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4월 '누가 김주열과 그 어머니를 모욕하는가'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죽음에 대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희망세상> 3월호가 사실을 왜곡하는 글을 실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르포작가 김순천씨가 쓴 '촛불항쟁을 닮은 시민혁명의 첫 효시 마산 3·15의거 현장을 찾아서'라는 글의 한 구절이었다. 그 글은 경찰의 직격최루탄이 눈에 맞아 머리를 관통한 상태로 죽은 김주열 열사에 대해 "이모할머니 댁에서 시위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올렸던 글은 다음뷰 베스트에 올라 4·19혁명 49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문제의 르포를 썼던 작가가 이 블로그를 방문하여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정정보도문이 실린 희망세상 7월호.


그로부터 3개월 여가 지나 <희망세상> 7월호에 정정보도문이 실렸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집으로 책이 배달온 지는 좀 되는데, 이제야 정정보도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좀 늦긴 했지만 당시 김주열 사인 왜곡 문제를 널리 알린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사실이 이렇게 바로잡혔다는 것도 알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차원에서 포스팅한다.


<희망세상>은 13페이지 한 면을 할애한 정정보도문을 통해 문제의 구절을 "김주열은 형 광열(19세, 당해 고교졸업)과 함께 시위대에서 경찰과 대치하여 투석전을 벌이는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현장에서 산화했다."로 정정한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늦게나마 조사를 거쳐 사실을 바로잡은 데 대해 다행이라 생각한다. <희망세상>뿐 아니라 기존의 신문매체들도 이렇게 잘못된 글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화끈하게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아울러 당시 김주열 열사가 숨진 마산지역에서도 더 이상 열사의 죽음을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정보도문

『희망세상』2009년 3월호(78호) 연재물「다시 보는 역사의 현장」-'마산 3.15의거 현장을 찾아서'에 김주열 열사 와 관련된"무학초등학교 옆 이모할머니 댁에서 시위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11쪽)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대하여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의 문제 제기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확인을 거쳐 아래와 같이 정정 보도한다.

"김주열은 형 광열(19세, 당해 고교졸업)과 함께 시위대에서 경찰과 대치하여 투석전을 벌이는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현장에서 산화했다."

<참고자료>
● <법적으로 사망 위치가 인정된 자료>
피고인 박종표는 서기 1960년 3월 15일 오후 7시경 …전기 군중에 소휴한 최루탄 12발을 순차 발사함으로써 그 중 한발인 232호 최루탄이 前記지원 앞 노상에서 시위 중이던 군중의 일원인 김주열(17세)의…동인을 살해한 후 동인의 사체를 …(1961 9월 30일 혁명재판소 심판부 1부 재판장 심판관 高영보, 마산발포사건 재판기록)

●<김주열의 사망위치가 경찰과 데모대가 대치한 도로선성이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
김주열의 눈에 박힌 최루탄의 피격부위와 파입상태(김주열, 2003, 91쪽 그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주열의 형 광열의 증언>
…나는 앞장서 한참 투석전을 벌이고 있는데 마침 티셔츠바람으로 길 한복판에서 설치고 있는 동생을 목격하고"주열아! 뒤로 물러서라!"고 외쳤다. 이 한마디가 동생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일 줄이야!… (3.15의거, 1992, 272쪽 3.15의거상이자회, 홍중조 엮음)

●<김주열의 어머니'권찬주'여사의 증언>
"그 당시 김주열의 형 광열(19세)이가 (동생과 함께 데모에 적극 가담한 사실을)빨갱이로 모는 바람에(행방불명 당시에는) 말을 못했다."「( 마산시민들과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1960년 5월 8일, 권찬주)

●<3.15이후 마산의 분위기를 기록한 자료>
"지금 시내는 빨갱이의 소행이라 하여 온 시민이 공포에 떨고 있고 부상자들 중에는 집에서 몰래 치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민주당 진상조사단이) 돌아가는 날에는 우리는 죽으니 여기 있어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었다."(3.15의거, 129~130쪽)

2009년 7월 1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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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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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로전까지 2009.07.21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화적인 시위대를 폭도로 둔갑시키고, 경찰의 폭력은 보도조차안하면서 눈감아주고, 용산참사를 욕심에 찌들은 사람들의 저항이라고 왜곡하던게 몇달되지도 않았습니다.

    언론이 양심을 잃고 돈을 위해서 기사를 쓰면 진실이란게 어떻게 변질되는지 참 무섭더군요.

    • 김주완 2009.07.22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정확한 기사를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못을 발견하고 깨끗이 정정하는 것은 더 중요하겠죠.
      그런 언론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2. 산/들/바람 2009.07.22 2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달 전에 문제 있다던 글에 대하여 정정기사가 실렸군요!
    글쓴이가 르뽀작가라고 했는데 보다 책임있는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무작정 폄훼하기 위해서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하기는 힘들군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번 기회에 내용에 대한 검증도 없이 시간에 쫓겨
    글을 싣게 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언가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정운현 2009.07.24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다행입니다.
    제 때 바로 잡지 않으면 왜곡된 사실이 진실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는 김 형의 노력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