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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인 서정홍. 시집 <58년 개띠>·<아내에게 미안하다>·<내가 가장 착해질 때>와 동시집 <윗몸일으키기>·<우리 집 밥상>·<닳지 않는 손>, 산문집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농부 시인의 행복론>·<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펴냈습니다.

1980년대 창원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90년대 접어들어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본부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농촌에 들어가 농부가 됐으나 2001년 아직 도시에서 할 일이 남아 '귀도'했다가 다시 합천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산지가 올해로 8년째랍니다.

농부시인 서정홍은 자기가 보도되는 일을 저어했습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자꾸 나서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피플 파워> 2월호에 나간 고명천 선생도 그랬는데, '향기가 있는 삶'은 앞으로도 이런 면이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내고 내지 않고 관계없이 만나서 얘기나 나누자고 했습니다. 2월 10일 낮에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나무실 마을에 있는 집에서 서정홍 농부시인을 만났습니다. 민병욱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블로거 달그리메, 노컷뉴스 권범철 기자가 함께했는데 기사화되는 데에는 동행한 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저는 먼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바깥나들이 많이 안 해요. 농사에 전념하려고요. 강연을 자주 나가니 신(神)이 아니고 사람이다 보니 게을러지더라고요. 한 번 나가면 돈 몇십만 받고 오는데 농사는 한 달을 일해도 30만 원 벌이가 될까 말까 하거든요.

감자 농사를 지으며 해야 할 일을 손가락 꼽아가며 헤아리고 있습니다.


감자를 보기로 들면 밭 갈아 거름 넣어야지, 씨감자 잘라서 상자에 담아 재를 발라 한 달 동안 싹 틔워야지, 가서 심어야지, 풀도 매야지, 좋은 것만 가려서 택배 보내야지,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강연은 한 번 갔다 오면 한 시간에 50만원도 받고 하니 돌아오면 일하기가 싫어져요.

그래서 꼭 가야 할 데 아니면 안 갑니다. 지난해 마산고 용마고 삼진고에 한 달에 두 차례씩 학생들 만났어요. '야자' 하지 않고 글 공부 하겠다는 학생들한테 하는 강의였습니다. 나랏돈으로 하는데 월급 없는 시인이나 작가들이 대상이었어요.

글은 틈틈이 생각해 뒀다가 여름이나 겨울에 몰아서 씁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쓰지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때가 되면 꼭 자야 해요. 옛날에는 새벽까지 글을 써도 이튿날 괜찮았는데 말입니다."

이윽고 노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10배 즐기기’가 말꼬투리가 됐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에너지를 많이 들이지 않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도록 놀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즐겁게 노는 게 인생입니다. 노는 것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귀농한 이들 합동 결혼식을 했습니다. 다들 시골집 한 채 빌려 갖고 들어와 살았지요. 결혼식을 하는데 헌옷 빨아서 입고 반지 같은 것 안 하고 찬 물 떠다 놓고 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두부랑 음식 만들고, 동네 아이들은 나무 이파리 모아서 뿌려주고, 가회면 삼가면 온 들을 다니면서 꽃을 꺾어 모아 장식해 주고, 사람들이 기타 치고 노래 불러주고 했습니다.

비디오 촬영하고 그런 것 없이, 세 쌍이 합동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으로 끝냈지요. 결혼식 준비 돈 안들이고 옷도 빌려오고 마이크 빌려오고 그렇게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식이라는 문화를 웨딩드레스, 금반지, 해외 신혼여행 이런 것 없이도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문이 트이니 서정홍 농부의 입과 머리에서 이야기가 절로 술술 흘러나왔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농부시인 서정홍의 책장 겸 진열장. 여기 있는 물품은 판매용입니다.


"생각만 바꾸면 되지요. 태어날 때는 생각이 없는데 살아가면서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들어와야 할 것은 안 들어오고 자기가 아닌 남의 생각, 자본주의 사회 썩어빠진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움직입니다. 생각이 말을 하게 하고 생각이 행동하게 합니다. 생각하는 백성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해야 깨달을 수 있고 깨달아야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있고 그 생각이 나를 움직입니다.

