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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시·사진·에세이 모음 <그림자 숨소리>

아내가 코를 곤다
드르렁 드르렁
편안한가 보다
피곤한 지도 몰라
아내 콧소리 들으며
안심과 걱정이 교차한다
콧소리 높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새근새근 조용히
우린 20년을 살아온 부부다

('아내 콧소리' 전문)

이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부부의 일상이 보입니다. 둘 사이 관계는 아마 더 없이 편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풍성한 울림을 끼치는 보람이 앞에 있습니다. 사진과 글입니다.


音·음

소리 / 음악
가락 / 글 읽는 소리

"새벽녘에 눈을 떴다.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엊저녁 덮지 못한 책에서 들리는 소린지도 모른다. 전등 켜고 자리에 앉았다. 아내가 곁에 자고 있다. 책 읽는 소리는 그 곳이 아니라 아내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고마웠다."

책에서 나는 소리, 자기를 통해 책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자기를 통해 아내에게서 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책과 아내, 함께 어울리는 무엇 같다는 생각이 멋쩍게 들었습니다.

이런 대목은 어떠신지요? 사람 넉넉한 마음자리가 짐작이 됩니다. 힘든 이들을 위해 자기가 의자가 되겠노라고 다짐을 했는데, 그런 다짐이 때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침, 자기를 쉬게 해주고자 하는 이를 만나면, 마음 편하게 그냥 쉬어버리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깨침, 이 빛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애써 산마루에 옮겨놓은 긴 의자가 나의 발걸음을 한참 세웠습니다. 나도 힘들여 오르는 이들에게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는 어설픈 자각을 깨뜨리고 의자가 말을 했습니다.

'어이, 앉으시게. 궁시랑거리지 말고 자네의 몫은 앉는 것이니. 그냥 앉으시게.'

앉았습니다. 고맙더군요. 소풍가서 고마움 하나 건지고 왔습니다."
('당신의 몫' 부분)
 

그런데 이 또한 마찬가지, 사진이 이렇게 끼이지 않으면, 느낌도 참 풍성하지 않아을 테고요, 한 눈에 확 끼치는 설명도 이뤄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구절, 사랑 타령에서는 그냥 마구 웃음이 터집니다. 글쓴이의 신축자재한 마음씀씀이가 그저 '기특하기만 할 뿐'입니다. 하하. 


臥·와

눕다 / 엎드리다
누워 자다 / 쉬다
넘어지다 / 그만두다 / 숨어 살다
잠자리 / 잠

"피식 웃음이 나왔다. 풀밭 한가운데 동그랗게 만들어진 모양새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들어갔다 나온 사랑자리임에 틀림없었다.

혹여 제 풀에 못 이겨 스러졌다 하더라도 사랑 때문이었다 해 두자."

이 또한 마찬가지지요. 앞자리에 이렇게 사진이 붙어 있지 않았다면 아예 작품이 되지 않았을 텝니다.

물론 따갑고 매운 작품도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보기로 하나 올려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저 사람들을

그 사내
목이 매여
울대를 거듭 떨다가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한 사내
멀리 흐르는 강물을 본다
생명인 그가 생명의 강을

너도 십자가에 걸렸구나
울지 마라
부활하리니

최고의회는 말한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실용이다
('예수, 실용으로 죽다' 부분)

사람 아니라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우주인데, 민족이든 아니든 그 무엇을 위해서든, 죽을 수 없고 죽어서도 안 되는 것임을 슬몃 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서든 개인을 위해서든 그 어떤 명목을 갖다 붙여도 그것은 폭압일 따름이라는 뚜렷한 외침입니다.

이런 외침을 자본이, 자본을 대리하는 기계일 뿐인 이명박 정부와 그 나부랭이들이 알아듣지는 못하겠습니다만. 하하.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장으로,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과 경남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시인 김유철이 펴낸 사진·시·에세이 모음 <그림자 숨소리>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답니다.


책머리인가 끝머리인가에서 생태운동가 황대권은 이렇게 평했습니다. "김유철의 수행일지다. 뭐 토굴에 앉아 몇날며칠 도를 닦는 수행이 아니라 삶 자체가 수행이 됨을 보여주는 일지다. 그의 정신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옆에 두고 읽으면 스스로도 자기 마음쓰임이 신축자재(申縮自在)해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저는 봅니다. 21일 낮 3시 창원 성산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출판기념음악회에 가서, 책 두 권을 산 까닭입니다. 한 권은 마음에 드는 이가 생기면 선물을 하겠습니다.


리북. 224쪽. 1만2000원.

그림자 숨소리 - 10점
김유철 지음/리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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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2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김훤주 2009/11/23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행사 시작은 3시인데, 저는 2시 20분에 나갔거든요. ^.^


      그리고요, 고맙게 짚어주신 대목은 고쳤습니당~~~

  2. 김경호 2009/11/22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몫 부분에서의 글이 참 재미있으면서, 와닿네요..

    가끔은 살다가, 누군가에게 피해주지 않겠다고. 나를 돕겠다는 사람들 마저

    뿌리치고 갈 떄가 있었는데.... 그럴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ㅎ

    쉴 수 있는 곳에서 쉬어야. 남을 위한 의자가 되어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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