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촛불 시위의 배후는 외국인?

영국의 존 로크는 혁명권을 얘기했습니다. 이 혁명권 사상이 대한민국 헌법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지요. 황광우는 자기가 펴낸 <위대한 생각들>에서 이렇게 주장한 존 로크가 촛불 시위의 배후라고 알려준답니다.

"10억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광우병 발생의 위험 때문에 100만 개의 촛불이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밝게 비춘 것은 역사의 전례가 없는 희한한 사건이었다. 이 거대한 촛불 시위의 선두에 선 것이 순진무구한 중3 여학생들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시위의 배후 교사자를 찾지 못해 안달하던 청와대의 문맹文盲이 몹시도 희극스러웠다."

이어서 말하지요. "중3 여학생들에게 죄가 있다면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의 가르침대로 길거리로 나선 죄밖에 없다." "'자유와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존립 이유이며, 정부가 이를 지키지 못하면 국민은 정부를 전복할 권리가 있다'고 (교과서에서) 가르친 이는 존 로크였다." "로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로크가 암약해 온 곳이다."

2. 사상이 있어야 세계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보인 뒤에 황광우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썼습니다. "사상이 없으면 세계를 볼 수 없고, 사상이 없으면 세계를 만들 수 없다. 오늘의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자 사명이라면 젊은이는 세계를 만들어온 사상들을 외면하고 살 수 없다."

황광우는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사상에 대해 기초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여긴다. "싫건 좋건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좋건 싫건 두 나라의 청년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줄 아는 교양을 갖추고 통일 한국이 어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로 갈지 대안을 찾는 과정에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초 지식은 필수적이다."

3. 사상 자체가 아니라 사상끼리 관계에 눈길

그러니까, 자유주의가 확대·심화된 까닭을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서 찾는 식입니다. 한 번 보시지요. "자유주의는, 중세의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부여한 하나만으로도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자유주의는,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같은 시민혁명을 뒷받침하는 사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부자인 남자'만 인간으로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20년대 전후입니다. 당시 상황을 황광우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달려오는 왕의 마차에 뛰어든 에밀리 데이비슨 같은 용감한 여성운동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동시에 모든 여성에게 남녀평등권을 보장한 1917년 러시아혁명이 유럽의 보수적 분위기에 미친 영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4. 사상의 영역을 확장해 보여준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나 레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사회주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공유한다네. 아무도 생필품 이외의 사유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되네. 만일 집과 땅과 돈을 사유한다면 통치자의 지위를 포기해야 하네."

동양에도 있었습니다. "압제와 불평등이 있었던 곳에서는 일하는 근로 대중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희구했는데, 인류의 현자들은 이들의 바람을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대변했다." "대동大同은 공자 시대 동아시아 고대인들의 유토피아다. 천하는 왕이나 제후, 대부들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공재이다. 다른 사람의 자식들도 내 자식처럼 돌보고, 다른 사람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봉양한다. 홀로 사는 과부나 홀아비, 고아와 독거 노인의 불우한 삶은 공동체가 보살핀다."

그리고 근대의 자유주의는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했습니다. 원래 자유주의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빈곤에 대한 자유와 방임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빈곤과 빈민의 문제가 심각했다. 1846년부터 3년 동안 아일랜드에 심각한 감자 흉년이 계속되었다. 약 150만 명이 굶어 죽었는데 영국 정부는 자유 방임 원칙을 내세워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수정되었다. 먼저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빈민층이 급증하자 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개선을 집단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경제적 요구 외에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요구하는 정치 운동도 벌였다." 황광우는 이런 국면에서 자유주의는 자기자신이 포기되는 대신 개선되는 길을 골라잡았다고 말합니다.

5. 정약용의 실학과 루소의 사상 비슷한 까닭

프랑스 대혁명의 아버지 루소(1712~1778)는 인생이 불쌍했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와 형이 집을 떠나 옆 마을 목사에게 맡겨졌습니다. 열세 살에 조각가의 도제가 됐으나 주인의 횡포를 못 견뎌 그만두고 열여섯 살부터 3년 동안 스위스와 프랑스를 유랑했습니다.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 루소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지배계급의 타락과 만행, 민중의 슬픔과 고통을 깊이 체험했고, 이는 그가 제시한 자유사상의 모태가 됐습니다.

