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남에 터를 잡고 전국 독자를 상대로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사 관계자들과 만났다. 그렇잖아도 한 번 만나야지 하고 있던 차에 우리 신문 기자가 ‘지역출판’을 주제로 기획취재를 해보겠다고 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펄북스 여태훈 대표, 그리고 도서출판 피플파워를 대표하여 내가 참석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다들 의미 있는 지역콘텐츠를 발굴해 책을 펴내지만, 소비층이 제한되어 있다는 게 공통적인 어려움이었고, 공공기관이나 단체에서조차 공익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출판업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일회성으로 신문에 소비되고 마는 지역콘텐츠들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지역신문은 뉴스기업이 아니라 종합콘텐츠 기업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나로서는 지역신문이야말로 지역콘텐츠 생산의 선도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진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하지만 지역신문업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개 지역신문은 ‘연감’이라는 책을 내는데, 지방자치단체와 의회, 기관·단체·대학 등에서 소개 자료를 받아 그걸 짜깁기하여 만든다. 500~70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이 책에는 자료를 제공한 지자체 등의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책 내용도 관(官)에서 받은 것이고, 광고도 거기서 받아 제작비용을 뽑고도 남았으니, 신문사가 저작권이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부끄러운 책이다.


게다가 그런 책에 19만 원 정도의 가격을 매겨 팔아먹는다. 판매방식도 거의 ‘강매’ 수준이다. 기자들이 판매원으로 내몰리기 일쑤고, 판매대행업체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기서도 기자를 사칭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로 인한 관폐·민폐가 심각하다. 신문사 입장에선 매년 그렇게 손쉽게 만든 책으로 광고수익과 판매수익으로 1~3억 원 정도는 챙길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기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앞서 지역출판사 관계자들이 토로했듯이 진짜 가치 있는 지역콘텐츠를 만들어봤자 알아주는 이도 별로 없고 상업성도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콘텐츠는 생산되지 않고 쓸모없는 연감만 기관·단체장 사무실 책장에 꽂혀있다. 악순환이다.


의미 있는 콘텐츠는 책으로 출판, 유통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서 지역출판이 없으면 지역콘텐츠도 없다. 지역콘텐츠가 없으면 지역의 정신문화와 정체성도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연감의 폐단을 극복하고 지역민에게 직접 콘텐츠 가치를 평가받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나온 책이 역사·문화·관광 인문지리지 <경남의 재발견>, 전통시장 스토리텔링 <시장으로 여행가자>, 먹거리 특산물 스토리텔링 <맛있는 경남>, 지역 인물 스토리텔링 <열두 명의 고집인생>, <풍운아 채현국>, 마을 스토리텔링 <사람 사는 대안마을> 등이었다.


올해에는 <경남의 숨은 매력>, <한국 속의 경남>, <통영로 옛길을 되살리다> 등도 출판할 예정이다. 다행이 그동안 나온 책은 모두 1쇄(1000권) 이상 판매하는데 성공했고, 몇 권은 3쇄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의미는 있고 가치도 높지만 상업성은 낮은 콘텐츠도 있다. 이런 경우 최소한의 제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독자들에게 크라우드펀딩을 받고 있다. <남강 오백리>에 대한 출판 펀딩인데, 목표금액인 200만 원이 열흘 만에 달성됐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무관심과 푸대접은 여전하다. 어쩌면 지방자치단체가 용역을 줘서라도 만들어야 할 공익콘텐츠를 민간 출판사가 책으로 펴냈는데, 공공도서관에서조차 구입해주지 않는다. 동네서점 살리기 차원의 지역서점 의무구매 제도와 함께 ‘지역출판물 우선구매 정책’ 또한 절실하다. 그래야 전국의 지역신문들이 연감을 없애고 진짜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미디어오늘 [바심마당]에 칼럼으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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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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