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직전 정운현(오마이뉴스 전 편집국장, 현 다모아 대표) 선배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블로그에서 '막무가내 인터뷰(막가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메일로 질문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이미 정 선배는 경남도민일보의 반성문과 추석 선물 사양 알림글을 블로그에 소개한 바 있어서 그 연장선에서 자연스레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것 같다.

이 인터뷰 질문 중에 '선물'에 대한 질문이 서너 개나 됐다. 답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선물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막가인터뷰-1]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답변을 좀 더 다듬어 우리 경남도민일보 내부 인트라넷에도 올렸다. 촌지와 선물에 대한 생각을 내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이 그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받아도 될 선물과 안 될 선물을 어떻게 구분할 지 생각해봅시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내가 기자나 편집국장이 아니어도 그가 내게 선물을 보낼까?"

선물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위해 뭘 해줬거나, 앞으로 해줄 일도 없는데 선물만 받아챙기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그래서 명절을 빌미삼아 저와 일면식도 없는(있더라도 업무상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에 불과한) 기업체 대표나 간부, 그리고 기관단체장들이 보낸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만한 선물을 보낼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일방적으로 보내는 선물이라면 결국 '기사로 보답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딴 선물로 기자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불쾌하고 모욕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그런 선물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 우리 사규와 기자실천요강에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채무의식을 갖지 않으려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런 선물(또는 촌지) 따위로 우리집 살림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그거 집에 갖다 준다고 '우리 남편 멋지다' '우리 아버지 대단하다'며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대개 그런 선물이나 촌지를 주려는 기업이나 기관일수록 우리 신문에 광고를 하거나 신문구독에는 인색합니다. 액수가 큰 광고 대신 푼돈으로 때우겠다는 거죠.

따라서 좀 비약하자면, 촌지나 선물을 낼름 받아 챙기는 행위는 그 몇 배에 이를 수 있는 우리 회사의 광고나 구독자를 좀먹는 것입니다.

제게 추석 선물을 보낸 사람이나 기관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선물 대신 광고 하나, 그게 어렵다면 신문 한 부만 더 봐주시면 안 될까요?"

경남도민일보는 불가피하게 받은 선물의 경우,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하고 이런 영수증을 보내준다.


위에서 밝힌 기준처럼 "내가 기자나 편집국장이 아니어도 그가 내게 선물을 보낼까?"라는 말은 공무원이나 교사, 또는 국회의원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본다. 그래서 추석을 앞둔 이달 8일 경남도민일보 인터넷에 이런 알림글을 올려뒀다.

[알림]경남도민일보는 추석 선물을 사양합니다 
 2010년 09월 08일 (수)  편집국장 김주완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벌써 저에게도 선물을 보내겠다며 주소를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한 편집국에도 이미 몇 개의 선물상자가 기자회장 뒷 자리에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경남도민일보 임직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촌지는 물론 선물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단 1만 원 미만의 기념품류는 제외) 만일 이 원칙을 위반하고 돈이나 상품권, 선물을 받았을 경우, 사규에 의해 중징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받지 않으면 그만이지, 꼭 이렇게 티를 내야 하느냐'고 비아냥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도덕성 문제는 시시때때로 환기하고 강조하지 않으면 허물어지기 십상입니다. 작은 병균이라도 적기에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중병이 되듯, 사소한 원칙이라도 한 번 어기기 시작하면 큰 원칙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나 우리 기자들에게 선물을 보내시면, 우리는 택배를 통해 다시 돌려드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거나, 노조 및 기자회 사무국장을 통해 사회복지시설 또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탁하는 수고를 겪게 됩니다. 따라서 아예 보내지 않는 게 저희들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불가피하게 받은 선물이나 유가증권은 추석 명절이 지난 후, 저희들에게 보내온 선물 내역과 사회복지시설 기탁 결과를 다시 공지해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추석에 받았던 대통령의 선물이 아름다운가게에 이렇게 전시되었다고 한다. 경남도민일보 여경모 기자가 우연히 들렀다 찍어온 사진.


이런 알림글에도 불구하고 올 추석에도 적지 않은 선물들이 배달되어 왔다. 아래는 내가 받은 선물 목록이다. 이 중 3개는 집으로 배달됐고, 나머지는 회사로 온 것이다.

-한 금융기관 : 쌀과 과일
-한 경제단체 : 쌀
-청와대 : 전국 농산물
-한 금융기관 : 내용 뜯어보지 않고 반송
-한 기업체 : 과일
-한 유통업체 : 과일
-한 기초단체장 : 죽방 멸치
-보낸 곳 기억나지 않음 : 새송이 버섯
-한 기업체 : 와인


이상의 선물은 모두 아름다운가게에 기탁되었다. ☞추석 선물,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앞서 '촌지에 얽힌 추억'이란 글에 정운현 선배가 달아준 댓글처럼 '촌지 받아서 살림 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촌지를 거부함으로써 갖는 편안함이나 만족감, 떳떳함은 내 삶을 참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알림글에도 불구하고 내년 설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보내는 이들은 있을 것이다. 그 땐 인터넷 알림글이 아니라, 아예 신문지면 1면에 사고(社告)를 내는 것도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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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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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10.09.26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나 공직자나 회사나 직업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윤리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하는데 참 아쉬울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블로거들에게도 윤리의식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잘 지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파이팅입니다.

  2. 저녁노을 2010.09.26 0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주고 안 받는 선물..그게 제일이긴 합니다.
    와..선물 받은 것도 아름다운 가게로?
    ㅎㅎ
    괜찮은 방법입니다.

    잘 보고 가요.

  3. 언젠가.. 2010.09.26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금과 관련 된 부서에 일하다 보니, 민원들이 가볍게 뭐를 사오세요
    비타 500 이니 박카스니 이런거요...

    감사원에서 언젠가 비밀감찰 나왔을 때 그게 딱 걸려서는
    [비리]라고.. 조금 일이 커졌던 적이 있어요..
    어디까지가 비리고 어디까지가 비리가 아닐런지..
    안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주는 것도 중요한 듯 합니다.

    민원인이 고맙다고 비타500 한박스 주시는데 거절하기도 힘든게 현실이니까요

  4. 오픈마인드 2010.09.27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훌륭한 모습입니다. 돈 싫은 사람없고 선물 좋지 않은 사람없죠. 그러나 자기 소신을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거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이지 싶습니다. 구호만이 아니라...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짝짝짝.

  5. 정운현 2010.09.28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물 주고받기.
    따지고 보면 참좋은 미풍양속인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군요.
    그래도 고마운 이에게 마음의 선물은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