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피플파워 6월호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왈칵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였습니다.


"오빠가 있었어요. 어쩌다 집에 가면 '왔나', 가면 '가나' 이게 다였어요. 그 오빠가 술을 한 잔 먹고는 도끼를 들고 왔더라고요. 제가 막내다보니까 고등학교를 제대로 못 시킨 거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고, 오빠로서 막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에 측은함도 있었고, 오빠가 굉장히 미안한 마음으로 와가지고 '누가 니를 이렇게 하대? 당장 죽이겠다.' 이러는 거를 사람들이 말려가지고."


1988년 5월 마산수출자유지역 한국TC전자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사측 관리직 기사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던 이연실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저는 막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엔 대학 캠퍼스도 연일 최루탄 가스냄새로 매캐했었더랬죠. 제가 교문 앞에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 캠퍼스 안으로 쫓겨와 눈물 콧물을 흘리도 있던 바로 그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플파워 6월호 표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끼리 느끼는 연민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만은 아니겠지요. 저는 이게 '사실의 힘'이자 '기록의 힘'이라고 봅니다. 기록자인 정윤 씨도 "기록되지 않는 것은 역사가 될 수 없다"고 썼지만, 사실이 기록으로 남겨졌을 때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저에게 어떤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읽은 역사기록물에서 말미암은 바가 가장 클테니까요.


한동안 '공돌이' '공순이'로 불렸던 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의 삶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가 이 작업을 시작했고, 월간 <피플파워>에 이를 싣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저희는 기꺼이 지면을 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창원은 산업도시, 기업도시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면 노동자의 도시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겁니다. 특히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이 있던 마산은 '여성노동자의 도시'였다고 해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듣는다! 여성노동자들의 살아 있는 역사'는 지금 우리가 꼭 남겨야 할 역사기록입니다.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아예 이 곡을 '국가'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가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작품과 삶의 괴리는 오랜 논쟁거리가 되어왔습니다. 이완용이 글씨를 잘 썼다지만 그 글씨에 감동받는 이가 없고, 이은상의 시조가 훌륭하다지만 기회주의적 삶으로 인해 그의 문학관이 고향에서 거부당한 것도 그때문이죠.


이번호 '역사에서 만난 사람-정판교' 편은 글과 삶이 일치했던 선인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굉무의 음악이야기'에서는 서정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기억되고 있는 존 바에즈의 'Donna Donna'라는 곡이 사실은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을 노래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억압된 민중의 저항을 선동한다'는 등 이유로 박정희 정권 시절 금지곡으로 묶였다지요.


음악평론가 강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폭력 집회를 연상하게 하므로 공식적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의 한 구절을 제시합니다.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 행진하자 행진하자 / 적들의 더러운 피로 / 우리의 밭을 적실 때까지" ('La Marseillaise')


이번호에도 읽을 거리가 많습니다만 저는 특히 자연치유력을 믿는다는 한의사 김연민 원장과 통영에서 횟집을 운영하며 아너소사이어티에 합류한 것도 모자라 30억 원 규모의 장학재단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박택열 대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시간의 흔적'을 잘 보존해야 도시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김태훈 소장의 글도 도시공동체 구축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만 합니다.


모바일로 정보를 얻는 사람이 늘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책 소비자의 60~70%가 수도권에 몰려있고, 그나마 30~40%의 비수도권 소비자들도 지역서점보다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힘겹게 지역서점을 지키고 있는 분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그 첫번째로 마산 합성동 대신서점을 서정인 기자가 찾아갔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이강래 대표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지만 책을 사랑하고 책에 빠져 힘든 줄도 모르고 분투하고 있는 분이더군요.


이번 기획을 준비하면서 지역서점 대표님들 중 인터뷰를 꺼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애용하는 단골서점을 소개하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010-3572-1732 편집 책임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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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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