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뀌어진 난초 화분 둘

올 1월, 노조 지부장 노릇을 그만두고 문화체육부 데스크를 맡게 됐을 때 축하한다고 들어온 난초가 둘 있었습니다. 어
느 분이 왜 보냈는지는 그동안 까먹어 버렸습니다만.

자기 뜻하고는 상관이 없겠지만, 어쨌든 제게 맡겨진 생명이라 여기고 물 하나만큼은 한 주일에 두 차례씩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줬습니다. 말도 한 번씩 붙이면 좋다 그래서 설핏 지나가면서 '사랑해 친구들아' 한 마디씩 툭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 무럭무럭 잘 자라고 꽃도 한 번 피우고 잎도 파릇파릇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지난 8월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난초에다 물을 주려고 변소에 갖다놓았는데, 저녁 무렵 가보니 감쪽같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침 갖다 놓을 때 다른 사람이 기르는 난초들도 몇몇 있었는데 아마 바꿔치기가 된 모양입니다.

다시 찾으려 했는데, 대신 남겨진 난초를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들이 씩씩하면 원래것들을 찾겠는데, 별로 씩씩하지도 싱싱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이 난초들의 주인이 자기 기르던 난초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좀 싱싱한 녀석들로 골라간 모양입니다. 원래 제게 있던 난초들이 그래도 좀 싱싱했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좀 시들시들하고 일부는 말라 비틀어져 있는 새 친구들을 제 책상 옆으로 데려왔습니다. 전에 난초들에게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물도 주고 한 번씩 말도 걸어 줬습니다.

2. 죽은 뿌리를 뽑아내지 못한 까닭

이렇게 한지 이제 석 달 조금 넘었나 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거의 다 지나고 보니, 검은 갈색으로 말라 죽어 있는 부분은 떼어내 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겨울을 나려면, 누구든지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 하지 않습니까.

전체 절반 정도가 죽어 있는 난초의 밑둥 부분.


그래서 저는 화분을 단단히 잡고 검게 말라 죽은 부분을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뽑아내려고요. 그런데 이 녀석이 뽑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뿌리가 흙 아래에서 서로를 단단히 맞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녀석들 봐라. 자기 잘 되게 하려고 뽑는 건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이 서로 헤어질 때가 아직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그러니까 아주 터무니없을 수 있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스로를 생각해도 상황이 우습게 풀려나갔습니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일부러라도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이러면서 잡은 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갔을 텐데 그날은 어째 이상했습니다. 꼭 잡았던 손이 절로 스르르 풀려 버렸습니다.

그래 너희들, 이렇게 뿌리가 서로 섞이고 이파리도 서로 부비대면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온 나날이 그리 적지는 않겠지.

이승에서 화분에 담기는 불행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가지가 됐겠지…….

어쩌면 화분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신세가 됐기에, 그래서 더욱 꼬옥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겠네…….

겉으로는 저렇게 죽은 듯 보일지라도, 행여 푸릇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았다가 뿌려지는 물방울에 감응해 싹이 틀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 화분들을 다시 통째로 들고 변소로 가서,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이 물을 뿌려줬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죽었고 살았고를 떠나, 뿌리를 저리도 휘감고 있는 난초들이 꿈을 꿉니다. 그 꿈대로라면, 제가 난초에게 이로우라고 하는 짓이 오히려 해치는 노릇이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습지요??? 제가 생각해도 무척 합리적이지 못했습니다. 하하. 덕분에 난초 화분은 지금도 절반은 죽은 채로 제 책상 옆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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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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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수지 2009.11.30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하신다고 물 많이 주시면... 차라리
    덜 좋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봄 기다리셨다 분 나누기를 하시지요..
    잡아 당겨서 빠지겠습니까? ㅎㅎㅎ

    • 김훤주 2009.11.30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맞습니다. 늦가을이라 분갈이를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하기는 했습니다. 내년 봄에 죽은 뿌리에서 싹이 트지 않으면, 기꺼이 미련을 거두겠습니당~~~

  2. 실비단안개 2009.11.30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리시군요.
    저는 사정없이 화분을 엎어 마르거나 상한 부분을 골라 버립니다.

    11월 마무리 잘 하셔요.^^

    • 김훤주 2009.11.30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 저는 뭐, 그냥 한 번 여린 척해 봤을 따름입니다. ^.^

      시인과 농부의 빠가사리 진짜 좋았습니다. 나중에 <김달진 문학관> 가면 다시 가고 싶어요. 맛이 깔끔해서요. 하하. 저는 '닥치는대로' 먹는 쪽인데도, 그런 맛이 느껴지데요.

      더덕 막걸리는, 슬펐습니다. 김주완과 정부권 좋은 일만 시켜서요..... 둘이 한 병씩 나눠 들고 집에 갔답니다. 하하.

    • 실비단안개 2009.11.30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슬픈 일 아니고 더덕동동주가 주인을 잘 찾았습니다.
      달그리메님이 걸리긴 하지만요.

      그날 정말 잘 먹었습니다.
      원수는 다음에 갚을게요.^^

    • 김훤주 2009.11.30 2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자요. ^.^ 더덕 동동주는 주인을 잘 만났지만, 그렇게 주인을 잘 만나는 바람에 제가 슬펐답니당~~~ 하하.

  3. 한사 2009.11.30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김훤주 기자님^^
    그렇다고 당장 나누어 심기도 남감하고, 나누지 않으려니 같이 병들까 걱정이고 그대로 이 땅의 모습이군요.
    그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 아닌가요?

    아, 폐교예정 학교들에 대해 한 번 다뤄보시면 어떨까요?
    제 딸이 다니는 학교도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폐교예정> 꼬리표가 붙은~
    http://v.daum.net/link/4944087

    두 분의 성함을 하나로 합쳐 쓴 덕에 다시 방문해서 수정합니다. ^^
    이미 보시진 않으셨기를~

    • 김훤주 2009.11.30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사 선생님, 저는 덜 떨어진 인간이라서, 선생님 말씀하신 그런 정도로 상상할 줄도 모르고 선생님 말씀하신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나지도 못합니다만. ^.^

      그냥 제 옆에 있게 된 못난 난초들을 두고 있었던 일을 적어 봤을 뿐이랍니당.

      고맙습니당ㅇ.

      폐교 예정 학교는, 제가 다룰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살펴보려 애는 쓰겠습니다요. ^.^

  4. 커피믹스 2009.11.30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알기로는 상하거나 시든 잎을 제거해야
    제대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미련없이 뽑아버리시는 게 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