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주제로 삼은 청소년들의 창작품이 잇달아 나왔습니다. 창원 경일여자고등학교 허예슬이 쓴 장편소설 <고슴도치 아이들>과 마산 무학여자고등학교 연극반이 펼쳐 보인 연극 <달빛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미소>가 그것입니다.

무엇이라 얘기하고 있는지 가만 들여다보니 요즘 청소년들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지가 빤히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성적이나 왕따 따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1. <고슴도치 아이들>에 나타난 청소년 자살

먼저 <고슴도치 아이들>. 주인공 소애가 '욕조 안에서 죽음의 신에게 다가'간 뒤에 마찬가지 자살로 세상을 등지려 한(또는 등진) 청소년 네 명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얘기들을 담았습니다.

주인공 소애는 '1등'이 아니어서 소외됐습니다. 8~9등, 중간, 어중간, 어색함, 어벙, 중위권……. "무조건 1등인데. 잘해 봐야 2등에게까지밖에 눈이 안 돌아가는데", "아무것도 아닌 거, 거기 중에서도 어중간한" 존재였답니다.

그래서 "진짜 노력해도 안 되니까 노력할 때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던"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잉여인간으로 살까봐 무서워서 손목을 그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일상입니다.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입니다. '재희 오빠'는 호기심에 이끌려 폭력 조직에 빨려 들어간 인물입니다. 금세 2인자까지 올라갔으나 두목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두목은 재희에 대한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3억원을 빌린 다음 튀어버렸답니다. 모든 것이 끝나 버렸습니다.

'지빈 언니'는 가난한 가운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몸을 팔았답니다. 얼굴은 예쁘고 몸매는 김태희 뺨칠 정도로 나오지요. 그것은 "대학 가서 멋진 남자도 만나고 꿈도 이루고 싶어서 한 것"이지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다." 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사랑하지도 못할" 지경이 됐습니다.

'용훈 오빠'는 왕따 출신이랍니다. 같이 다니던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네가 내 옆에 붙어서 따라다닐 때마다 쪽팔렸다." 이런 일도 겪었습니다. 친구들은 화장실로 납치해 담뱃불로 용훈을 지져댔습니다. "허벅지니 귀니, 심지어 치명적인 곳까지."

'송이'는 '깐족거리는' 아이 때문에 자살했습니다. 송이는 좋아했지만 그 친구는 송이를 왕따시키고 다른 친구들과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 시간에 "엄청 열을 받는 일이 있어서" 손에 쥐여 있던 고무칼로 그 친구를 찌르고는 뛰쳐나와 달리는 자동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2. <달빛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미소>에 나오는 자살

다음은 연극 이야기입니다. 무학여고 같은 연극반 학생인 정다영이 쓴 희곡 <달빛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은 어떨까요? '지영이'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기계보다 더하게 쉬지도 않고 공부하기만 강요합니다.

'유린이'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비롯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소영이'는 레즈비언이라는 성(性)정체성이 알려지는 바람에 아이들한테 '더럽다'는 놀림을 받습니다.
 
'다솔'은 공부는 전교 3등일 정도로 곧잘 하지만 '몸매가 받쳐 주지 않아' 좋아하는 남학생한테 차입니다. '미란'은 가난한데다 이혼까지 한 엄마가 싫어서 담배도 피우고 '다리도 건들거리며' 어긋나 있습니다.

무학여고 연극반의 연습 장면.

무학여고 연극반의 같은 연습 장면.


그러나 이들은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고슴도치 아이들>에서는 약을 먹고 손목을 그어서 비생비사(非生非死) 지경을 헤매다 깨어나고, <달빛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미소>는 자살 실행 직전 멈춥니다.

그런데 이런 결말이 청소년 작가들이 구성력이 처지고 상상력이 모자라고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결과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살'을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3. 자살하는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살에 이르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한 치 빈 틈 없이 짜여 있을까요? 죽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과정이 필연으로만 짜여 있을까요? 동기나 계기는 아주 작아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냥 한 순간에 '절망'에 부닥치면 자살을 실행하는 것 일반적일 듯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청소년 작품이 더 '리얼한' 것 같습니다. 어른들 작품에서는 자살에 개연성을 넘어서는 필연성을 주고 전형성까지 구현하기 위해 심리적 또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스토리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 청소년 작품쪽이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아가 만약 그렇다면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살을 꿈꾸고 실행하는 과정도 허술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정도 사연으로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 청소년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요?

그러니까, 현실이 문제인 셈입니다. 자살을 하기도, 자살을 하려다 포기하기도 실은 쉽게 이뤄집니다. 어떤 필연과 당위로 짜맞춘 인과관계에 따라 일어나는 일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허예슬 소설과 정다영 희곡은 이런 청소년(아마도 실은 어른도 마찬가지)들 현실에 맞닿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살의 또다른 원인이 무엇일까, 한 번 더듬어 보자는 얘기입니다.

4. 자살을 막는 가장 좋은 처방은 무엇일까요

작품 곳곳에서 슬픔과 어두움이 묻어납니다. 슬픔과 어두움은 '고립'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허예슬 소설의 주인공 소애의 자각(自覺)에서 뒤집어져 나타납니다.

