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발간 및 국민보고대회 관련기사를 썼더니, 오늘(9일) 아침신문을 본 독자들로부터 여러 번 전화를 받았다.

'음악가 남인수도 포함되었느냐', '조연현은 어떻게 됐느냐'는 등 지역출신 인물들의 수록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이번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인명편, 전3권)에는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이 수록되어 있다. 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앞서 인터넷으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주요' 수록인물을 공개했다.

그러나 4389명의 전체 명단은 아직 공개하지 않아 책을 구매해 받아보기 전에는 책에 수록된 개개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아직 책을 받아보진 못했으나,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4389명의 명단을 별도로 입수했다.


이 사전에는 지난해 4월 명단 발표에서 공개됐던 경남 출신 또는 경남에서 활동했던 친일파 400여 명의 명단도 대부분 그대로 수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에는 마산에서 활동했던 가곡 <선구자>의 작곡자인 조두남과 작사자 윤해영은 물론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경남일보 주필, 음악가 남인수(진주)와 반야월(마산), 박시춘(밀양), 문학평론가 조연현(함안), 연극인 유치진(거제·통영), 아동문학가 이원수(양산·창원)도 포함됐다.

남인수와 조두남.

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4월 29일 발표한 수록대상자 4776명 중 387명이 이번 사전에 수록되지 않았으나 경남 지역 주요인물들 중에는 빠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387명 중 수록대상에서 완전히 빠진 인물은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 3명뿐이며, 나머지는 추가 조사와 자료수집을 거쳐 추후 별도로 발간될 '보유(補遺·빠진 것을 보태어 채움)'편에 수록할 것"이라며 "통영 출신의 시인 유치환도 심의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어 "중앙의 거물급 친일파들은 대다수 포함되었으나, 지방이나 북한, 해외의 경우 일부 빠진 사례들이 있다"면서 "현재 편찬위원회가 파악하고 있는 친일행위자일지라도 문헌 기록으로 입증되지 않을 경우 잠정 보류한 사례도 있는데, 이 역시 추가조사를 하여 수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내년 '보유'편 발간 외에도 '일제협력단체사전'과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등을 2014년까지 발간할 예정이며, 이후에도 자료집과 백서, 개별 인물과 전문분야에 대한 연구서 들을 계속 펴낼 계획이다.

사전에 수록된 인물 중에는 △통영 남망산공원에 이순신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경승을 비롯 △화가 김기창 △경남도 참여관과 산업부장을 역임한 김대우 △소설가 김동인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 △지금은 철거된 진주 논개영정을 그렸던 화가 김은호 △경남 방첩대장을 역임했던 특무대장 김창룡 △경남지역에서 활동한 일제 순사 노덕술 △시인 모윤숙 △영화배우 문예봉 △만주군 출신의 전 대통령 박정희 △양산과 밀양 출신의 박춘금 △조선일보 방응모 △연세대 백낙준 △해인사 주지 변설호 △시인 서정주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전 국무총리 장면 △무용가 최승희 △고려대 현상윤 △이화여전 김활란 △작곡가 홍난파 등이 포함됐다.

장지연과 유치진.

특히 동아일보 김성수와 경남일보 장지연 등 이미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20명의 경우, 이번 사전 발간을 계기로 서훈을 박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수록된 각 분야별 인물 중, 특히 일반의 관심이 높은 ◇교육 학술분야와 ◇언론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미술분야의 친일파 명단를 공개한다.

