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작은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를 기획하고 그 첫 번째 책을 묶어냈답니다. 1995년 월간 <작은책> 창간호부터 1999년까지 5년에 걸쳐 나온 글 가운데 좋은 글만 뽑았다고 하네요.

죽 훑어보면 내용이 노동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물론, 이것은 단점이 아니고요 장점이랍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습지요. 지금껏 노동이 이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책은 그야말로 거의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배운 사람들이 배운 말글로 배운 사람들 읽으라고 펴낸 노동 관련 서적은 없지 않고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밑바닥에서 임금 몇 푼을 위해 품을 팔아 일하는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내는 그런 책은 거의 있지 않았습니다.

시내버스 노동자였다가 도서출판 작은책 발행인으로 옮겨온 안건모는 이 책을 일러 "우리 이웃들이 지나온 과거를 보여주는 역사책이자 일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지혜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안내해주는 지침서"라고 했습니다.

2003년 세상을 떠난 '우리 글 바로 쓰기'의 표본 이오덕 선생의 글도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에서 그이는 "왜 쓰는가? 한마디로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그 소중한 삶의 세계,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 삶을 지키고, '말'을 지키고, 겨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라고 합니다.

이어서 "어쨌든 노동자들은 이른바 문인들이 쓰고 있는 소설이나 수필이나 시를 흉내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쓰는 글은 …… 그냥 이야기다. 신춘 문예 (당선 작품)보다 노동자나 일하는 어머니들이 쓴 살아온 이야기가 훨씬 더 감동을 주고 재미있게 읽히기 때문이다"라고도 합니다.

그이는 노동자들이 손수 쓰는 글들에 대해, 기록으로서 값어치도 높이 칩니다. "쓴 것을 잘 보관해 두면 뒷날 한 역사로 남을 것이다. 옛날에는 임금들이 역사를 기록하도록 했지만 이제는 노동자가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왜냐고요? "글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세상이니까."

조·중·동은 노동자의 파업을 나쁜 짓이라고 기록을 합니다. 심지어는 날씨를 끌어들여 "이 가뭄에 웬 파업?" 이런 식으로 제목을 뽑아 붙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 사람들 또한 그렇게만 여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정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노동자들이 자기 글을 쓰지 않거나 그렇게 쓴 글이 널리 퍼뜨려지지 않는 탓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은 글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읽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에 커다란 잘못과 모자람이 설령 있다 해도 널리 알려져야 마땅한 책이라 할 수 있겠지 싶습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배고파 밥 달라고 하는 우리들한테 회사를 말아먹을 나쁜 놈들이래. 우리가 일해 놓으면 알맹이는 깡그리 챙겨가고 우리에게는 빈 껍데기만 남겨주면서 주는 대로 받고 고분고분 일하지 않는다고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언제는 한 가족 한 가족 하면서 일만 곱빼기로 부려먹고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보장해 달라면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이래. 회사 망쳐놓을 빨갱이 세력들이래.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뼈빠지게 일해서 우리들은 먹지 말고 저들에게 갈퀴로 걷어가는 이익을 주는 충실한 종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그렇다고 해도 '일하는 사람들이 글 쓰는 세상'은 아직 멀었습니다. "일만 하다 보니 쓸 틈도 없고, 또 스스로 무식하다는 열등감에 빠져 글을 못 쓴다."(이오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를 읽으면 그런 자신감이 생긴답니다. '나도 이런 글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또 하나, '내게도 이런 정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많다'는 생각도 절로 듭니다.

다음으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을 적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지요. 일을 적게 하려면, 세상을 지배하는 돈벌이 이데올로기에서 풀려나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 아니 오히려 가난하게 살수록 좋다 생각하고 걸맞은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에는 그런 내용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 절대 다수가 적어도 절대 빈곤에서는 벗어났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텐데, '돈 못 버는 것'을 보이게 안 보이게 한스럽게 여기는 정서를 떨치지 못한 구석이 곳곳에 보입니다.

1995년 상황이기는 하지만, 군데군데 벗겨져 보기 흉해져 있는 하얀색 구두를 화이트로 색칠하고 마찬가지 까져서 허옇게 된 구두 굽은 까만 사인펜으로 칠해 신고 일터로 향한다는, 대우조선노조의 한 대의원 아내의 얘기가 대표적이랍니다. 아주 기껍지는 않습지요.

앞으로 나올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에서는 어느 한 군데라도 이처럼 '적게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훤주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 10점
작은책 편집부 엮음/작은책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ues 2010.05.15 1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책 좋은 간행물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자신을 정리하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겪은 현실을 정리하고 보다 차곡하게 그를 새기게 됩니다.
    물론 글에만 빠져 본질을 잃어버린 경우도 보았습니다.
    쉽게 쓰고 진솔하게 쓴 노동자의 글은 때로는 기름독에 빠져나온 듯한
    지식인의 글보다 훨씬 더 호소력을 가지기도 합니다.

    끝으로 '적게 일해야 한다.', 그 의견에 전적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