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는 제법 오래 전부터 새로운 '부음'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개 우리나라 신문의 부음기사가 '출세한 상주'를 앞세운 형식인데 반해 경남도민일보의 부음은 고인을 앞세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단순한 공지형이 아닌 서술형으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살아온 삶을 짧게나마 담고, 자손이 보는 고인에 대한 생각도 담으려 합니다.

물론 아주 유명인사가 사망했을 때는 저희처럼 그 사람의 생애를 조명한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처럼 평범한 분의 부음에서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명망이 있는 상주의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고인에 대해서는 '모친상' '부친상'이라는 단어 속에 흡수해 이름조차 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의 부음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아예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언제부터인가 부음의 형식을 좀 달리하고 있더군요. 거기도 저희처럼 기사 형식은 아니지만 일단 고인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위의 부음은 '궂긴소식'란에 실린 한겨레의 그것입니다. 고인의 이름을 먼저 명기한 후, 상주의 이름과 직책, 빈소, 발인 일시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가급적 고인을 중심에 두고 기사를 작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어제 제가 작성해 오늘자 신문에 게재한 부음기사입니다.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돌아가신 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자식들에겐 어떤 어머니였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신문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지역신문이기 때문에 가능한 점도 있을 겁니다. '하이퍼로컬'의 개념을 부음기사에도 도입해보자는 취지죠.

그런데, 이렇게 부음기사를 작성하려니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우선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에게 전화를 하여 고인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 이런 형식의 부음기사가 익숙해 있지 않다보니 그런 걸 물어보면 의아해 하는 유족들도 많습니다. 이상한 의심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부음기사를 이렇게 내보내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의 취재에 동의해주지 않는 유족의 경우, 그냥 공지형 부음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다행히 오늘도 부고가 하나 들어왔는데, 후배기자가 전화를 하여 이런 방식의 짧은 부음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음은 내일자에 나갑니다.

창원시 동읍 덕산 이덕순 씨 별세(김원식 씨 부인상, 김봉춘 대한사이클연맹 시설이사 모친상) = 창원시 동읍 덕산 이덕순 씨가 6일 오후 2시 40분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유족으로는 남편 김원식(75·농업) 씨, 아들 봉춘(대한사이클연맹 시설이사·정도엔지니어링 대표), 형철(자영업), 동윤(자영업) 씨, 딸 정숙(자영업), 영희(포항지곡초등학교 교사) 씨가 있다.

장남인 김봉춘 씨는 고인에 대해 "평소 성품이 온화하시어 자식에게 큰 소리를 한 번 내시질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김해 진영 하늘재 장례예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8일 오전 수시, 장지는 김해 추모공원이다.

연락처 : 010-9695-9001(김봉춘)

어떤가요? 고인의 삶을 짦게나마 조명하는 이런 방식의 부음이 상주 이름만 내세운 공지형 부음보단 훨씬 낫지 않나요? 이런 형식의 부음이 널리 알려져서 저희들이 전화를 했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답해주는 유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주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백두대간 2009.08.06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음기사 의뢰를 받을 때
    공지형, 서술형을 설명하고
    서술형을 원하는 경우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를 모르니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드네요.

    • 김주완 2009.08.06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미리 안내를 해주는 게 좋겠군요. 사실 지금까진 그냥 물어보다가 제대로 답해주지 않으면 그냥 공지형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2. 꼬치 2009.08.06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 공감합니다. 5년전쯤일것 같아요. 이런식으로 부음하자고 아이디어 냈다가 무시당했는데 다시 함 하자고 해봐야겠네요.

    그때 당시 재단에서 발행한 해외동향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아마도 그랬던것 같아요.
    미국의 어느 지역지였는데 모든사람의 삶은 위대하다라는 모토로 이런 뉴스를 전진배치시킨거죠.
    어떤 평범한(?-우리의 뉴스가치판단 기준에서) 여자가 죽었는데 그 사람의 부고가 도민일보기사 같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뒷부분에 주변사람이 기억하는 그 사람에 대한 멘트도 있었는데요 "그 녀의 토마토소스는 정말 맛있었다"는 식의 코멘트가 있었던거 같아요.

