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면에 쓴 기획기사 한 건으로 독자들에게 욕을 퇴배기(‘됫박’의 경상도 표준말)로 얻어먹은 적이 있다. ‘도내 기관장들은 어떤 음식 좋아할까’라는 기사였다. 도지사를 비롯, 교육감과 도의회 의장, 법원장, 검사장 등의 단골식당과 즐겨먹는 음식을 조사해 그들의 얼굴사진과 함께 실었는데, ‘지면 낭비’라는 비난에서부터 ‘그들의 입맛까지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느냐’는 항의까지 빗발쳤다.

사실 그 기사는 ‘충청투데이’ 8월 20일자 1면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신문 1면에는 무조건 심각하고 무거운 기사만 실린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가벼운 읽을거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충청투데이’ 기사를 보고 ‘아, 이거다’ 하며 취재를 시켰던 것이다. 그걸 우리 독자들은 ‘권력자들 띄워주기 기사’로 받아들인 것 같다.

원래 계획은 그런 기관장들에 이어 시민사회단체장, 기업인과 경제단체장, 문화예술인 등도 연속으로 취재해볼 참이었다. 지역신문에서 ‘맛집 소개’ 기사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라면 재미있고도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역풍에 부딪힌 것이었다. 결국 다음 기획은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취재원보다 독자 친화적 신문을 고민하며

어쩌면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지만, 편집국장을 맡은 후부터 뭔가를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그렇다. 내·외근을 막론하고 아침당직을 서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나 줬다. 매일 1명의 독자를 전화로 인터뷰하라는 거였다. 나름대로 여러 의미가 있었다. 기자가 출입처 취재원이 아닌 일반 독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의외의 제보를 건질 수도 있으며, 지면에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재원 친화적’인 신문이 아니라 ‘독자 친화적’ 신문을 만들자는 목적이 강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침 시간에 전화하면 좋아할 독자가 있겠느냐’, ‘매일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되지 않겠느냐’는 반대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냥 강행했고, 매일 원고지 5매 분량으로 ‘독자와 톡톡’ 인터뷰가 지면에 나가고 있다. 신문에 대한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더 많지만 보약이 될 거라 믿는다.

또 하나의 실험은 ‘동네이야기’와 ‘동네사람’이라는 코너다. 흔히 지역신문이 가야할 길로 ‘지역밀착보도’를 이야기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기사가 지역밀착기사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언론학자는 없었다.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실험하고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신세계백화점 앞 인도에서 10년째 푸성귀를 팔고 있는 할머니, 창원에 하나뿐인 새 파는 가게 주인, 우산과 재봉틀 고치는 할아버지, 헌책방 운영하는 노총각, 고물상 사장 등의 사연이 1면을 장식했다. 다행히 이건 반응이 좋았다. ‘독자와 톡톡’ 인터뷰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인상 깊게 읽은 기사로 ‘동네사람’을 꼽았고, 지면평가위원회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동네이야기’는 긍·부정이 엇갈린다. 양산의 유지들이 즐겨 찾던 한 일식집이 갑자기 문을 닫은 까닭,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교회의 굴뚝 이야기, 한 아파트단지의 아줌마 합창단 소식, 배우 강동원 가족이 운영한다는 카페, 천장이 열리는 희한한 모텔, 성인용품 파는 가게 등 기존의 관념에선 ‘기사’가 되기 어려웠던 것들이 지면에 나갔다. 재미있고 유용하다는 반응도 있고, 특정 교회나 카페, 모텔, 식당, 가게를 대놓고 홍보해주는 기사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출입처를 벗어난 새로운 취재영역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계속 밀고 나가볼 참이다.

욕을 먹어도 나는 까칠한 독자가 좋다

다음으로는 1면에 무조건 한 명 이상의 사람 얼굴을 싣도록 하고, 그것도 가급적 세로 2단 또는 가로 3단으로 크게 편집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에는 우리지역의 살림꾼을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경남도지사와 18명의 시장·군수 얼굴을 1면에 차례로 실었다. 이 또한 긍·부정이 있었다. 마치 경남도민일보가 단체장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그토록 크게 내 주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신문을 위해 계속하려 한다.


독자들에게도 1면을 할애했다. ‘독자투고’란에만 실렸던 독자의 글 중 좋은 글을 뽑아 아예 1면 톱 기사로 실어봤다. 얼마 전 한 독자가 보내온 ‘창원에 자전거 고속도로를 만들자’는 제안을 그렇게 실었더니 역시 찬반논란이 붙었다. 심지어 도로건설업자와 짜고 쓴 글이며, 그걸 의도적으로 1면 톱으로 얹어 의제로 만든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래도 나는 이런 까칠한 독자들이 많은 경남도민일보가 너무 좋다.

※미디어오늘 10월 6일자 '미디어현장'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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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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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리스탈 2010.10.18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런 까칠한 독자를 좋아하는 김주완국장님이, 경남도민일보가 좋습니다~~ ㅎㅎㅎ

  2. 민주주의 만세 2010.10.18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을 보면서 느낀점은

    기자신분으로써

    단순히 우위에서서 취재를 하신다는 것이 아닌

    도민과 함께 , 도민의 눈높이에서 , 도민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기가 정말 좋네요 ^^

  3. 선비 2010.10.18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입처 보도문만 게재하는 맹물 신문에 짜증이 나는데
    간간짭짤한 도민일보가 있어 세상 살 맛이 나네요.
    까칠한 언론, 까칠한 독자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도민일보 화이팅!!!

  4. 강팀장 2010.10.18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비스를 개발하는 개발자들도.. 깐깐한 사용자가 좋습니다. ^^

    그들의 의견을 더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주죠. ㅎㅎ

    • 김주완 2010.10.18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강팀장 님 오랫만이네요. 잘 계시죠? 소셜미디어 단계 잘 봤습니다. 우리 신문사 페이지엔 어떤 소셜플러그인이 적합할까요?

  5. 강팀장 2010.10.18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끄럽지만.. ^^ 제가 만들고 있는 마이픽업을 이용하시면... 한번에 여러개 SNS와 연동이 될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버튼 모양은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니깐요. ^0^

  6. 몽돌 2010.10.19 0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집국장이 되긴 되셨나 봅니다. 뭔가 결정할 일이 많이 생기시는 것 같네요.ㅎㅎㅎ 그리고 김국장님이 확실히 '독자 친화적인 신문'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첫단락의 <맛집소개>는 깨끗히 포기하였다 하셨고, 둘째 단락의 <독자인터뷰>는 계속 밀고 나가볼 참이라 하셨는데 맛집소개는 독자들의 항의와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으신게 아닌가 보이고 독자인터뷰는 사내에서의 반대라 일단 한번 계속 밀고 가볼 요량으로 보이니 말입니다.(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냥 읽다보니 그리 느껴져서요.ㅎㅎㅎ) 그리고 '지역밀착보도'를 말씀하셨는데 제 우견을 하나 말씀드리면 '충청투데이'를 보고 아이템을 생각하셨듯이 마찬가지로 경남지역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지역지(남해신문,함안신문등)를 훑어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7. 뉴클리어 2010.10.19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그런 기사를 포기하다니요. 한 번 그 기사를 읽어 보고 싶은 욕구가 불뚝불뚝 생깁니다. 항의한 독자 보다는 재밌게 읽었을 독자가 더 많다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