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화) 오전이었다. 블로거 실비단안개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블로거 천부인권 님과 함께  무슨 꽃을 찾으러 가는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날 처리해야 할 일이 몇 건 있었지만, 그래도 불러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실업자가 되고 나면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들이 고마워진다.)

두 분의 블로거는 약속보다 빨리 왔다. 원래 12시쯤 오겠다더니 11시도 되지 않아 우리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워놓고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나갔더니 이번엔 블로거 달그리메 님을 데리러 간다고 한다. '변산바람꽃'의 군락지를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꽃을 좋아하긴 하지면, 이 분들처럼 일부러 특정 꽃을 찾아다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대체 얼마나 예쁜 꽃이길래 이러는 걸까'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천부인권 님 말로는 예전에 어머니들이 자수를 놓을 때 바람꽃을 많이 그려넣었다고 한다.

바람꽃이란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역시 천부인권 님 왈, "처녀 총각들이 바람나기 딱 좋은 봄날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나 뭐래나..."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다. 앞에 '변산'이란 지명이 붙은 것은 거기에서 먼저 발견됐기 때문이란다.

천부인권 님과 실비단안개 님이 점자 보도블럭을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천부인권 님의 차는 달그리메 님이 사는 내서여고 앞 아파트단지에 도착했다. 두 블로거는 차에서 내려 한참동안 학교 앞 인도에 시공된 점자블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천부인권 님은 그동안 잘못 시공된 우리나라 점자블록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온 분이다. 그는 "잘 되어 있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실비단안개 님은 "외국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 블로거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봐라"고 조언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달그리메 님에게 전화 한 번 해보지요?"라고 채근했다. 실비단안개 님이 그제서야 "참 그렇네?"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쪽에서 '왜 이리 일찍 왔냐'고 말한 모양이다. 실비단안개 님 왈, "그래 일찍 왔는데 어쩌라고...아, 그러면 돌아갔다가 다시 오라고?" 깡패가 따로 없다.

이렇게 만난 네 사람은 고등어 조림으로 약간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차를 몰아 한 계곡으로 올라갔다.

이런 얼레지는 지천으로 널렸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변산바람꽃은 보이지 않고, 대신 낙엽을 헤치고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는 얼레지는 지천에 넣렸다.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봤지만, 내 눈으로 얼레지를 본 건 처음이지 싶다. 나도 생태블로거는 아니지만 얼레지를 몇 컷 찍었다. 아직 꽃이 핀 상태는 아니다.


제법 산을 헤메고도 변산바람꽃을 찾지 못하자 실비단안개 님은 "크리스탈 님께 전화를 걸어봐라"고 명했다. 명을 받은 달그리메 님은 생태 전문블로거인 크리스탈 님과 통화 후 자신있게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과연 있었다. 참 대단한 블로거 네트워크다. 그러나 내 눈으로 처음 본 변산바람꽃은 기대보다 작고 초라하고 여렸다. 가냘픈 느낌을 주는 흰색 꽃은 안쓰럽게도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블로거들은 각자 흩어져 별의별 자세를 취해가며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변산바람꽃 군락지엔 다른 꽃도 간혹 눈에 띄었다. 천부인권 님에게 물었더니 '노루귀'란다. '얼레지'와 '변산바람꽃', '노루귀'까지 오늘 세 개나 배웠다. 이 분들과 다니면 풀꽃 이름공부는 제대로 하겠다 싶었다. 잊어버릴까봐 노트에 적었다.


실비단안개 님이 준비해온 커피와 비스켓, 캔맥주를 마신 후에도 이 분들은 산에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슬슬 내려가죠?" 나는 아무래도 생태블로거는 못될 것 같다.

이게 바로 변산바람꽃이다.

이건 얼레지. 막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건 노루귀라고 한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김주완 기자는 (차가 없어) 광산사도 못가봤을 테니 거기 한 번 둘러보고 가죠?" 결국 이렇게 신라 고찰 광산사와 복원된 숯막까지 꼼꼼히 보고 나서야 일정은 끝났다.

천부인권 님이 각자의 집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말했다. "오늘 밤에 눈이 좀 많이 와야 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자고 나니 온 세상이 하옜다. 카메라를 들고 온 천지를 쏘다닐 실비단안개와 천부인권 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 역시 카메라를 메고 거리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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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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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낭돌이 2010.03.13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촬영된 멋진 꽃들이 다음뷰에 소개가 되는것이였군요!!
    너무 보기 좋습니다 ^0^

    바람꽃이 너무나 이쁘네요 으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용!!

  2. 실비단안개 2010.03.13 1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리셨네요.
    저는 아직 모셔두고 있는데요.

    자추하는 듯한 느낌이라 참 거시기 합니다요.^^
    바쁘신데 동행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날이 진짜로 풀리는 듯 하니, 다른 곳에 한번 가보면 어떨까요?
    (어제 시루봉 오르내리는 일이 완전 개고생이었습니다. - 왕복 5시간 정도)

    건강관리 잘 하셔요!

  3. 사랑 2010.03.13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안개님으로부터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래도 글을 보니 더 반가운데요...^^

    주말 잘 보내시고...
    늘 행복하세요~~

  4. 거다란 2010.03.14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개그 보는 줄 알았습니다. 읽으면서 배잡았습니다. 김주완님 글에 유머가 억수로 강화된 느낌입니다. ^^

  5. 구르다 2010.03.14 0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꽃이 블로거처럼 좀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독학이 아니라 시간은 단축될 듯 합니다.
    독학하면 3년 정동 쫓아 다니면 대충 녀석들의 이름은 알게됩니다.

    그리고 세세사한 분류로는 들어가지 마세요..
    제비꽃만 해도 70여종이나 됩니다..

  6. 안재봉 2010.03.14 1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장님 안재봉입니다.

    큰일은 잘 치르셨죠.. 바쁘다는 핑계로 가보지도 못했네요..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멀리서 늘 부장님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건승하시길.....

  7. 푸른희망 2010.03.14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기자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낍니다.
    변덕스러운 날씨 건강조심하시구요.
    내려가서 저도 직접 뵐 수 있을 날을 고대합니다.

  8. Bluepango 2010.03.1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누아투엔 점자 블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국에 있었다면 실비단안개님이 불러 주셨을까요?^^

  9. 한사 2010.03.15 2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한 아지메 성깔이 좀 지랄맞지요? ^^
    그래도 짝 맞춰 바람 피우고 오셨네요.
    저는 여기에서 잘 모셔두고 그냥 기다리는 중입니다.
    온 산자락 너울거리며 얼레지 지천으로 필날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