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출신으로, 지금은 탈당한 후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직에 올인하고 있는 주대환 씨를 만났습니다. 이 블로그에 인터뷰를 포스팅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 그로부터 받은 책을 최근 읽었습니다.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상임고문으로 있는 신진보연대에서 낸 계간지 <신진보리포트>(여름호, 통권 제12호)라는 책이었는데요. 이번 주제는 '정치연합론-(범)진보세력의 재구축을 위하여'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범진보세력의 정치연합론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주대환 공동대표가 쓴 '한국 민주화세력의 환골탈태는 가능한가?'라는 글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이른바 '운동권 문화'에 대한 주대환 대표의 지적이었는데요.

신진보리포트 여름호.


하필 이 엄혹한 시기에 웬 운동권 비판이냐 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대환 대표도 써놨듯이 "한동안 반성의 바람이 민주화세력 내부에 불었"으나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이 거듭되고 촛불 시위가 일어나자 이명박 정권을 욕하는 것으로 자기반성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런 지적도 곰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투쟁이라는 것도 성찰과 반성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거니까요.

주대환의 민주화 세력 비판 "국민 눈에는 건달로 보일 수도"

우선 주 대표가 지적하는 '민주화세력의 무지와 오만'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라면 태양계 밖으로까지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십 년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둘러앉아서 고담준론해봐야 우물 안 개구리들의 합창이 될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화세력은 끼리끼리 술 마시고 논다."

"민주화세력의 여전한 착각과 반성의 부족은 바로 자신을 국민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 국민의 눈으로 보면 내가 투사(鬪士)나 지사(志士)가 아니라 건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억울하면 건달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민주화세력의 무지와 오만은 분열로 나타나고 있다. … 왜 무지와 오만은 분열로 귀결되는가?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지만 내가 하면 될 거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화세력 내부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기왕의 야권의 여러 정당들과 별로 다른 내용도 없이 '대안야당'을 만들자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주대환.

"민주화세력에서는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학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글쓰는 사람들은 주로 학자들이다. 그들은 보고 들은 풍월로 '옳고 그름'을 논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서는 국민대중의 생활정서와는 너무 다르고 그들의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자기들을 꾸짖는 소리로 들린다. 그들의 문필활동은 대체로 민주화세력들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치고 있는데 문제는 그들이 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국민대중은 잘난체 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외면한다. 오직 고개를 숙이는 놈만을 인정한다. 대선에서 두 번이나 낙선한 이회창의 변신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야 정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동안에는 정치인 같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화세력에는 국민들의 눈에 정치인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민주화세력 중에는 정치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주대환 대표의 '운동권 비판'은 그들의 생활습성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특히 '개량 한복'에 대한 지적에서는 거의 인신 공격(?) 수준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대목에서 누군가가 떠오르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요?

"민주화세력은 국가, 민족, 사회를 위하여 젊은 시절 많은 희생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취직하고 학위와 자격증을 딸 때, 감옥을 들락거려 부모의 속이나 썩이고,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만을 걱정했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를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할 때를 놓쳐서 이제 무능력자가 되거나 사회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대기업에서 훈련받은 사람과 운동권 출신은 일을 시켜보면 차이가 크다."

"남들보다 먼저, 남들이 눈치보고 있을 때 용기있게 교직원노동조합운동에 뛰어들었던 교사를 떠올려보자. 이 사람은 대체로 남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서로 간의 의견 차이도 민주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합의에 이르거나 절충할 줄 모른다. 자기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걸 양보할 수 없다."

"바로 이런 민주화세력에 대하여 국민 대중은 넌더리를 낸다. 존경하던 마음이 이제는 짜증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중늙은이가 된 전교조의 고참 활동가들이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같은 민주화세력들 중에서도 숨이 막히는 사람이 있는데 대중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들의 정서는 독립운동가의 정서,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최익현 선생의 정서와 닮았다. 고집스런 그들에게 모든 변화는 곧 변절이다."

"사상적으로도 이들의 고풍스런 민족주의 정서는 국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게 하고,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여 그들의 고립을 심화시킨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의 간부들, 고참 지식인 활동가들은 이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대의원대회에 참여하고 나면 운동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는 내가 올 데가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지난 17일 나와 인터뷰하던 주대환 공동대표.