내가 잘 살기 전에라도 이웃이나 친척이 어려우면 도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세상은 '일단 니가 잘 살아야 남들을 돕거나 말거나 할 수 있잖아'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바가지를 씌우거나 합니다. 그리고 동료가 아플 때면 돈 백만원 해 줘야 하는데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잖아요. 누나가 무슨 일이 생겨 30만원 40만원이라도 줘야 하게 생겼는데 내가 집 한 채 장만하려면 그런 마음이 나지 않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살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환경도 농촌도 가난한 사람들이 살립니다. 농촌이 무너지고 해도 부자들은 돈을 먹고 살면 살았지 농촌에 들어와 땡볕에 괭이질 하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부자들은 물이 오염되면 오히려 물 팔아먹을 생각을 하잖아요.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어요. 어떻게 하면 강을 살릴까 생각하지 않고 지하수를 파서 물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물도 사 먹어야 하니까 더욱 가난해지고요. 생수 만들면 플라스틱병 만들고 공장 돌리고 해서 쓰레기 나오지요. 그런 것은 재활용을 해도 결국 환경 오염 됩니다."

농부시인의 생태 뒷간. 똥 눈 다음 등겨를 뿌려 냄새를 막고 발효를 돕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나와서,
좀 엉뚱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다 가난해지면 어떻게 되겠는지, 다 가난해질 수 있을지를 물어봤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 가난해지면 다 넉넉해집니다. 이를테면 조직폭력배 같은 것도 먹고살 길이 없으니까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지요. 어느 정도 평등해지면 조폭 같은 것은 없어집니다. 위험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일을 계속하겠어요? 그런 것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서, 인간의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봐요.

부자들이 가난해지려면 두 가지 길이 있지요. 먼저 합의를 통해 법률로 인간의 욕심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집을 두 채 이상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참새 까치 딱새 지렁이도 나비도 벌도 하물며 바다에 사는 고동조차도 집이 한 채인데 법을 떠나 자본주의고 뭐고 떠나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아파트 30평 이상 크게 지어서는 안 된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집이 클수록 환경오염이 많이 되잖아요. 석유 가스 전기 물 따위 아파트가 클수록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잖아요. 생각이 없는 벌레도 자기한테 딱 맞게 사는데 생각이 있는 인간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합의를 하면 됩니다. 쿠바처럼 할 수 있잖아요. '농민들도 3000평 이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 식구들이 농사지을 수 없는 정도로까지 땅을 사 가지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땅을 투기하거나 하지 못하잖아요.

다른 하나는 양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종교, 불교나 천주교나 다 욕심을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가능성이 없어요. 성당이나 예배당이나 체제 유지하는 데 많이 씁니다. 전기요금, 건물 유지비, 인건비, 자가용 비용이나 기름값, 에어컨이나 히터 온갖 오염을 다 시키는 그런 일을 하면서 입으로만 생명이다 환경이다 아이들이다 이야기하고 행동은 실천은 하지 않습니다. 1%도 모범을 보여주지 않아요."

농부 서정홍의 집. 앞에 있는 양철통은 무엇인가의 효소액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서정홍 농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자기는 가만 있으면서 다른 사람더러 바뀌어라 주문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꾼 것입니다. 남들더러 가난해져라 하기 앞서 스스로 가난해지는 삶을 골라잡은 서정홍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걸 데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는 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부처가 되고 예수가 되고 내가 대통령이 되고 그런 거죠. 자기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밝게 하는 것입니다. 저도 내 삶을 바꾸고 싶어서 농촌으로 왔습니다. 똥오줌을 거름으로 쓰고 자빠진 나무를 해 와서 장작을 때고 하고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함께 노동운동하던 동료들이 잘 모르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90년대부터 그렇게 살았고 합천 여기 들어와 산 지도 8년째입니다.

21세기 가장 문제가 식량과 환경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쟁점이 될 것입니다. 밀가루만 해도 3년새 두세 배 올랐다고 합니다. 들깨 참깨 콩 옥수수 자급률이 5%도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1kg 1000원 하는 밀가루를 열배 올려서 1만원에 사먹어라 하면 사 먹어야 합니다. 흉년이 들어 너거 나라 줄 것이 없다 그러면 못 먹습니다.