◇교육 학술분야(52명)

강영석 고강만 고승제 고원섭 고황경 구찬서 김두정 김두헌 김상용 김성수 김활란 박관수 박마리라 박용구 박인덕 배상명 백낙준 서은숙 손정규 송금선 신봉조 신석호 양봉화 여운홍 오금선 유억겸 윤영구 이능화 이묘묵 이병도 이병소 이숙종 이완룡 이헌구 인정식 임숙재 장덕수 장응진 정구충 조기홍 조동식 조재호 조한직 주운성 차사백 최동 허화백 현상윤 현채 홍승원 홍희 황신덕

◇언론(40명)

김동진 김선흠 김인이 김형원 김환 노성석 노익형 노창성 박남규 박희도 방응모 변일 서강백 서춘 선우일 송순기 신광희 심우섭 양재하 유광렬 이긍종 이기세 이상협 이원영 이윤종 이익상 이인섭 이정섭 이창수 이혜구 장지연 정우택 정인익 최영년 최영주 함상훈 홍승구 홍양명 홍종인 황의필

◇문학(37명)

곽종원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억 김영일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방인근 백철 서정주 유진오 윤두헌 윤해영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원수 이윤기 이찬 임학수 장덕조 장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연현 조용만 조우식 주요한 채만식 최재서 최정희

◇연극(28명)

김건 김관수 김승구 김태진 나웅 박영호 박춘명 서항석 송영 신고송 신정언 심영 안영일 안종화 오정민 유장안 유치진 이광래 이서구 이서향 임선규 전창근 조천석 주영섭 한노단 함대훈 함세덕 황철

◇영화(30명)

김소영 김신재 김영화 김일해 김정혁 김학성 김한 남승민 독은기 문예봉 박기채 방한준 복혜숙 서광재 서월영 신경균 안석영 양세웅 이금룡 이명우 이병일 이익 이재명 이창용 최숭흥 최승일 최운봉 최인규 허영 홍찬

◇음악(43명)

강영철 계정식 고종익 김관 김기수 김동진 김생려 김성태 김영길 김원복 김재훈 김준영 김천애 김해송 남인수 박경호 박시춘 반야월 백년설 서영덕 손목인 안익태 이규남 이면상 이봉룡 이인범 이재호 이종태 이철 이홍렬 임동혁 장세정 전기현 조두남 조명암 조백원 최승희 최팔근 최희남 한상기 함화진 현제명 홍난파

◇미술(23명)

구본웅 김경승 김기창 김만형 김용진 김은호 김인승 김종찬 노수현 박영선 박원수 배운성 손응성 심형구 윤효중 이건영 이국전 이봉상 이상범 임응구 장우성 정종여 지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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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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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팀장 2009.11.09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가 잘 알고 있던 분들 몇몇 분들이 친일쪽이였구나... 하는 소식을 듣고는... 한편으로 놀랬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저희 팀원가 이 분들 애길 나눴는데....

    정말로 이걸로 역사가 바로 잡아질까 하는 궁금증이....

    어째튼... 놀랬습니다.

  2. 실비단안개 2009.11.09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뉴스를 보니 박정희 때문에 난리도 아니더군요.
    유치진과 유치환은 여기서도 출생지가 명확하지 않나봅니다. 유치환은 계속 추가 조사 --

    애국가 작곡자가 친일파면 애국가를 바꾸야 하나 -
    시와 노래가 있는 교과서가 수정되어야 겠지요?
    좀 똑 바로 살지.


    제 블로그 이름도 찜찜하군요.^^//

  3. 김형섭 2009.11.09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들도 몇몇 계시네요..

    깜짝놀랐습니다.

  4. 이성화 2009.11.10 0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뜻깊은 날 같습니다. 진작에 이러한 작업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더럽고 욕된 과거가 덜 부끄러워 지겠네요 ㅎ

  5. 시일야방성대곡 2009.11.10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은 다 이해하면서도 유독 한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백범일지에 이렇게 전한다.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安俊生)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하지 않았다.”
    안준생이 누군가. 우리가 자랑하는 독립운동가 중 부동의 1위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이다.
    최근 한 좌파 단체가 펴낸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 그보다 친일 행적이 덜한 사람들이 친일파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만주국 중위였다는 경력만으로 친일파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夜放聲大哭)’으로 을사늑약을 규탄한 위암 장지연 같은 이도 친일적인 글 몇 편 탓에 더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반면 좌파 인사로 신문에 학병 권유문을 썼던 몽양 여운형 같은 이는 무슨 이유인지 명단에서 빠졌다.

