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일 찾아갔다고 <기록>이 수첩에 돼 있습니다. 글 쓸 일이 당장 닥쳤는데 취재해 놓은 강산이 없어서 서둘러 걸음했다는 <기억>이 머리에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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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산마루 어름에서 북으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제대로 찍었으면 거창 읍내가 나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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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은 우리나라 곳곳에 많습니다. 대충 알기로도 경기도 파주에 하나 있고 강원도 원주에도 하나 있습니다. 감악산의 감악은, ‘검다’에서 왔음이 분명합니다. 이를테면 검은 산입니다. 거창 감악산도 이처럼 바위가 검습니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도 거무튀튀한 빛을 띤답니다. 아래 사진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하얀 햇살을, 잎 진 나무들이 가지로 밝게 되쏘는 틈틈이에서, 검은 바위가 더 까맣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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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이라서, 눈이 없더라도 겨울산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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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사 계단입니다. 바위와 시멘트를 버무려 만들었습니다. 아래서 치어다보니 그럴 듯했습니다. 신라 때에 지어졌다지만 완전 폐사했다가 중창한 때는 1991년입니다. 이른바 <유서 깊은> 물건은 있을 데가 아닙니다.


이 절간은 은행나무와 약수가 이름나 있습니다. 약수는 신라 헌강왕이 받아 마시고 고질을 치료했다고 하며, 고려 때 임금 하나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연수사(演水寺) 이름도 그래서 얻어걸렸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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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처음에는 젓나무와 짝을 지어 나란히 있었다고 합니다. 600년 남짓 된 은행에 얹힌 얘기는 이렇습니다. 고려 왕실에 시집갔다가 남편을 일찍 잃고서 유복자를 낳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고려 왕실도 조선 이씨 집안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이는 스님이 돼서 아들과 함께 이 절간에서 남편과 고려를 위해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10년 즈음 세월이 흐른 다음 아들이 공부를 하러 어머니 품을 떠나게 됐습니다. 아들은 떠나면서 뒤뜰에 젓나무를 심었습니다. “사철 푸르게 자랄 터이니 저를 마주하듯 길러주십시오.” 어머니는 앞뜰에 은행을 심었습니다. “뒷날 내가 만약 없더라도 이 나무를 어미를 보듯 가꿔 다오.” 젓나무는 바람이 세게 불어 꺾였고 지금은 은행나무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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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녀석이 좋습니다. 부럽습니다. 절간 마당 한가운데서 이렇게 팔자좋게 늘어져 있어도 되는 팔자가 바로 상팔자 아니겠습니까? 절간 스님이 이 녀석을 제 명에 못 죽을 처지로 만들 턱도 없을 테고요.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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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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