀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렇지 않고 2가 낫다는 사람은 장면을 중시합니다.
어쨌거나, <트랜스포머 2>(<트랜스포머 1>도 마찬가지)를 관통하는 즐거움은 로봇들의 화려한 변신(transform)입니다. 얼마나 리얼(real)했던지, '제대로 길을 다니지 못하겠다'는 영화평도 있었다지 않습니까!! 그 많은 자동차들이, 변신을 감행할까봐서요.
이처럼 <트랜스포머>에서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같이 본 아이들도 그러더군요. "저도요, 로봇들 변신만 눈에 들어왔어요. 한 번씩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대목도 있었어요." '장면'을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스토리의 역할은 한정됩니다.
이런 점에서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젖소부인 바람났네>와 닮았습니다. 아시는대로 1995년 가을, 젖가슴이 큰 배우 진도희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 놓으며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눈길을 끈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입니다.
오죽했으면 <물소부인 바람났네> <꽈배기부인 확 풀렸네> <김밥부인 옆구리 터졌네> 같은 이미테이션(imitation 오늘 따라 저도 영어가 좀 되네요, 하하.)들이 줄을 이었겠습니까. 본격 포르노물이라 스스로를 내세웠으니 많은 이들이 <젖소부인>에는 '거시기'만 있는 줄 압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패션 비용이 대폭 절감된', 속옥 차림 장면이 많기는 하지만,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는 대부분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 같은 스토리를 시종일관 탄탄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3>을 봅니다. 주인공은 성폭행으로 숨진 아내 혜정이 숨지자 복수를 시작합니다. 복수가 희한하게도 성폭행범을 향하지 않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성폭행범이 "당신 아내는 숨지는 순간까지 '세게, 더 세게!'를 요구했어"라는 비아냥을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꾀어들인 여자들과 더불어 침대와 욕실·의자에서 땀투성이가 돼서 헐떡거립니다. 그러다 성폭행범이 일러준, 아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살해합니다. '도대체 여자들이란 다 그래!!!!' 이런 식이지요.
어느 날 죽은 아내를 닮은 여자를 우연히 만납니다. '다른 여자들과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뒤따라가 거칠게 벗깁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희한하게도 끝까지 저항합니다. 주먹으로 상대 저항을 제압한 뒤 올라타고 헐떡거립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순간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숨져 버렸습니다. 우리 착한 주인공은 이제야 깨달은 듯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듯 참회하는 눈물을 흘리며 자수하러 경찰서로 들어간답니다.
무엇입니까? 권선징악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런 스토리는 벗은 몸매와 과장된 몸짓과 젖가슴 또는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그런 '멋진' 장면을 보여주는 데 '복무'할 뿐입니다.
저는 <트랜스포머>에서도 마찬가지 짜임새(구조라 썼다가 지웠습니다. 왜냐, '구조'라 하면 '짜임새'보다 '심오한' 무엇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줘서요.)를 봅니다. 로봇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는 데 가장 알맞은 스토리를 채택했을 뿐입니다.
저는 <트랜스포머 2>가 <트랜스포머 1>보다 스토리가 단순해졌다고 느끼는데, 제 느낌이 맞다면 거기에는 1과 2가 제작되는 사이에 들어 있는 세월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따로 따져볼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든 찾는 관객이 단순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유럽 포르노와 미국 포르노의 차이점을 한 번 씹어봅니다.(물론 이것이 1980년대식 또는 1990년대식 구분이라는 사실은 저도 압니다만.) 유럽 포르노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미국 포르노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럽 포르노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끼워 맞춰 남자와 여자의 거시기를 보여줍니다. 물론 미국 포르노는 그리 하지 않지요. 그야말로 남녀의 만남은 우연으로 '점철'되고, 그런 만남은 남자 또는 여자의 "오 예!" 한 마디로 죄 설명이 됩니다.
대학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유럽 포르노가 낫다 왜냐 하면 스토리가 있으니까, 이런 따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가만 따져 보니, 둘 사이에서 낫고 못하고를 가릴 기준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둘 다 똑같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하하, 어쨌든, 저로서는 <트랜스포머 2>를 예전에 본 <젖소부인 바람났네 3> 덕분에 아주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공자님 말씀을 빌리자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樂乎)'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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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더니 누구신가 했어요. 문화쪽 분야도 쓰셨네요.
트랜스포머와 젖소부인을 비교하셨네요. 잘보고 갑니다.
잘 지내시죠.
제가 지금 소속이 문화체육부랍니당. 문화 또는 사회 관련한 글을 주로 쓰고요, 정치 관련 얘기는 어쩌다 한 번씩 여쭙습니당~~.
저도 지난 주에 봤는데 "젓소 부인"시리즈와 비교는 기발하네요..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장마와 무더위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어쨌거나 일부러 지어내지는 않았고요, 그리 제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 봤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리뷰쓸까? 생각중인데...
기발하게 연관지으신 글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짱입니다요^^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90년대 본 영화 가운데 <젖소부인 바람났네 3> 말고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저는 명작으로 꼽습니다.
젖소부인의 인증짤이 없으므로 무효
인증짤이 무슨 말이신지요??? ^.^ 제가 무식해서리......
어쨌거나, 고맙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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