  6. 시일야방성대곡 2009.11.10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45년 11월 5일, 백범 김구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임시정부 수뇌들과 함께 충칭(重慶)을 출발해 상하이(上海)에 기착한다. 13년 전 첫 임시정부가 수립된 땅으로, 일제의 압박을 피해 항저우(杭州•1932), 전장(鎭江•1935), 창사(長沙•1937), 광저우(廣州•1938), 류저우(柳州•1938), 치장((綦江•1938), 충칭(1940) 등지로 옮겨다니며 독립운동을 한 그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항저우로 쫓겨갈 때에 비해 상하이에 거주하는 동포 수가 수십 배 늘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백범은 말을 잇는다. “하지만 독립정신을 굳게 지키며 왜놈의 앞잡이가 되지 않은 사람은 10여 명뿐이다.”

    왜 아니겠나. 백범 같은 위인이라면 모를까 광기 서린 일제의 총칼 아래서 민족 지조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조선인들이 얼마나 됐겠나 말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40년 가까이 방치된 세계사의 그늘 속에서 하루 살기를 걱정하는 범부로서 언감생심 광복의 꿈을 품을 수 있었을까 말이다. 백범은 다 이해하면서도 유독 한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백범일지에 이렇게 전한다.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安俊生)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하지 않았다.”

    안준생이 누군가. 우리가 자랑하는 독립운동가 중 부동의 1위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1939년 10월 15일 서울 장충단 공원,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박문사(博文寺)를 찾는다. 이름 그대로 안 의사한테 사살된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려고 만든 절이었다. 준생은 이토의 영전에 향을 피우고 “아버지의 죄를 내가 속죄하며 보국의 정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다음날엔 이토의 둘째 아들인 일본광업공사 사장 분키치(文吉)를 만나 직접 사과했다. 이 만남을 담은 사진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0월 18일자에 ‘극적인 대면, 여형약제(如兄若弟) 오월(吳越) 30년 영석(永釋)’ 즉, ‘형•동생으로 30년 원한을 영원히 풀다’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만 해도 준생은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국과 달리 학교 보내주고 집 구해준 일제의 책략에 끝내 굴복하고 이용되고 만 것이다. 백범은 호랑이한테서 난 ‘개’를 용서하기 어려웠겠지만 나는 그를 친일파로 모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안중근의 핏줄이었기에 불운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였을 뿐이며, 죄가 있다면 그것은 거사를 치른 애국자의 친아들 하나 제대로 추스를 수 없었던 부끄러운 조국이었다.

    다행히 최근 한 좌파 단체가 펴낸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같은 이유가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 친일 행적이 덜한 사람들이 친일파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만주국 중위였다는 경력만으로 친일파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夜放聲大哭)’으로 을사늑약을 규탄한 위암 장지연 같은 이도 친일적인 글 몇 편 탓에 더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반면 좌파 인사로 신문에 학병 권유문을 썼던 몽양 여운형 같은 이는 무슨 이유인지 명단에서 빠졌다.

    이런 중심 잃은 선정으로 누가 무엇을 얻는지 모르겠다. 식민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후배 기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필로서 스스로 짐을 진 사람들을 을사오적과 같은 부류로 만들어 대한민국 국민 중 누가 득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전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미국 독립전쟁 뒤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찰스 톰슨 대륙회의 의장은 회고록을 쓰지 않기로 합의한다. 독립이라는 영광스러운 대의(大義)도 지도자들의 욕심 탓에 얼마나 자주 재앙을 맞을 뻔했는지 국민들이 알면 환멸을 느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쓰려던 사실이 우리처럼 왜곡된 가치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7. 권지혜 2009.11.12 0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많은 인사들이 모두 친일파였다니,,,
    도대체 역사가 바로잡아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명단을 보고 있으면 한숨밖에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 배운 위인전 인물들은 다 어떻게 되는것인가...)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조금씩
    한국역사를 바로잡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8. 김대중 2015.01.19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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