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갖추려고 애쓰는 대신, 그냥 순서대로 써 보겠습니다. 8월 5일 경찰이 평택 쌍용차 도장공장이랑 차체공장 파업 조합원에 대해 진압 작전을 진행하던 날입니다. 일터인 경남도민일보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에 가니 텔레비전에서 <공공의 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1. 홍길동 가출과 노동자 파업 - <공공의 적>
검사 강철중이 나왔습니다. 널리 알려진 '홍길동' 대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법률 규정 때문에 사학 재단 악질을 잡지 못하는 장면입니다. 강철중은 악질을 잡으러 간다고 신분증 떼놓고 나오는데 부장 검사가 말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검찰청 복도였겠지요.

부장 검사가 다그칩니다. "검사가 법을 안 지키면 어쩌겠다는 거냐고!" 강철중이 되받지요. "홍길동이 왜 홍길동 됐는지 아세요?" "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까 억울해서 도둑이 된 겁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법이 뭔데요! 법~ 그거 최소한입니다. 사람들끼리 살면서 정말 지켜야 할 최소한인데, 그것도 안 지키는 진짜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못하면서 법 같은 거 없어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 억울하게 만들면요……", 이런 식으로 대사가 이어지지요.

머리 속에서 대사가 재구성되고 있었습니다(뭐, 깔끔하게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만). "노동자가 법을 안 지키면 어쩌겠다는 거냐고!" "노동자가 왜 파업을 하는지 아세요?" "뭐?" "해고를 해고라 하지 못하고 살인을 살인이라 하지 못하니까 억울해서 파업을 하는 겁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법이 뭔데요! 법~ 그거 공평해야 합니다. 이쪽도 지키고 저쪽도 지켜야 할 약속인데, 이쪽은 꽁꽁 묶어 놓고 자기네는 갖은 불법 저지르는 진짜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못하면서 해고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억울하게 만들면요……."

2. 80년 광주와 2009년 평택 - 인간 사냥하는 사진
이튿날 6일 그야말로 극적으로 노사 교섭이 타결이 됐습니다. 점거 파업의 마지막 거점이 진압하기에 쉽지 않다는 사정도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하루 전인 5일 저녁에는 경찰 헬기가 날아다니고 진압봉과 방패가 어지러이 춤추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앞서 경남도민일보에도 농성 조합원이 찍은 사진이 들어왔는데, 연속 촬영된 사진을 차례대로 훑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80년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사진 가운데는, 계엄군이 진압봉으로 얼굴에 피를 흘리는 광주 시민의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찌나 닮았던지, 목덜미와 팔뚝에 소름이 확 끼쳐왔습니다.





그런데, 진압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니 한 군데서만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경찰이 노동자들을 진압봉으로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80년 광주에서도 이를 두고 공무 수행이라 했겠지요. 시민을 폭도라 하고 말입니다. 평택에서도 경찰은 공무 수행, 폭도라고 30년 전과 마찬가지 뇌까리고 있습니다.(폭력 행위를 폭력 행위라 하지 못하는 억울함이란…….)




해고를 해고라 하지 못하고, 살인을 살인이라 하지 못한다고 하니, 어떤 이는 '그러면 무어라 하느냐?'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이들이 해고 대신 강요하는 말은 바로 '경영 합리화'입니다. 살인 대신 강요하는 말은 '회사 정상화'입니다. 경영 합리화와 회사 정상화에 묻혀 '해고당한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상황'은 감춰지고 말았습니다.

3. <공공의 적>에 나온 조폭과 겹쳐 보이는 우리 사회 지배집단
어쨌거나, 마음이 갑갑해서 가라앉혀 보려고 책장에서 집히는 대로 시집을 하나 빼들었습니다. 2000년에 나온, '창비 시선 200 기념 시선집'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였습니다. 신경림이 엮었군요. 의자에 앉아 시집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몇 장 들추니 김남주 시가 나왔습니다. 절대 일부러 그리하지 않았습니다만, '학살1'이었습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중략)…………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떨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속이 더 타올라 견디기 어려웠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컴퓨터로, 아이들이 내려 받아 놓은 <공공의 적 1-1>을 봤습니다. 이런 심정을 모르는 우리 딸 현지가, "아빠, 재미있어요." 하면서 틀었습니다. 저는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고삐리'들을 악용해 칼잡이로 내세우고 대신 감옥에 보내는 조폭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끝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술이나 마시고 취해버렸다면 오히려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칼 휘두르는 고삐리 얼굴과 진압복 입은 전투경찰 앳된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느끼한 조폭 얼굴과 이명박을 비롯한 정권과 자본의 대표 선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4. 상하이차 먹튀와 정부의 무능 또는 무책임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덧붙여 놓습니다. 8월 7일치 <한겨레> 5면 '잘못된 인수 합병 피하려면' 기사를, 띄엄띄엄 옮깁니다. 상하이차 먹튀의 면모가 돋보입니다.

