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두 번의 강의를 했고, 두 건의 사내 행사(블로그 강좌, 지면평가위 워크숍)를 제가 속한 부서 주관으로 치러냈으며, 금요일(16일)엔 1960년 이후 49년만에 부활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지역 합동위령제' 행사를 도왔습니다.

위령제 준비과정에서 제가 맡은 것은 행사 안내 팸플릿과 마산 민간인학살 자료집을 편집, 발간하는 일이었습니다. 팸플릿은 24페이지, 자료집은 145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책(冊)을 만드는 일이라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1950년 마산의 참극>(마산유족회 발행, 김주완 편저, 비매품)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자료집은 '한국전쟁 전후 마산지역 민간인학살에 대한 유족과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문 요지와 권고사항, 그리고 제가 그동안 틈틈이 썼던 보도연맹 학살의 진상에 대한 글들과 1960년 유족회 활동 및 5·16쿠데타정권의 유족회 간부들에 대한 판결 분석, 그리고 민간인학살에 관여한 지역 토호세력이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실었습니다.


또한 뒷부분에는 1960년 4·19혁명 직후 활동했던 '전국피학살자유족회'(회장 노현섭)의 활동자료를 그대로 스캔하여 실었습니다. (부족한 책이지만, 널리 공유하길 바라는 차원에서 PDF 편집상태 그대로 파일첨부합니다. 필요하신 분들 다운받아 보세요.)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그 전국유족회의 활동자료 중 '선언문 및 결의사항'인데요. 이는 5·16쿠데타 직후 체포돼 위헌적인 소급법인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비상조치법'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했던 당시 대구유족회 이원식 회장(전국유족회 사정위원장)의 아들 이광달(현 대구유족회장) 선생이 보관해왔던 문건입니다.

물론 이 문건은 이광달 선생에 의해 진실화해위원회에도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문건의 내용이 원문 그대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아마도 이번 자료집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이광달 선생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모두 6개항으로 되어 있는 49년 전 전국유족회의 결의사항을 한 번 보겠습니다.


1. 법을 거치지 않고 살인을 지시한 자 및 관련자를 엄중 처단하라.
2. 피학살자 명단 및 집행시일 장소를 명시하라.
3. 피학살자 유족에 대한 정치경찰의 감시를 즉시 해제하라.
4. 피학살자의 호적을 조속히 정리하라.
5. 피학살자 유족에게 국가의 형사보상금을 즉시 지급하라.
6. 합동위령제 및 위령비 건립에 당국은 책임지라.

우기와 같은 사항을 결의함.

단기 4293년 10월 20일
전국피학살자유족회 결성대회

이같은 결의사항 다음에는 전국피학살자유족회 간부들의 명단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회장은 노현섭(마산) 씨고, 이 문건을 보관해온 이원식 씨는 사정위원장으로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이 간부들 대부분은 5·16쿠데타 바로 다음날인 5월 17일 군부에 끌려가 쿠데타 정권이 반대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소급입법한 특수범죄 처벌법에 의해 징역 10년, 무기징역, 사형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됩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바로 그 법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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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사장 사건이 그랬듯이 유족회 간부들의 사건도 곧 대법원의 재심판결과 손해배상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49년 전 결의했던 6가지 요구사항 중 적어도 1번(가해자 처벌)과 5~6번(배·보상, 위령비 건립)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2번(진상규명) 역시 곧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시간부족으로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건이 밝혀진 것보다 더 많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요구가 해결될 날은 언제쯤 될까요? 적어도 현 정권 아래에서는 난망해 보입니다. 다음에 민주적인 정권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그 땐 지금 남아 있는 유족들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하직한 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인권국가, 문명국가가 되기는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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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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