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그만 칼을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칼을 빠지 뱃전 자리에다 자국을 내어 표시를 했습니다. 이윽고 배가 맞은 편 언덕에 가 닿자 자국이 나 있는 자리에서 이 사람은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칼이 있을 리 없지요.

옛것을 지키려고 시대 흐름도 모른 채 눈에 보이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처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실체는 이미 달라져 버렸는데 옛 모양을 그대로 지키자고 우기는 어리석음에 대한 비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지난해 4월 대학노조 경남대지부에서 강연하던 모습.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이랑 지난 2월 19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게 날아온 기자회견 관련 문서들을 보면서, 이보다 더한 각주구검이 있을 수 없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실체가 달라졌습니다. 2004년이나 2002년의 민주노동당이 아닙니다. 요즘 민주노동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2006년이나 2007년의 민주노동당이 어떠했는지를 뒤늦게 확인해 주는 것들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달라졌다는 점은, 그 누구도 어찌해 바꿀 수 없는 객관 사실입니다. 이른바 자주파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른바 평등파도 인정하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그대로 배타적 지지를 쭉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이들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밝혀 놓기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을 철회하는 길은 오직 조합원들의 판단과 그에 기초한 대의기구에서의 번복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렇습니다. 해당기관에서 처리된 방침은 해당기관에서 번복되지 않는 이상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정당하게 살아있는 이상, 조직의 성원이라면 그 방침을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일반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같은, 민주노총 경남본부 같은 조직의 지도부라면, 시대 흐름에 맞게 의제를 만들어 조직 대중에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지금 행태는, 옛날 결정했으니 지금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꼴입니다. 이러니 저 같은 조직 대중은 그냥 웃고 맙니다.

지금 내어놓아야 하는 의제는, 바로, ‘민주노동당이 저렇게 달라졌는데, 민주노동당에 대한 우리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그대로 가져가야 할까 아니면 그만둬야 할까’입니다. 이를 두고 모두들 진지하게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각주구검은 여태까지 한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른바 자주파를 감싸 안으려는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지도부는 이토록 달라진 상황에 걸맞게 옛날 그 방침을 지금 어떻게 할지 판단을 곧바로 조직 대중에게 요청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결과를 갖고 기자회견을 해도 충분히 늦지 않습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주인은 조합원 대중입니다.

저는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조합원이고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발바닥만큼은 뜨거웠던, '직업적' 실업자 시절이었습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상세보기
장정일 지음 | 김영사 펴냄
생과 섹스가 무엇인지를 충격적으로 펼쳐 보인 장정일의 첫 장편소설로 동명으로 영화화되어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 소설은 나, 은행원, 바지 입은 여자 세 주인공의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또한 민주투사가 감옥에서 요리책을 보고 주방장이 된다거나 안기부 직원이 청와대 사칭 사기꾼이 된 이야기, 술집 아가씨와 결혼해 여고 앞에서 분식집을 차리는 젊은 시인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불행한 사회의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