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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뜻하지 않게 읽게 됐습니다. 중2 우리 딸 현지가 골라서 산 책인데 읽다보니 멈춰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공지영과 공선옥을 헷갈려할 때가 한 번씩 있습니다. 아마 제게는 그 둘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돼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예전 같으면, 스땅달의 소설 <적과 흑>이나 황석영의 소설 <객지> 정도는 돼야 ‘잘 썼다.’고 했을 텐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괜찮은 문장 또는 의지나 정신이 제대로 실린 것 같은 구절이 두엇만 있어도 ‘좋은 책이군.’, 합니다.

<즐거운 나의 집>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몇 구절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는 이 언사가, 공지영의 이 소설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잘 팔리는 책은 사지 않는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현지가 이 책을 골라 들지 않았으면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지 덕분에 좋은 글 읽는 즐거움을 군데군데 누렸습니다. 현지도 이 책을 아주아주 맛나게 읽었다고 합니다.

제 눈길이 저도 몰래 끌려간 몇 군데를, 적어봅니다.

아빠는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늘 아빠의 처절한 패배로 끝나곤 했었다.(10쪽)

빨간 딱지가 더덕더덕 붙은 집에서 외할머니는 매일 밤 울었는데 엄마는 외할머니가 더 슬퍼할까 봐 슬픈 기색도 보일 수가 없어서 매일 하나씩 즐거운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뻐하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하루는 하루 종일 좋은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이 나쁜 일만 일어났기 때문에 도무지 즐거운 일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제 이보다 더 나쁜 날은 없을 거야, 생각하며 혼자 기뻐했다고 했다.(31쪽)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 뭐든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다.(35쪽)

집 안을 떠도는 먼지의 칠십 퍼센트는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죽은 세포라는 기사를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집 안의 먼지 하나도 예사로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제의 나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제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또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인 것이다. 이 이상한 논리의 뫼비우스 띠가 삶일까?(47쪽)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고 하느님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49쪽)

“난 춥고 흐린 날이 좋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맑은 날을 좋은 날씨라고 판단해버리는 건 횡포잖아. 엄마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걸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며?”(53쪽)

“우리 엄마는 세 번이나 이혼한 사람이에요. 엄마 집에는 두 동생이 있는데 우리 셋은 모두 성이 달라요.”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엄마가 참 열심히 사시는 분인가 보구나.” 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엄마가 이혼을 세 번이나 한 것이 열심히 사는 증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깔깔 웃었다.
“왜 웃지?”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대개는 그 말이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을 때니까요.……”(63~64쪽)

“생각해 보았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느냐, 아니면 집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매를 맞느냐…….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렇게 맞고 난 다음 날 대학에 가서 페미니즘을 강연해야 할 때였어.”(88쪽)

누군가 대통령이 될 때에는 국민의 반 조금 넘는 수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나머지 반은 그 사람을 너무나도 싫어하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 마침내는 엄청난 수가 되는 데도 모두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92쪽)

‘세상에는 부모가 이혼해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지만 부모가 이혼하지 않아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다.’(152쪽)

일기예보에서 좋은 날씨라는 의미가 구름이 없는 해가 쨍쨍한 날을 표현하는 일은 고쳐져야 한다.(156쪽)

“……그리고 물었어. 스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하고. 그랬더니 그 스님이 대답하더구나.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일어설 때 일어서며 걸어갈 때 걸어가면 됩니다, 하는 거야. 아저씨가 다시 물었지. 그건 누구나 다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하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을 때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일어설 때 이미 걸어가고 있습니다.”(225쪽)

“……학부모님께, 로 시작하는 통지서 대신 보호자 되는 분께,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수업 시간에 무심히 내일 엄마 오시라고 해요, 라는 말 대신 보호자분 오시라고 하세요, 라고 하고 싶었다구…….”(328쪽)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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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지음 | 푸른숲 펴냄
공지영 신작 장편소설! 엄마 같은 딸, 딸 같은 엄마. 그들이 펼치는 맥주처럼 알싸한 가족 이야기.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친엄마와 사는 18세 당찬 소녀 위녕이 들려주는 좌충우돌 엉뚱 발랄 유쾌한 가족 이야기와, 가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상처, 사랑이기에 거부할 수 없었던 고통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치유하고 있다. 이 소설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는 작가, 공지영이 발견한 가족,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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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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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인 2008.04.14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선옥하고 공지영하고 헷갈리신다니요!

    두 작가는 너무도 다릅니다. 공지영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면, 공선옥 소설은 공지영 소설보다 실천적이면서 삶이 녹아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봅니다. 단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신다면,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한번 정독해보셨으면 하네요. 그러면 다음부터는 작가의 이름을 모르고 두 작가의 소설 중 하나를 읽어도 누가 쓴 소설인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2. 쭈구리 2008.04.15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보고 글남깁니다..글쎄요...실천적이며 삶이 녹아 있는 소설이 좋은 것이겠지요..다만 두분의 소설을 정독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전 공지영씨 쪽에 더 정감이 갑니다.공지영씨야 말로 어쩌면 더 삶에 다양성을 겪어본 입장 아닐까요?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걸 느낍니다. 물론 일반인이 할수 없는 그런 삶이었지만..그리고 무거운걸 무겁게 표현하는 것 보다는 가벼운듯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읽고 나면 이게 정녕 가벼운 이야기 였던가 싶기도 하고..그의 개인적인 수필 상처입은 영혼 읽어 보시길 추천해 봅니다.

  3. 김훤주 2008.04.15 0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글 남겨 주신 두 분 선생님. 제가 이상한 느낌은 이런 데서 오는데요. 공선옥과 공지영이 문체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고 얼굴 생김도 다르고 한데, 그리고 그것을 저도 알기는 하는데, 그냥 어떤 이미지로는 참 닮아 있다, 적어도 저에게서는, 뭐 이런 뜻입니다요.

  4. 핑키 2008.04.15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좋아하는 작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