주대환 대표는 이런 지적에 이어 "흡사 촛불시위에서 기존의 집회 문화를 버렸듯이 민주화세력은 기존의 행동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대환의 이런 주장에 대해 강동호 신진보리포트 편집주간은 같은 책에서 "(주대환은) '민족민주운동'을 했던 민주화세력은 이제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하는 진보세력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라고 요약했습니다. 역시 강동호 편집주간의 지적처럼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운동권의 자세와 태도, 생활 양식에 대한 주대환의 비판은, 지금까지 이토록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지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전교조의 고참 활동가'에 대해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그야말로 주대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적진 않을 것 같네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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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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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슷한 2009.07.28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하필 개량한복? 하면서도 어쩌면 내가 느끼는 정서와 같다는 생각에 놀라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가보다. 가끔 대면하게 되는 개량한복 입은 분들은 뭔가 주관이 뚜렸하고 왠지 까칠 할 것 같은 성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거나 고집불통의 사람들도 개량한복을 많이 입는 것 같아 예전같은 선입견은 많이 희석되었다.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현님의 생각에 동감한다. 대학시절 형사들에 쫒기던 선배를 봐왔지만 덤덤했던 무신경이 지금은 부끄럽고 현실이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고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 분들은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으셨다. 마치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억울한 노동자 철거민들을 위해 동분서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챙기지 못한 부분이 많다.

    요즈음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가족과 함께 현실을 배우고 토론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나로서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주변의 관심과 동조 없이 혼자하는 운동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인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본다. 아직 완고한 사람들도 많지만 단순한 옷차림, 스타일 뿐 아니라 행동과 생활, 뒤에 가려진 의도까지도 알면서 모른척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함께하는 많은 프로그램으로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이웃이 많아져서 자연스레 거짓과 위선, 폭력과 억압, 부패와 독재 등에 하나의 시선으로 저항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억지를 부리며 편견의 주장을 하는 한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침묵으로 일어서서 등을 돌리는 모습이 나온다. 그사람을 나무라지도 않고 제지 하지도 않는다. 단지 돌아서서 창밖을 볼 뿐이다. 예전과 같은 억압과 고통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 김주완 2009.07.28 15: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제법 많군요. "개량한복 입은 분들은 뭔가 주관이 뚜렸하고 왠지 까칠 할 것 같은 선입견..." 흐흐흐

    • 보라매 2009.07.30 0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슷한' 이분이야 말로 긍정적 부채386이 아닐까요...
      요기까지 썻었는데...
      'edit' 선택해서...

      글구 개량한복 말인데요..
      '뭔가 주관이 뚜렷하고...'는 이런 곳에 댓글 다시는 분들이라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건 아닐까...요?
      주선생님 말씀맞다나 '끼리끼리 노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니까.. ^^.
      괜히 까탈스러워지고 싶어 한마디 더 추가했습니다. ㅋㅋ

  3. 까탈이 2009.07.28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 그럴듯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운동가는 결국 살아가는 모습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해 본 사람들도 그가 자신이 말하는대로 사는 사람으로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짧은 경험이지만 가까이서 지내 본, 저는 그에게서 인민노련 기관지에서 읽었던 투철한 활동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 비슷한 2009.07.28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량한복에 뭔가 하고 들어왔다가 이곳에만 댓글을 세개 쓰게되었네요.

      저도 사람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저처럼 무대 울렁증이 있는 사람은 몇 사람만 모여도 내 생각조차 이야기 하기 힘든데 말로만 번지르 한 사람을 보면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그런데 어린시절부터 언행불일치에 대한 상처가 많았습니다. 교회학교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집에서 엄하게 하실 때 '사랑'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고, 청년 시절에는 담배를 핀다던가, 여신도와 문제를 잃으킨다던가, 재정적으로 불투명하고 독단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던 목회자에게서 실망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50이 다 되어서 생각되는 언행일치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결벽증적인 나로서는 언행일치를 하지 못한다는 자책으로 타인을 비판하기도 하고 나의 행위에 그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도 엄한 도덕적 잣대가 필요합니다. 종교지도자는 더하겠죠. 연예인, 국가대표, 운동권, 선생님 등등 대부분이 자신의 본업에 언행일치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나서지 않은 사람보다 더한 비판을 감수해야 합니다.

