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내가 편집국 자치행정부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우리 신문에 이런 제안을 해왔다. 500만 원을 취재협찬금으로 줄 테니 자신들의 주문대로 특집기획기사를 신문에 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신문들에도 그렇게 하여 기사가 실렸으니 ○○일보 몇 일자 몇 면을 참고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황당했다. 이건 국가기관의 ‘언론 매수’였다. 고민 끝에 그들이 주문한 기획기사 대신 이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 결국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지켜온 ‘건전한 대언론관계 형성’ 원칙에 역행한 것으로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식의 언론 매수 행위가 비일비재하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매일경제가 보도한 ‘노동시장 개혁’ 시리즈 기사는 5500만 원의 정부 돈을 받고 써준 기획기사임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었다. 문화일보,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중앙일보 등도 그랬고, 심지어 조선·중앙·동아일보에 실린 전문가들의 정부 정책 홍보성 칼럼도 정부가 돈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드러난 역사교과서 국정화 ‘TF 구성 운영계획(안)’에 적혀 있는 ‘기획기사 언론 섭외, 기고·칼럼자 섭외’라는 문구도 그런 짓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국가기관과 언론이 짜고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려면 당당히 해당 부처를 광고주로 명기한 광고를 내면 된다. 정책홍보 광고는 노무현 정부 때 한미FTA 광고,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광고 등 모든 정부에서 해왔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도 하고 있다. 그 정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국민을 설득하려고 낸 광고가 오히려 역풍을 맞아 국민에게 욕을 먹는다면 그건 온전히 광고주인 정부가 감당할 몫이다.


한겨레 10월 19일자 1면


그런데 광고주보다 광고를 실어준 한겨레가 욕을 먹는 일이 벌어졌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교육부 광고를 실었다는 이유였다. 경향신문이 ‘광고도 지면의 일부’라며 이 광고를 거부한 것과 비교되면서 비난이 증폭된 이유도 있다.


물론 독자 입장에선 얼마든지 언론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한겨레 비판이 ‘신문의 논조와 배치되는 광고를 실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귀결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런 논리라면 싣지 말아야 할 광고의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게다가 나와 다른 입장이면 광고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파쇼이자 폭력으로 연결된다. 한겨레가 특정 진영의 기관지가 아닌 한 반대 입장의 광고도 허용해야 한다.


한겨레는 이번 광고를 실으면서 ‘광고와 기사는 다르다’고 밝혔다. 그렇다. 한겨레가 정부의 광고 공세나 회유에 굴복해 비판논조가 무뎌졌거나 바뀌었다면 당연히 욕먹어야 한다. 또한 앞서 거명된 신문들처럼 돈을 받고 위장된 기사를 실었다면 신문의 존폐를 논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거야말로 독자를 우롱한 것이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광고와 기사는 구분할 줄 안다. 한겨레에 실린 광고를 보고 그게 한겨레의 입장이라고 생각할 독자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본다. 또한 적어도 한겨레를 봐온 독자라면 그 광고에 설득당할 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광고를 다 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서구 신문들도 인종 차별이나 나치 찬양 등 광고는 싣지 않는다. 또한 실정법 위반이거나 허위사실임이 명백한 광고도 실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 광고가 거기에 해당하는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아마도 한겨레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을 미리 허위라고 예단할 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각 정당과 후보자의 장밋빛 정책·공약 광고처럼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경향의 선택도 존중하고 한겨레의 판단도 존중한다. 진짜 욕먹어야 할 신문들은 따로 있다.


※미디어오늘 '바심마당'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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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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