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서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수단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ㅠㅠ"


아, 이수단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1998년 3월 내가 한국정신대연구소 고혜정 부소장, 서은경 연구원과 중국 동북 3성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으러 갔을 때 만났던 여덟 분의 피해자 중 한 분이다.


당시 만났던 이옥선, 지돌이 할머니 등은 우리나라로 귀국하여 나눔의 집에 계시지만, 이수단 할머니는 국적을 회복하고도 고령에다 건강상 문제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 계시던 중 어제 별세하신 것이다.


당시 우리와 인터뷰 중 중국어로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함께 울었다.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울었던 게 이수단 할머니를 인터뷰할 때였던 것 같다. 당시 고혜정 한국정신대연구소 부소장이 "이제 김주완 기자가 제대로 '위안부' 활동가가 됐네"하며 놀리던 기억도 난다.


평안남도 숙천 출신인 할머니는 공장에 가는 줄로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으며, 일본군이 패전 후 현지에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중국에 남게 됐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할머니를 찾지 않았고, 결국 우리가 수소문하여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동녕현 도하진이라는 외딴 시골마을에 살고 있던 이수단 할머니는 해방후 중국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조선말을 아예 잊어버렸다. 자식이 없어 한때 양로원에 수용돼 있었으나 우리가 찾아갔을 땐 죽은 남편의 조카에게 얹혀 살고 있다. 우리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고혜정 부소장이 부르는 도라지타령을 따라 흥얼거리는가 싶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복부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허리통증을 호소하던 할머니는 통역을 통해 "빨리 죽어야지"하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할머니를 추모하며 그때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올려둔다.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이수단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증언하는 이수단 할머니.


이수단 할머니의 가족과 이웃들.


할머니는 한 양로원에 계시던 중 17일 오후 3시쯤 운명하셨다고 한다. 향년 95세.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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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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