      완벽한 언행일치,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로

    • 몽이아빠 2009.07.28 1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에게 도덕성을 뺀다면 그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좀더 합리적이라는 것? 네~ 적어도 쌩떼는 안쓰니까?

  4. 임현철 2009.07.28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화가 필요하긴 하다고 여겨집니다.

  5. 2009.07.28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주완 2009.07.28 15: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면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냥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도 좋지 않을까요?

  6. 진아 2009.07.28 1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출신이라면,,,이 분은 소위 말하는 "내부고발자?" 운동권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얘길 감히 못하죠..생각을 하고는 있더라도! 그러나 안에 계셨던 분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면, '아, 그 안에서도 저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긴 있었구나"싶죠. 이 글을 읽은 느낌이 왠지 좀 후련하다는.....건데, 왜 후련하단 느낌이 드는 걸까요? 그건 뭔가 억눌려 있었다는 건데....말은 못해도
    민주화운동이나, 운동권 세력들에게 억눌린 게 있었던 걸까. " 나는 저 사람처럼 살지 못해서 말할 자격이 안돼. 그치만 저건 아니잖아?" 하던...일들...아마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던 것도 잘못이군요. 아무튼 요즘은 계속 '돌아보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대체 나는 '오늘 우리가 처한 이 현실에' 뭘 잘못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길래 지금 내가 사는 시간이 요모양 요꼴이 되었는가......반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그 어떤 '한통속' 의식을 갖기위해 '강요당한 침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김주완 2009.07.28 1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는군요. 그럴수도 있다고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직접 그렇게 생각하신 분의 글을 보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7. 세영 2009.07.28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량한복 입은 운동권"에 대한 시각은
    그야말로 주대환 씨만의 생각인거 같은데요.

  8. 찌니 2009.07.28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노력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보다는 중간에 서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일이 더 필요하니까요.
    말 한마디, 옷차림 하나를 따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 하나가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전교조 초창기에 활동을 하던 언니 친구를 만났을 때, 짧은 시간에 말투가 변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건 모든 단어의 뒤에 ‘들’이라는 복수화 접미사를 쓰거나 지나치게 피동형 문장을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건 당시 운동권들의 정형화된 말투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들’의 생각‘들’이 모여져야 대중‘들’의 지지‘들’을 얻어낼 수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한 번만 들어도 이 사람이 어떤 생각과 어떤 일을 하는 지 확연히 알 수가 있어서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는 일단 대화를 이어가는 일조차 힘들어집니다. 그러면 ‘함께 하자 우리 이 길이’ 정말 ‘우리’ 몇몇 사람들로 한정 되어버립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거죠.

    ‘개량한복’- 저도 떠오르는 한 분이 있습니다. ㅎㅎ
    개량한복은 예쁘고 실용적인 옷도 많습니다. 그런데 활동가들이 입은 개량한복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개량한복을 입은 운동가의 열정적인 연설을 듣는 순간, 그가 말하는 내용보다는 그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먼저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전투적이라는 거죠. 모든 일에 ‘비판적’-여기서 비판은 비난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이고, 모든 일에 반대부터 하는구나하는 이미지 말입니다. 상자 속 알맹이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포장이 험하다고 느끼면 열어보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기존 언론의 보도에 신뢰를 잃은 지금 블로그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음 뷰의 베스트 블로그를 보면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제목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쉬운 표현, 현재 익숙한 표현과 관심사를 다룬 블로그들이 조회수, 추천수가 높았습니다. 이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듯 합니다.

  9. 흑풍검객 2009.07.28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량한복?
    잘못된 용어를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개량한복" 이라는 용어속엔 "전통한복"이 뭔가 잘못된 , 나븐 한복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개량한복' 이아닌 "변형한복" 이라고 해야 맞다 !!