<쌍용자동차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발단은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올해 1월 발표한 철수 방침이다. 주인이 회사 경영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1954년 설립된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에 뿌리를 둔 쌍용차는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완성차 업체다. 1988년 쌍용그룹에 인수돼 쌍용자동차가 됐고 1998년 1월 대우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적용을 받아 채권단에 넘어갔고 2004년에는 상하이자동차로 주인이 계속 바뀌었다.
상하이차 인수 당시 기술 유출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의 '의중'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조흥은행 등 채권단은 상하이차의 인수 대금 5900억원 가운데 4200억원을 빌려주면서까지 49.82%의 지분을 넘겼다.
김기찬 자동차학회 회장(가톨릭대 교수)는 "생산성을 높이고 내실을 다질 시기에 채권단은 채권 회수에만 매달렸다"며 "워크아웃으로 세금을 면제받아 이익을 내던 쌍용차 스스로도 노사가 '내부성의 함정'에 빠져 자기들 이익을 나누는 데만 신경 썼다"고 비판했다.
인수 당시 상하이차는 △완전한 고용 승계와 △2008년까지 10억 달러 이상 투자, △2007년까지 33만대 생산 체제 구축 등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나마 상하이차가 초기에 맺었던 특별약정도 소용이 없게 됐다. 산업은행이 2006년 2700억원을 지원하며 상하이차가 대출금을 갚은 뒤 특약을 해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 출신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완성차 업체들은 1~2년에 한 번씩 신차를 내야 하는데 2005년 이후 쌍용차는 부족한 연구개발 비용으로 신차가 없었다"고 했다. 2005년 나온 카이런 액티언도 이미 매각 이전 개발에 착수한 차종이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쌍용차 노조 점거 농성 배경엔 상하이차의 약속불이행 정부의 무책임함 등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근로자들의 분노가 얽혀 있다"고 말한다.>

5. 숨겨진 현안 비정규직 문제
그러고 보니, 쌍용차 파업 과정에서 쌍용차 문제인데도 오히려 묻혀 버린 사안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였습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86일째 70m 높이 굴뚝에서 생활해 온 서맹섭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부지회장이 6일 저녁 6시 20분께 헬기를 통해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에 서 부지회장의 부인 김지화(28)씨는 "회사가 요구한 게 결국 관철된 게 아니냐", "지금 협상안은 정규직 위주로 돼 있는데 비정규직인 애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걱정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또 보니, 상하이차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묘수도 썼더군요. 무섭습니다. 노동자를 갖고 노동자를 치는 수법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동자들 참 멍청합니다. "상하이차의 인수 이후 쌍용차는 2005년 비정규직을 대거 뽑은 뒤 2006년 희망퇴직 형식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해 554명을 회사에서 떠나보냈다. 비정규직도 이후 1000명 가까이 줄여버렸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카미 2009.08.10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 글 역시 의문제기 수준이네요. 심층분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쌍용차문제의 핵심이 중국 상하이차의 불법행위여부에서 우리 국민끼리 치고박는구조조정으로 옮겨져 버린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 김훤주 2009.08.10 1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합니다. 저는 상하이자동차의 먹튀가 이번 국면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관련 자료가 없어서 크게 다루지 못했지만, 쌍용차 노조는 진작부터 그리 주장하고 있는 줄 압니다.

  2. 지나가다 2009.08.10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리를 갖추려고 애쓰는 대신, 그냥 순서대로 써 보겠습니다. 8월 5일 경찰이 부평 쌍용차 도장공장이랑 차체공장 파업 조합원에 대해 진압 작전을 진행하던 날입니다.

    부평이 아니라 평택이겠죠....... 처음부터 이러면

  3. 홍길동의 말이 지금까지 유효하다... 2009.08.10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길동전이 나오던 옛날이나 2009년 지금이나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계속되는군요.

    씁쓸하기 그지없네요 ㅠㅠ

  4. 빅뱅 2010.01.05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혹시나 검색했는데 이런글이 있네요. 쌍용차때 직접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멍하니 서있다가 무릎에 볼트맞고 연골이 아작나 얼마전까지 병원신세 지다가 얼마전에 퇴원한 경찰입니다. 세상이 쌍용차에게 무슨짓을 했던 그건 저희같은 경찰관과는 아무 상관 없는일입니다. 그들은 억울한 범죄자이지만 그에 대항하는 우리는 억울할일도 없으며 더욱이 범죄와는 거리가 먼사람들이죠. 정의로운 범죄자와 정의로운 경찰이 맞붙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입니다. 인권이란게 직업에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거라면 김대중,노무현은 반 인권주의자고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 시위대 역시 똑같은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생존을위해 싸운사람은 쌍용차 노조뿐이었을까요? 용산에서나 평택에서나 동일하게 진정 경찰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건 글쓴이 당신같은 사람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네요. 아울러 당신 머리위로 쇠파이프나 화염병이 떨어질때 웃으면서 받아줄수있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당신이나 우리 경찰이나 생명중요한줄 아는 한명의 인간일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성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경찰이 경찰로서 남을 이유조차 없겠죠

    • 빅뱅 2010.01.05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가로 노조원이 저만큼 다쳤으면 그분은 1234000% 뉴스에 나왔을겁니다. pd수첩에 나올수도 있구요. 도장공장 안에 식수가 가득했다는건 아실만한 분들은 다들 아실겁니다. 해를 넘겼지만 수술의 흉터는 제가 죽는날까지 계속하겠죠. 불법시위란 이런거고 진압이란게 또 이런겁니다. 당신같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해서는 절대 그 답을 찾을수 없죠. 그럼 답이 뭐냐구요? '살기'없이 사람을 공격할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쌍방간의 싸움이 있다면 그걸 인정해야 하는겁니다. 죽으면 죽는대로 저처럼 다치면 다치는대로. 인권이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찌질댈 필요 업다는거죠

    • 김훤주 2010.01.07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한 번 해 보셨나요? 빅뱅님을 그 자리에 갖다 놓은 게 누구인 것 같습니까? 불법이든 합법이든, 파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경찰을 투입하는 나라가 정상이라고 여기시는지요?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보장이 돼야 마땅합니다. 불법이면 그 불법한 정도에 따라서, 사후에 징역을 살든 벌금을 내든 책임을 지면 그만이고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어떻고 저떻고를 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