"(상대가 아파하는데도) 내가 궁금한 것만 물었던 것이었다. 후회했지만, 너무나도 바보 같았지만, 이게 내 모습이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포용도 내 삶엔 없었다. 오직 이기적인 면모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자각은 이처럼 '동병상련'을 안은 이들이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일어납니다. 청소년 작가들과 배우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한자말로 하자면, '소통(疎通)'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풀어 보자면, 성적이라든지 왕따라든지 하는, 자살의 동기랄까 계기들이 '고립'을 만나면서 더욱 깊어집니다. 그러나 진짜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면 자살의 동기랄까 계기들이 희미해지고 옅어집니다.

'고립'의 슬픔과 어두움 속을 헤매다 소통을 거쳐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고슴도치 아이들>에서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 여러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장면은 <달빛 추억……> 마지막에 몰려 있습니다.

자살을 막는 가장 효과 있는 처방은, 청소년들의 작품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앞에 말씀드린대로, 바로 '소통'인 것 같습니다. 지금 청소년이거나 한 때 청소년이었던 모든 이들에게, <고슴도치 아이들>을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214쪽. 1만2000원.

<달빛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미소>는, 제 값어치를 인정받았습니다. 8월 제13회 경남청소년연극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9월 제59회 개천예술학생연극제 대상을 차지한 것입니다. 희곡을 쓴 정다영은 개천예술학생연극제에서 연출상과 희곡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훤주

고슴도치 아이들 - 10점
허예슬 지음/아름다운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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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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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9.10.23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청소년기를 겪었는데, 요즘 청소년은 우리때보다
    더 복잡한 세계의 삶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소설과 희곡을 쓴 학생들이 대단합니다.

  2. 구르다 2009.10.23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미루가 경일여고 다닙니다.
    딱 중간입니다..
    근데 그렇게 죽을똥 살똥 노력도 하지않고..
    시키지도 않습니다.

    지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요..
    경일여고가 좀 빡시게 시킨다고 합니다.
    창원내 1등을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 김훤주 2009.10.23 1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일여고가 그런 면이 있군요.

      내년에 고등학교 들어가는 우리 딸 현지는 '야자'를 하지 않겠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 구르다 2009.10.23 1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용호고등학교를 1순위로 하라고 하세요.
      제가 알기로는 용호고등학교 동아리활동이나 이런것이 많이 보장되는 것으로 압니다.

      미루는 보컬을 하고 싶어라 하는데
      학교에서 그런 분위기가 아니랍니다.
      수학여행, 소풍이런 것도 없애려고 한다고 하니..

      전 정보가 부족해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지금도 우짜면 야자를 빠질까 이런 생각을 하더군요.

    • 김훤주 2009.10.25 0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집이랑 가장 가깝다 보니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3. 대화단절 2009.10.23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끼리 대화도 계속 줄어들어서 많은집에서 부모자식관계가 아니라 동거인처럼 변해버렸고, 아이를 무조건 성적으로 구분해서 1~5등을 제외한 45명의 학생은 실패자로 만들어놓으니...

    청소년상담센터도 있고, 정신과도 있지만 문제는 상담센터는 한계가 있고 정신과는 부모들이 미쳐야만 가는곳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니...부모가 변해야할때입니다.

    • 김훤주 2009.10.23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많은 경우 부모가 아이들에게 벽이지요. 저도 한 때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보니까, 우리 아들 현석이 얘기들어서 알게 됐는데, 어버이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그리 많다고 합니다.

  4. 예슬 엄마 2009.10.31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훤주 기자님. 기사 감사합니다. <고슴도치 아이들> 예슬이 엄마입니다. 예슬이가 자기 친구들에게 조금씩 들려 주던 이야기를 제가 아까워서 책으로 내게 되었는데, 정말 잘 전달해 주신거 같네요. 감사드립니다. 예슬이는 소설이 나오고 한참 어리둥절 하더니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 하루의 사춘기 생활을 잘 견디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한층 성숙해진거 같아 대견하기도 합니다.
    같이 기사에 소개한 무학여고의 다영이는 어떤 아이인지 궁금하네요!! 언젠가 같이 만났으면 하는 생각도~~ 그리고 창원 경일여고 참 괜찮아요!! 예슬이는 경일여고 진학 후 장래 희망이 소설가에서 경일여고 교사로 바뀌었을 정도예요. 애들이 참 행복해 하면서 학교에 다녀요!!

    • 김훤주 2009.11.01 0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제가 고맙지요. 글 쓸 거리를 주셔서요. 하하.

      전화 번호 두 개 건네받기는 했는데, 연락 한 번 드려보고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제가 이해한 대로-또는 받아들인 대로-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싶어서 그냥 썼습니다. (연락드리지 않은 데 대해서는, 한편 미안하다는 말씀 드리고, 한편 양해해 주십사 말씀 올립니당~~~)

      신문에 담지 못했던 내용도 있고, 신문 기사로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부분도 있고 해서리, ^.^ 다시 한 번 고쳐 썼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전달해 줬다고 하시니까 말입니다. 다음에 뵙게 될 때 다시 인사 올리겠습니다.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