    • 김주완 2009.08.06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쉬...국장님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충투에서 도입한다면 저희도 대환영입니다. 이런 부음이 널리 퍼지면 상주들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녀의 토마토 소스는 정말 맛있었다."
      멋지네요.

  3. 하민혁 2009.08.06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 기자님, 항상 듣보는 이를 달뜨게 하는군요.
    늘 새로운 모습을 전하면서요. 고맙습니다.

    <덧> 바로 위에 댓글 남기신 백두대간님의 말씀을 참조하여 보완한다면 부음 기사의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물론 지금 하신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고 거기에 쌍수를 들어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요. ^^

  4. 류바리 2009.08.06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네요. 이게 진정한 지역신문의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웃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
    잠깐 읽는 사이 한 사람의 소중한, 또 위대한 삶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꼭 자리잡아 좀 더 이웃끼리 소식을 나누는 경남이 되고 다른 지역에도 좋은 예가 되길 바랍니다.
    위의 "그녀의 토마토 소스는 정말 맛있었다."는 기록이 가슴에 와 닿네요. 우리가 이런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살게 되었으면 해요.

  5. mahabanya 2009.08.06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괜찮네요. 지면의 한계가 있겠지만 지역신문으로는 정말 멋진 시도인 것 같습니다.

  6. 루돌 2009.08.06 2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냄새나서 좋네요. 요즘은 종이신문을 잘 안읽으니 부음란 자체를 접하기도 꽤 힘든 세상입니다.

  7. minsu 2009.08.06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픈 일이지만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부음 기사가 되겠네요. 좋습니다.

  8. 임현철 2009.08.07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신선하군요.

  9. zooin 2009.08.07 0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군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요.^^

  10. 보라매 2009.08.07 0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시도네요. 근데...
    부음광고내는데는 돈 안내나요? 돈내면...지면 많이 차지하면 비싸지 않나요?
    안내는거나, 내더라도 액수가 같다면 괜챦을것 같네요.

    '하이퍼로컬' 몰라서 찾아봤습니다. 덕분에 뭐라더라...클라우드소싱(?) 맞죠? 이런 말도 읽어봤네요.
    좀 어렵네요..피부에 안 와닿으니...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블로그, 트위터...
    스스로 선을 긋지 않으면 한도 끝도없이 연결된 고리 같아요...
    그렇게까지 필요한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다고 안하면 뭔가 부족하고 뒤떨어지는거 같고... 안 읽으면 손해보는거 같고 ㅋㅋㅋ

    어짜피 자는 시간이 부족해 다 보지도 못하지만요...
    글이 너무 많아서 한참 읽다가 힘들어 한 말씀 드렸습니다. 하하하...

  11. 실비단안개 2009.08.07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역시 경남도민일보군요.

    고맙습니다.()

  12. 만취인 2009.08.07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부터 마음이 짠~해지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부음 기사를 보고 미소가 지어진건 처음인거 같네요. ^^
    지역 언론 화이팅입니다. 또한 지역 언론의 무한한 가능성... 기대하고 있습니다.

  13. 푸른옷소매 2009.08.07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월6일자 부음기사 보면서.. 이렇게 부음기사를 내보낼 수도 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좋은데요.

  14. 정운현 2009.08.07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신문은 부음란이 너무 유명인사 위주죠.
    계속 밀고나가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게 돈이 될지도 모르겟습니다^^

    • 김주완 2009.08.07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뿐 아니라, 다른 기사도 좀 더 지역밀착으로 가야 하는데, 잘 변하지 않네요. 격려 고맙습니다.

  15. starrynight 2009.08.07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습니다.

  16. 신삼호 2009.08.07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부음기사 보면서 망자의 이름이 없어서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정확하게 집어내셨내요!
    서술형 기사가 참 좋읍니다.
    수고하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