    • 삐딱이 2009.07.28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량한복이란 말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것 같네요
      물론 개량이란 말자체가 '나쁜것을 더 좋게 고침'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긴하지만 나쁜 것이란 의미를 나쁘다고만 볼것이 아니라 좋지않은 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전통한복이 대중화되기 어려운 부분(좋지않은 부분)을 개선하여 만든 한복으로 이해하신다면 굳이 틀린 말도 아닌것 같은데요...뿐만 아니라 생활한복, 전통한복의 상대적인말로 현대한복이란 말도 있는데 굳이 어색한 변형한복이란 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10. 잘보고갑니다 2009.07.28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건 몰라도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틀린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 책을 한번쯤 봤으면 좋겠군요. 그런 모습은 인터넷세상에도 많이 퍼져있으니 참 답답하기만 합니다.

  11. ... 2009.07.28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렸지만, 다음 뷰에서 이런 글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리플들이 생각보다 전투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일방적인 목소리만 들려 실망했던 다음뷰의 모습과 반성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운동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12. 2009.07.28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창비 2009.07.28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주대환이 운동가라면 지금 시국에 다른 이야기가 나와야하는게 아닌지..
    책상머리에 앉아서 인텔리 놀음만 하고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국민들 속으로 들어와 실천운동이나 대중운동을 일으킬 고민이나 좀 하셨으면 합니다. 그 실천 하나가 지금의 발언보다 100배 유익하다고 저는 자신합니다.

    • 그런 고민은 2009.07.28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창비/ 댁이나 열심히 하세요. 뭘 일으킨다구요? 실천 어쩌구 하는 거 보니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는 대충 알겠소만... 참 한심하오이다.

    • 공현 2009.07.29 2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대환 씨의 주장 중에 동의하는 부분은 있지만, 주대환 씨가 지금 살고 활동하는 모습이 진정성이 있나.. 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좀 의문이 있습니다 킁.

  14. 몽이아빠 2009.07.28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0년대 초반의 운동권시절을 보내고 소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원이였다 사상논쟁보다 정치적권력투쟁에 진절머리가 나서 탈당을 하였고...
    뭐 같은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서로의 가치을 인정못한다면 그들이 집권했을때 정말 가치가 다른 수많은 이들을 모듬어 안고 갈 수 있을 까하는 의문이 더 컸지요?
    어짜피 문제는 소통아니겠습니까?
    MB가 못하는 소통을 정말 지금의 진보진영은 할 수 있을 까요?
    각설하고 개량한복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전 좀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시절 전 문화 운동을 하였고 개량한복이란 말보다는 생활한복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지요.
    한복이란 느낌이 민족적 색채가 너무강해서 혹은 진보적 색채가 너무 강해서 많은 거부감이 있어으나 많은 이들은 그 옷을 입음으로써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고 선적정이고 향락적인 기존의 문화에대한 일탈이나 대안으로써의 상징이였다고 봅니다.
    또한 기존의 옷들이 미적요소만을 강조한 나머지 몸을 구속하는 옷이였다면 한복은 몸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옷의 의미도 강했습니다.
    어느나라든 그나라마다의 그 민족마다의 정체성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복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는 상징이며 자연과 가까워지는 옷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한복은 입고 있으면서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게되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요~
    한때 학교나 관공서에서 한달에 한번 한복을 입는 날을 정해 입던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김대중정부시절이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그당시 많은이들이 한복을 다시 보게 되었고 지금의 생활한복 업체들이 자리잡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운동권의 전유물에서 일반인들의 생활한복으로 발전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의 형식이 생각을 움직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형식보다는 형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부분을 개탄해 해야 되지않나 생각됩니다.
    생활한복이 운동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시절 마치 군사조직 같았던 운동권문화가 지금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건 아닌지요?

  15. 2009.07.28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딜레마가 있는 것 같네요.

    운동권의 순혈중주는 너무 오만하게 보이지만,
    순혈주의가 아닌 운동권은 운동권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모래알이든 바위덩어리든 물에 가라앉는건 마찬가지니까요

    열린 우리당이 그렇게 맥아리 없이 사그러든건 탄핵후폭풍의 집약된 힘을 엄한넘들 공천시키면서
    소진시켜버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보의 이미지가 성향이 사라져버렸거든요.

