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천만에 있는 갈대, 사천만에는 왜 없을까?


전라남도 순천만은 갯벌이 너릅니다. 경상남도 사천만도 갯벌이 너릅니다. 순천만은 게다가 갈대도 많습니다. 사천만은 그러나 갈대는 없습니다. 


순천만에 가면 너른 갯벌에 펼쳐지는 갈대로 말미암아 상쾌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천만에 가면 갈대로 너른 갯벌의 호탕함은 있지만 갈대로 말미암는 상쾌함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차이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천만에 대해 잘 아는 윤병렬 선생님(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전국교사모임 대표·마산 삼계중학교 근무)한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매립을 했기 때문이지요.” 갈대가 자라고 있거나 갈대가 자랄 수 있는 데를 메워 육지로 만들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순천만 갈대.

마찬가지 순천만.

이 또한 순천만 갈대.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옛날 비토섬에 간 적이 있습니다. 비토섬 갯벌 또한 사천만 갯벌의 일부인데요, 거기도 갯벌만 있고 갈대는 없었습니다. 


갈대가 있음직한 자리에는 논이 들어서 있었는데 성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군데군데 하얀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고 나락들은 죽정이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염해(鹽害) 탓이었습니다. 갯벌을 흙으로 메우기는 했어도 소금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았기에 벼가 자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천만 갯벌.


2. 매립되지 않은 서쪽에도 갈대가 없는 이유는?


사천만은 또 동쪽과 서쪽이 다릅니다. 사천만의 서쪽 갯벌은 매립이 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남은 데가 많습니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드는 갯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갯벌도 매립되지 않은 데가 많습니다. 


동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드는 지역은 그대로 남았지만 밀물 때 바닷물이 들지 않는 갯벌은 모두 매립되었습니다. 매립된 위에는 논도 집도 공장도 공공기관도 있습니다. 


갯벌이라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밀물·썰물에 따라 바닷물에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지역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지는 않아도 물기·소금기는 머금는 지역까지가 갯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갈대는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끝자락에서 시작해 그 위쪽 바닷물이 들지는 않지만 소금기·물기를 머금고 있는 지역에서 주로 자랍니다. 말하자면 사천만 동쪽 갯벌에서는 매립으로 말미암아 갈대가 자랄 만한 지역이 사라져 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사천만의 동쪽은 그렇다 치고, 사천만 서쪽 또한 갈대가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한 번 짐작해 봤습니다. 사천만 동쪽은 대체로 들판이 너르게 펼쳐지지만 서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르게 펼쳐지는 들판(=옛날 갯벌)에는 갈대가 자랐을 것입니다.


서쪽은 바다를 향해 민물이 흘러드는 하천 언저리에만 들판이 펼쳐지고 나머지 해안은 들판이 아니라 산기슭과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갈대가 자랄 여지가 좁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민물이 흘러드는 하천 언저리는 이미 논으로 개간되어 버렸습니다. 


3. 광포만 신생 갯벌은 왜 갯잔디 차지가 되었나?


그렇지 않은 데도 있습니다. 곤양천과 서포천이 만나는 일대에 이루어져 있는 광포만 둘레가 그렇습니다. 물론 여기도 상류 쪽은 일제강점기 또는 그 이전에 이미 논으로 개간이 되었지만 그 아래로는 밀물 때 잠길 듯 말 듯하는 갯벌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곤양면 환덕리 광포만 시작 지점. 썰물이 되면 지금 물에 잠겨 있는 저 아래로 갯잔디가 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광포만. 왼쪽으로 갯잔디가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찌 된 영문인지 갈대가 아닌 갯잔디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윤병렬 선생님 표현을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갯잔디 군락지입니다.” 이 갯잔디 덕분에 광포만이 철새들 중간 기착지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재두루미나 독수리 등등 강원도 철원을 거쳐 창녕 우포늪이나 창원 주남저수지 일대 또는 부산 낙동강 하구에 들른 철새들이 전라도 순천만까지 날아갈 때 날개를 쉬면서 배를 채울 수 있는 데가 바로 광포만이라는 얘기입니다. 


갯잔디는 콘크리트 제방 따위로 망가진 데가 자연 그대로 해안선이 살아 있는 데서만 자랍니다. 갯잔디는 기수갈고둥처럼 조그마한 조개들을 많이 품고 있어서, 이를 먹이로 삼는 철새들한테는 아주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광포만 갯벌이 이렇게 드넓은데, 그리고 바닷물에 거의 잠기지 않는, 그래서 갈대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갈대는 없고 갯잔디만 자라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궁금증을 푸는 실마리는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포만 안쪽 곤양면 대진리 광포마을은 예전에는 단지 고기 잡는 어항에 그치지 않고 고령토를 비롯해 하동과 곤양에서 나는 물산을 부산·마산으로 실어나르는 화물항 역할까지 했었습니다. 화물항은 무거운 동력선이 들어와야 하니까 물 밑 바닥이 깊어야 합니다. 동네 어른들은 40년 전인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수심이 세 길을 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969년 10월 진주 남강댐이 준공됩니다. 더불어 홍수로 남강댐이 넘치면 물을 가화천을 거쳐 사천만으로 빼내려고 방수로도 만들어졌습니다.(남강댐 방수로 공사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진행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1936년부터 43년 제2차세계대전으로 중단될 때까지 8년 동안 200만㎥를 파냈습니다.) 


사천만 갯벌.


전에는 없었던 물이 사천만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셈이고 이렇게 들어온 물은 사천만 바깥바다로 빠져나가면서 광포만 들머리를 막았습니다. 이 바람에 광포만으로 흘러드는 곤양천·서포천·묵곡천·목단천 등의 흐름이 느려지고 말았습니다. 


물살이 느려지니까 함께 실려 내려가던 퇴적물이 더 나가지 못하고 광포만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이렇게 최근 30~40년에 생성된 갯벌이 바로 광포만 갯벌이고 여기 퇴적물에는 아무래도 갈대 씨앗이나 갈대 뿌리가 섞여 있지 않았던 때문인지 갈대는 자라지 않게 된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광포만 갯벌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과 갈대가 자라지 않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망구 저 혼자만의’ 생각 실마리입니다.(일단 저는 여기까지이고, 이 실마리가 맞든 그르든 생각은 자꾸 이어져 나가면 좋겠습니다.)


4. 사천만 갈대 자라는 면적이 조금 넓어졌던데


그런데 지난 4월 23일 용현면 금문리 일대 종포~대포 갯벌에 갔다가 갈대 새로운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갯벌이 콘크리트 제방에 잘리는 끄트머리에 갈대가 그야말로 손바닥만큼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보니까 제법 넓어져서 세숫대야만큼은 했습니다. 


사천만 갯벌.


콘크리트 제방 사이 개울을 따라 내려온 흙과 모래 따위가 쌓이면서 갈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바닥이 높아진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조그맣지만, 나중에는 갈대가 사천만 갯벌을 좀더 많이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설핏 들었습니다. 


이렇게 갈대가 많아지면 그에 걸맞게 사천만(그리고 광포만과 비토섬까지) 일대를 둘러싼 갯벌과 생태계는 물론이고 인간 문화 활동까지 또 엄청나든 조그맣든 바뀌지 않을 수 없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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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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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4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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