정약용이 태어난 1762년은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펴낸 해이기도 하답니다. 당시 유럽은 시민혁명의 시대였고 조선은 양반계급의 혹독한 수탈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약용은 백성들 처지를 이해하고 대변하려다 오랜 기간 귀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정약용은 "루소보다 더 생생하고 간결하게 '민주' 사상을 설파"했습니다. 루소와 정약용은 "현실이 비슷했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정치사상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6. <위대한 사상들>의 특징은

<위대한 사상들>은 서양의 대단한 사상들뿐 아니라 동양의 유가·법가·도가는 물론 우리나라 동학과 실학도 다루고 패악스러운 '파시즘'도 다룹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1930년대 파시즘의 대중 획득을 시대 상황에 맞춰 풀이하는데 그럴 듯합니다. 황광우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제적 파탄, 가혹한 베르사이유 조약에 대한 독일인의 모멸감, 민주주의 전통의 상대적 미약함 등을 꼽았습니다.

정약용의 실학과 루소의 사상을 비교한 데서 나타나듯이, 황광우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보다 먼저 당대의 사회 배경을 들여다보고 사상가의 삶을 따라가 보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세상을 설계하는 밑그림을 교양 수준에서 어렵지 않게 얻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황광우는 말합니다. "세상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세상을 기획한다."

7. 또다른 즐거움-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위대한 생각들>의 지은이 황광우는 자기가 '58년 개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보다 다섯 살 선배가 됩니다. 이이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두루 거쳤습니다. 저는 이이가 쓴 책과 글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이 상상력의 크기와 세기가 남다르게 크고 세기 때문입니다.

이이의 글투를 저는 좋아합니다. 좋아하는데 까닭이 없을 리 없지요. 건방지게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황광우의 글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읽어보면 압니다. 모든 낱말들이 쓰여야 할 자리에 알맞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허투루 쓰인 낱말이나 문장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깨어 있지 않으면 이리 하기 어렵습니다.

황광우의 문장이, 이른바 '미문(美文)'은 아닙니다. 어떤 데는 투박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문장 표현을 위해 정확한 내용 전달을 희생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이의 글에는 이처럼 미문이 없지만 대신 군더더기나 비문(非文)도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황광우도 물론 윤문(潤文)을 하지 않을 리가 없을 테지만, 그이의 윤문은 목적이 미문 만들기가 아니라 비문·군더더기 없애기일 것입니다.

이런 대목이 보기입니다. (여기 제1기 민족주의에서 제1기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를 이릅니다.) "제2기 민족주의는 제1기 민족주의와는 처음부터 성격을 달리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민족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 민족의 부흥과 민족의 통일을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그 민족주의는 군사적, 침략적 성격을 띠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적 정의 위에 평등한 여러 민족이 우애를 지킨다는 꿈은 사라져갔다. 이런 배타적, 침략적 민족주의는 계속 강화되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즘의 인종주의, 곧 반유태주의로 이어진다."

여기 이 글에서 누구든 나서서 문장이나 낱말을 들어내거나 고쳐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뜻이 더 분명해진다면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여기서 조그만 존재 하나라도 바꾸면 원래 뜻이 다칩니다. 그만큼 딱 맞게 쓴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뒤에서 두 번째 문장 끄트머리 "꿈은 사라져갔다"를 "꿈은 사라졌다"로 고치는 것조차 뜻에 영향을 끼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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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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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4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에서 보고 왔어요~ (@jisimy) '레즈를 위하여'의 황광우님 맞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존 로크가 암약했다, 재밌네요^^ 철학서적 괜찮은 것 찾고 있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해요~

  2. 초록누리 2009.09.04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책 소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네요. 역사를 공부해서인지 늘 관심 가지는 분야입니다.
    감사합니다.
    책은 다음에 한국에 주문을 해야겠습니다.

  3. 친한언니 2009.09.04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책을 추천하고 싶으셨겠어요. ㅎㅎ(제가 사서 제 멋진아들에게 전할께요)
    몇일전 낮술에 취한 전화... 명쾌한 기억은 없는데 훤주님 음성에
    조금 당황스러움도 느껴졌던것 같고...
    제가 무슨말을 했는데 그 답변이 월요일 보자고 하신거 그거 기억나네요. ㅋㅋ
    늘 그렇지만 그렇게 하고나면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아마도 1년여의 장정이 끝나고 나니 많이 허허로왔었나봅니다. 해량을...

  4. 글 좋아요. 2009.09.05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2기 민족주의는 제1기 민족주의와는 처음부터 성격을 달리했다. -> 제2기 민족주의는 제1기 민족주의와 처음부터 성격이 달랐다. .. 뭐 그냥 그렇다고요. ㅋ

    • 김훤주 2009.09.16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름 타당하신 지적입니다. 그런데 제가 읽기에는, "성격을 달리했다"를 "성격이 달랐다"로 바꾸면, 뭔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덜해지면서 붙박이가 돼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리 표현을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