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다 발견한 가훈(家訓)

오늘이 어버이날이군요. 그러나 저희 형제들에겐 고마움을 표시할 어머니·아버지가 계시지 않네요. 어머니는 5년 전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지난 3월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작년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찾아가서 뵙진 못하고 화분만 보내드렸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화분 잘 받았다고 다시 전화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두 달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형제들이 모두 일터로 떠난 후 혼자 고향집에 남아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던 중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공책 내지를 뜯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신 '家訓(가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가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손자 손녀들도 읽기 쉽게 한글로 다시 옮겨 봅니다.

가훈

(1) 글을 읽어 이치를 탐구하여 시비를 분별할 줄 알라.
(2) 남을 해치지 말고 구원하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라.
(3) 허욕과 사치를 버리고 근검을 생활신조로 삼아라.
(4)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거울(鏡) 같이 항상 올바른 마음을 가져라.


본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 가훈은 '필요한 사람이 되라'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이렇게 새로운 가훈을 써놓고 가셨습니다. 왜 새로운 가훈을 남기려 하신 걸까요? 그 속뜻까진 알 수 없지만, 돌아가시기 전 당신의 자손들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유훈(遺訓)을 남기신 것 같습니다. 생전의 가훈을 좀 더 구체화시킨 것이지요.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으셨던 아버지로선 마지막으로 써놓으셨던 이 가훈이 곧 유언이자 유훈이 된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계시지 않은 2010년 어버이날에 아버지의 유훈을 다시 새기며, 결코 어머니·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이 될 것을 다짐해봅니다. 손자에게도 오늘 할아버지의 유훈을 읽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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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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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10.05.08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지난주에 남해 아버지(저는 시아버지를 언제나 그냥 아버지라고 합니다.)에게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산소도 다녀왔지요.

    일찍 남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어데고?"하시더군요.
    "아버지 우리집요."하는 답이 참 죄송했습니다.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우리와 함께 생활을 하신다면 때마다 더운밥은 지어 드릴 수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게 자식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매년 어버이날이면 여기(우리가 사는 곳이지만 친정동네)는 마을 어르신들께 점심 식사를 대접합니다.
    오늘도 일찍 마을회관으로 가서 부녀회원들이 어울려 식사를 대접하고 왔습니다.
    어버이날이면 가까이 있는 자식이 큰효자라는 걸 느끼는데, 남해 아버지와 함께이지 못해 죄송하고 마음 아프고 그렇습니다.

    내가 여기서 동네 어르신들께 작은 정성을 표하듯이,
    남해의 누군가도 내 아버지께 더운밥을 대접해 드리겠지하며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버이날은 어쩔수 없이 마음이 아픕니다.

    목이 메이네요.

  2. 장영철 2010.05.12 2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연하되 정도를 걸어라는 부정이 엄숙하게 다가오네요. 마음에 잔직하면 두루 등불이 될것 같습니다.

  3. blues 2010.05.20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직하신 부정(父情), 소박하신 부정을 함께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글씨에서도 어르신의 강직하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합니다.
    저로서는 너무 부러운 어르신의 유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