    한날당이나 열린 우리당이나 소속 멤버 구성에 또이또이 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법제안발표 나오고 처리하는데 있어서. 미디어법 강행처리하는 한날당처럼은 안돼겠지만.

    다수여당의 힘을 전혀 못살리고. 지지부진해지니. 다들 포기해버린거죠.

    타협하는 진보는 타협이 아니라 야합이라고 보입니다. 화합이 아니라 굴종이겠죠.

    뭐 야당의 입장 여당의 입장이 있겠지만. 적어도 진보라면 그 나름의 색깔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보입니다.


    덧말입니다만..형님이 개량한복 장사를 하셔서 저도 몇벌 있습니다. 한때 좀 입고 다니기도 했지요.
    무지 편합니다. 추리닝 비교도 안됩니다.
    단점이라면 하나.. 허리사이즈가 무한대로 늘어난다는거 하나죠.

    개량한복 = 진보 이런 시선이 참.. 그렇네요. 뭐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옆동네 일본은 돈있고 잘 사는 사람이나 기모노 입고 댕기는데.

    한국은 불편한 한복도 아니고 개량한복 입고 댕기는 것도 태클이라니.

    꼬투리를 잡기 위한 꼬투리가 아닐까 싶네요.

    저도 계량 한복에 태글건건 꼬투리를 잡겠습니다.

    잡으면 잡혀야죠.

  16. 류달용 2009.07.29 0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방송에서 들은건데요.
    그옷이름이 개량한복이 아니라 생활한복이란 표현이 맞다고 하네요.

  17. 한창진 2009.07.29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자님, 개량 한복으로 부르지 말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면 한복이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도 된다고 하면서 생활한복으로 부르자는 주장을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한복이 각종 의식 행사용으로 쓰여서 꼭 그럴 때만 입는 것을 우리 생활 속에서 한복을 편하게 입어야 하므로 생활한복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예리하신 김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모르고 계실리 없는데도 그렇게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으시곘지요?

  18. 보라매 2009.07.30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그렇죠!
    아~ 이 단어가 아닌데...한참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단어~~~~

    '생활한복'입니다.

    이게 더 어울리고 맞는것 같아요.
    이제 단어도 안떠오르네.. :...(
    그렇다고 영어도 진짜 안되고..어찌사나...쩝..

  19. punky 2009.08.01 0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활인/운동권 이분법 프레임 아이콘을 생활한복으로 한정시켰군요. 대중들의 시선이 모두 옳은것인가요? 타자구별을 위한 적을 운동권으로 향하고 있군요. 운동권 근처도 안가본 사람이지만 이런식의 구별짓기의 의도도 운동권 문화의 잔재랍니다. 이른바 딱지 붙이기!

  20. 구준모 2009.08.30 0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댓글에 '뭔가 주관이 뚜렸하고 왠지 까칠 할 것'같으신 분들이 많이시네요. 김주완씨가 하고자 하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인데...

  21. 김의산 2009.09.03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활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운동권이다. 이게 색깔로 사람잡기인데, 멀쩡한 사람을 색깔이나 옷차림으로 판단하고 나쁜 놈으로 몰고 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신다면 마녀사냥을 해도 동의하시겠군요. 제 생각에는 한복에 관심과 애착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자기문화, 우리정서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한복 입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남의 사상에 길들여져서 그 시각으로 남을 재단하는 편파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전통한복이 불편해서 개량해서라도 입고 싶고,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그나마 계승한다고 보아 아이들한테도 교육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 분들을 이렇게도 나쁘게 볼 줄이야 참 몰랐네요. 저도 이 번 추석에 생활한복 마련할려고 했는데, 나쁜 놈 되기 싫어서 양복 입고 말아야겠네요. 우리 사회와 정치의 잘못됨 점을 고치려고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민주화운동한 분들을 우리 국민이 그 공을 갚아도 모자랄 판에 한복 입고 다닌다고 비판을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나는 별로 진보적이지도 못하지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중 한복입은 그 분이 가장 훌륭해 보이던데요. 가장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우리 시민의 대표가 맞기는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