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방어기제(防禦機制)’라는 게 있다. 외부의 공격이나 비판을 받았을 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본능을 뜻한다. 이 본능에 따라 평소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들도 막상 자신이나 자기집단이 비판을 받을 경우 아주 보수적인 방어기제를 드러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는 비판을 업으로 삼는 기자이다 보니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걸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다.

≪경남도민일보≫ 창간 후 기자들과 교사들의 촌지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그들 집단은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를 드러내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료사진 /경남도민일보

우선 교사들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요즘은 선물이나 촌지를 받는 교사들이 거의 없으며, 혹 있다 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부정’기제였다. 일단 자기조직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심리적 상처를 줄이려는 반응이다. 많이 줄었어도 있는 건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반응은 기자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두 번째 반응은 “받는 교사보다 주는 학부모가 더 문제다.” “그럼 너희 기자들은 신문의 날에 촌지 안받느냐.”는 논리다. 이는 전형적인 ‘투사(또는 투영)’ 반응이다. 동기를 주변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비판하는 상대방의 책임으로 전가하거나 상대방의 다른 결점을 찾아내 오히려 그를 비판함으로서 자기위안을 삼으려는 경우가 그것이다. 물론 학부모도 문제고, 촌지 받는 기자들도 아직 많다. 그러나 그건 그 자체로 고쳐야 할 문제이지, 학부모가 주기 때문에, 또는 기자들도 받기 때문에 교사도 받는 게 문제없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촌지를 받는(또는 받고 싶어 하는) 기자들에게서도 그런 반응을 많이 접해봤다. 월급이 적어서라는 이유를 들어 자기 회사 경영진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비판하는 상대방의 작은 약점, 그러니까 취재원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든지 하는 걸 들어 “그거나 촌지나 뭐가 다르냐.”는 물귀신 작전이 그것이다. 심지어 ≪경남도민일보≫가 ‘1만 원 이하 기념품류의 선물은 받을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시비를 건다. 왜 1만 원은 허용하느냐는 거다.

부정, 투사, 합리화보단 승화 반응 많아지길

나는 또 이런 시비까지 받아본 적이 있다. “토호세력을 그토록 비판하는 도민일보가 토호에 해당하는 지역의 기업체들로부터 광고를 받는 이유는 뭐냐?”는 것이었다. 그는 또 “도민일보가 그렇게 자랑하는 6200여명의 주주 중에도 분명히 그런 토호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주주로 끌어들여 놓고 무슨 개혁신문이라는 거냐?”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도민일보야말로 사이비언론과 뭐 다를 게 있느냐?”며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이 역시 전형적인 투사 반응이며, 억지논리다. 적어도 그의 이런 비판이 성립하려면 자신이 그보다 높고 엄격한 도덕성을 확보한 상태여야 한다. 자신은 전혀 실천할 수 없는 주장을 무기삼아 나름대로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는 상대방을 헐뜯으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 번째, ‘합리화’ 역시 전형적인 방어기제의 한 방식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하는 작은 정성까지 마다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는 것이다. 또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 정보를 얻으려면 촌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한다.

기자한테 주는 돈봉투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것인지, 과연 촌지를 안 받으면 취재원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 때문에 취재원과의 관계가 깨져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촌지봉투를 받고 사무실을 막 나간 기자의 뒤통수에 대고 한 공무원이 내뱉은 이런 말도 들어본 적이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X이 돈은 되게 좋아하네.”

그렇게 욕한 그 공무원도 기자에게 촌지를 건네는 순간에는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했을 게 분명하다.

방어기제 중에는 ‘승화’라는 반응도 있다고 한다. 곤란한 문제를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윤리적인 행동을 대치하여 사회적 인정을 받음으로써 정신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행동기제가 그것이다. 촌지에 대한 비판을 ‘승화’하려는 기자나 교사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저의 졸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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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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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마디 2008.05.15 14: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촌지받는 기자를 비판하려면 그것으로 끝내세요.

    촌지 받는 기자에 교사를 은근슬쩍 끼워넣는 행태가 영 보기 안 좋아요.

  2. 근데 2008.05.1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지 기자가 교사를 뇌물 받는 문제로 비판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씨바 어이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한심한 넘 2008.05.1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한심하다. 너 기자 맞아?
    너 자신이 논리도, 적합성도, 아무런 동의도
    이끌어 낼 수 없는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써놓고 잘난체하고 싶은거야?
    불쌍해보여.ㅉㅉㅉ

  4. 촌지는 구지폐로 하나? 2008.05.15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촌지는 구지폐만 구해서 하나? 요즘 구지폐를

    위 사진 만큼 구하기 힘든데..

  5. 정원엽 2008.05.15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를 꼭 스승의날에 써야하나 참 답답한 일이네

  6. 우진아빠 2008.05.15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합니다. 또한 부끄럽구요. 되도록 안 받으려고 노력하고, 되도록 과한 부분은 돌려주려하지만 때론 자기 정당화하려는 마음도 생기더라구요. 초심 잃지 않도록 계속 힘쓰겠습니다.

  7. 재원아빠 2008.05.15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자님!
    마음의 삐딱한 갈고리를 없애라 조언드려도 이미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나이라는것 잘 압니다.
    허나 잔칫날 옆에서 곡소리하듯, 법당에서 찬송가 부르는 심보는 뭡니까?

    오늘은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날입니다.

    하루정도는 밝은 세상도 보고 사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