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오후 7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하동 전통차 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좌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일본 다도의 음모를 깨라!’였고 강사는 박희준 동국대학교 차문화컨텐츠학과 교수였는데 우스개와 몸짓을 섞어가며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냈답니다.

아래는 간추린 강의 내용입니다. 여태까지는 저희 경남도민일보의 민병욱 기자가 정리해 올렸는데 민 기자가 편집국의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에서 신문홍보팀 팀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기면서 제가 이렇게 정리하게 됐습니다.

녹차라 이르면서 먼저 상품화한 일본

17세기 네덜란드가 중국(=청나라)에서 차(茶)를 수입해 갈 때 블랙티(=홍차)와 구분할 필요가 있어 그린티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를 일본이 중국보다 먼저 녹차(綠茶)로 상품화했습니다.


일본의 녹차는 만드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원래 중국과 한국에서는 솥에 볶고 덖어 만드는데 일본에서는 빛깔을 살리기 위해 쪄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푸른색이 더 납니다.

지금은 우리도 녹차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됐지만 그 전에는 쓰이지 않다가 널리 쓰인 때는 1980년대부터랍니다. 앞서서는 차, 작설(雀舌), 작설차라 했습니다. 일본 말차(抹茶=가루차) 옥로(玉露)가 19세기 우리 문헌에 등장했는데 녹차라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 가서 일본서 마시는 그 차를 두고 작설차와 비슷한데 푸른빛이 좀 더 돌더라 해서 청(靑)작설이라 적었습니다. 자주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는데, 한국형으로 이름을 바꿔 부른 셈이지요. 중국서 가져온 검은 차는 흑작설이라 했습니다. ‘작설’이 그만큼 중요한 이름이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동의보감>에도 ‘녹차’는 없습니다. 녹아다(綠芽茶)라는 말은 썼습니다.

우선 이상적(1804~65)이라는 역관 출신 시인의 한시에서 ‘녹차’가 처음 쓰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1845년에 “천향시녹차(泉香試綠茶=샘이 향기로우니 녹차를 시음할거나)”라는 구절을 남겼습니다. 한 세대 아래에 이유원(1814~88)이 있는데 그 한시를 보면 능삼·응조 등 일본 차의 종류 12가지가 나옵니다.

일부 지식인이 일본 차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과 함께, 녹차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낯설었기에 삼갔음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고종 시절 물밀듯 들어온 일본 차문화

일본 녹차는 조선 말기 물밀듯이 들어왔습니다. 떡차로 대표되던 조선 차문화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한편으로 녹차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일제강점기 형성됐기 때문에 해방공간에서는 녹차보다 홍차가 오히려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현대 차문화의 역사에서도 ‘녹차보다는 잎차 또는 작설이라 해야 민족 정기를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식 용어였기 때문에 ‘다도(茶道)’라는 낱말 또한 그 때는 금기어였습니다.

어쨌거나 조선 말기 고종 시절 위정자들 차문화는 크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조선 사람 차문화가 없으무니다. 조선에는 차가 없으무니다. 그래서 일본의 차문화를 조선 사람에게 심어야겠스무니다.” “그거는 떡차이무니다. 제다(製茶) 기술도 제다 산업도 없고 차가 없스무니다. 막걸리 많이 먹고 담배를 많이 피워서 차를 안 마시무니다.”

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이 자기 나라인 아유타국에서 차나무를 가져왔다고 돼 있습니다. 이런 김해 김씨 족보가 일제강점기에는 금서였습니다. 자기 역사보다 더 오래된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해서지요.

일제강점기 수신(修身) 과목으로 ‘다도’ 교육

일제는 여학교 학생들에게 수신 과목으로 일본 다도를 가르쳤습니다. 일본 정신의 정수인 다도로 한국의 가정 생활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겠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다도 교육은 당시 조선인 중상위 계층에게 녹차문화가 바로 차문화라는 인식을 심었습니다.

1926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도 선생들이 건너와 여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대에는 전국 40개 남짓 고등여학교와 이화·숙명여자전문학교에서 다도를 교육했습니다.

일본 다도를 하면 마치 일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나는 너희들과 달라, 조센진은 이래서 안 돼, 핫바지야.’ 이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일본인을 통해 배워버렸습니다.

제다법이 바뀌니 차 마시는 방법도 바뀌고

일본 차산업도 들어왔습니다. 일본식과 조선식은 경쟁이 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떡차가 사라졌습니다. 일본식은 대량 생산을 했고 조선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식 차공장이 문을 연 지 5년도 못 돼서 ‘(떡차는 한때) 만들었었지’가 됐다.

한 잎 따고 두 잎 따고 세 잎 따는 조선식은 기계로 만드는 일본식에 가격 경쟁에서 졌습니다. 메주 냄새 나는 조선차는 파란 녹차 상큼한 녹차에 밀렸습니다.

차 마시는 방법도 바뀌었다. ‘식혀서 먹더라’는 것이다. 숙우(熟盂) 다기, 다관에 붓기 전에 알맞게 물을 식게 하는 그릇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차를 팔팔 끓여 삶아먹었습니다. 일본식으로 쪄서 만든 녹차는 끓이면 떠 버립니다.

차가 바뀌면 찻그릇이 바뀌고 찻그릇이 바뀌면 행다법이 바뀝니다. 그러면 다시 차는 더욱 더 바뀝니다. 차가 점점 새파래집니다. 그러면서 개운한 맛을 좋아하게 됐다. 감미=우아미(Uami). 우전(곡우 전에 딴 햇잎으로 만든 차)을 찾기 시작한 것이 일본 차 맛의 영향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영계’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명전차(=곡우보다 보름 이른 청명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차)는 한 통에 20만 원을 웃돌게 됐습니다.

일본 다도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일본은 자기것을 지키려는 경향이 매우 셉니다. 우리는 많이 가진 탓인지 귀한 줄을 모릅니다. 지금 우리 차문화는 보전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차공장에서 쓰는 큰 기계는 죄다 일제랍니다.

다도를 하는 일본사람에게 차는 굉장한 사회적 봉사입니다. 찻집에서는 통째로 일본 복식을 합니다. 다도를 하면서 전통문화를 지키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통 예인들이 먹고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다도를 배우면서도 껍데기만 바뀔 뿐 속까지 바꾸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도를 하면서도 전통문화를 지키지 않고 버립니다. 이를테면 일본은 찻물을 끓이는 데에 전통 화로를 쓰는 반면 우리는 전기 포트를 씁니다. 반풍수로 배웠습니다.

일본 차의 영향 속에서 차가 바뀌고 그릇이 바뀌고 행다법이 바뀌고 맛까지 바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중국 차가 범람하고 정신은 일본에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차 끓이는 방법은 어땠을까요? 약재 달이듯이 했습니다. 차, 생강, 모과, 돌배, 잔대 뿌리 등을 서 푼(3g)씩 넣습니다. 사금파리도 함께 넣었는데 적당한 색깔이 됐는지 보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걸러서 먹었는데 설탕이나 꿀을 탔습니다. ‘허브의 왕국 대한민국’답게. 좀 있는 집안에서는 좀더 격식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차를 많이 마셨는데, 소박하고 간략해서 수행자다운 선풍이 있었다고 할만합니다. 절간 발우공양을 보면 일본 다도와 많이 닮아 있는데 이를 보면 일본 다도가 불교 문화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훤주

카카오톡으로 친구맺기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