밀가루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35%가 라면 국수 과자 빵 같은 밀가루 음식을 먹습니다. 밀가루 수입이 중단되면 중국집 분식집 빵집 다 문 닫아야 합니다. 밀가루 자급률이 2%도 안 됩니다.

그래서 늘 주장하는 바가 도시 인구의 70%가 숲으로 돌아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마지막 희망은 소농입니다. 수만 년을 품앗이하며 살아온 소농이 희망입니다."

영암사지에 선 서정홍.


농부 서정홍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생협에 대해서도 고민을 합니다.
"소농이 희망"이라는 말 끝에 천규석 선생도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가 발병난다>는 책에서 그렇게 말한 줄 안다고 하니 나온 얘기랍니다.

“생활협동조합, 생협이 우리밀통밀 건빵을 팔아야 하나 팔지 않아야 하나로 대구의 천규석 선생(74·1965년 귀농·대구 한살림 이사)과 20~30분 통화했어요. 3000원이면 밀가루 1kg을 살 수 있고 밀가루 1kg으로는 스무 사람이 수제비를 끓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국수를 사면 두세 사람이 먹는 것으로 끝이고 빵을 사면 혼자 먹어도 모자랍니다. 이렇게 한 번 가공하고 또 한 번 더 가공하면 할수록 인건비 물류비 전기 에너지 모두 더 들어갑니다.

생협에서 이런 것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입니다. 도시가 바쁘니까 빵, 건빵, 과자, 그것도 여러 가지로 만들어 달라, 오뎅도 만들어 달라, 소비자들 요구는 어마어마해요. 자식들은 아토피 걸리지, 먹을 것 없지, 그러니까 꿀짱구 웨하스 같은 것들까지 생협에다 요구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생협의 철학하고는 아예 안 맞는 것입니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쌀과자를 만들려면 설탕 버무려야지 인건비랑 비닐값 들어가지……. 소비자들 요구 따라 자꾸 가공하면 값이 자꾸 비싸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생협을 이용할 수 있고 자연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이지요.

해답은 통밀을 가공하지 말고 바로 밥에 섞어 먹으면 된다, 정녕 필요하다면 밀가루 만드는 정도로만 가공하면 된다, 입니다. '생협에서 과자를 안 만들면 아이들이 불량 식품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물론 자본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달게 더 고소하게 만들지요.

생협은 교육을 첫째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은 참새나 까치나 지렁이하고 달리 같은 생명이라도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만 사람다워집니다. 그래서 무덤 앞 비석에도 학생(學生)이라 새기지 않습니까? 죽어서도 배워야 사람이 된다고요. 교육을 통해 생협이 운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농협처럼 판매 위주로 계속 나간다면 생협이 아닙니다. 삶을 바꾸고 실천하게 해 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하는 생협이 적습니다. 돈만 주면 좋은 먹을거리 가지가지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생협 회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공을 하면 할수록 비싸집니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더 안전한 음식을 먹게 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나쁜 음식을 먹게 되고 더욱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환경이나 모든 생명과 농촌을 살리는 것과 에너지 많이 쓰는 것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들여 만든 비싼 빵이나 쿠키를 못 먹고 통밀을 밥에 넣어 먹고 밀가루로 수제비 끓여 먹고 감자 먹고 하는 가난한 사람이 생명과 환경과 자연을 살립니다."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앞에 선 농부시인 서정홍.


이날 우리는 서정홍 농부시인 집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합천호 둘레 한 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서정홍 농부시인 집에서 걸어서 3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모산재 앞 영암사지를 들러 둘레 겨울 풍경을 누렸습니다.

농부시인 서정홍과 만나 나눈 이야기는 이처럼 가난해지는 것으로 시작해서 가난해지면 좋다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이의 가난은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다같이 풍성하고 넉넉해지도록 만드는 가난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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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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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8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재수없는 나라 2014.03.27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저같으면 지구상에서 몇안되는 가난한 공산국가인 쿠바나 그것도 아니면 국민총행복지수 세계1위인 부탄을 선택했을겁니다! 물질적인 욕심도 별로없고 독기어린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몇안되는 어르신들이나 성인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해맑고 정겨운웃음을 지닌 동자승같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하지만 살아보면 선진국들보다 더 힘들것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