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 칠북면에 있는 장춘사는 꽤 멋진 절간입니다. 사는 집이랑 가깝기도 해서 한 해에 한 번 꼴 정도로는 찾아가 쉬었다 오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장춘사에 대해 저는 얼마 전 펴낸 책 <경남의 숨은 매력>에다 이렇게 썼더랬습니다. 

작음으로 이룬 무릉도원 장춘사 

칠원에는 오래된 절간도 있습니다. 대부분 절간은 드나드는 일주문이 웅장하고 지켜보는 사천왕 또한 근엄합니다. 하지만 여기 장춘사는 그냥 대나무 사립문 하나로 성(聖)과 속(俗)을 나눕니다. 사립문한테 한가운데를 내어준 정문은 ‘무릉산 장춘사(武陵山 長春寺)’이라는 현판을 단 채 오른편으로 비껴나 앉았습니다. 장춘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7년 무염국사가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원력으로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은 조선시대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라 말기 만들었다는 약사여래석불은 70년대에 금색을 입었습니다. 앞마당 오층석탑은 한 층이 사라진데다 제자리에 있지도 않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사다리꼴로 좁아지는 몸돌이 색다른데 덕분에 날렵한 느낌을 주면서 상승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장춘사 삽작문.

장춘사는 그러니까 이런 조그마함이 생명입니다. 대웅전도 크지 않아 설법을 강(講)하는 무설전(無說殿)보다 작습니다. 장춘사를 창건한 무염국사를 섬기는 조사전은 여염집 사랑채처럼 앉아 있고 약사불을 모신 약사전도 가로세로 한 칸짜리이며 산신령도 조그만 산신각에서 조그만 호랑이랑 노닐 따름입니다. 장춘사에서는 아무 데나 걸터앉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조그만 데서 오는 만만함, 만만함이 주는 편안함, 편안한 데서 솟아나는 치유 효과가 대단합니다. 그러고 보니 장춘사 들어앉은 산 이름도 무릉산이고 칠원의 옛 별호도 무릉입니다. 

이 절간이 품은 또다른 매력은 산기슭에서부터 3km가량 이어지는 자드락 산길입니다. 별로 가파르지 않은데다 양쪽으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잔뜩 키를 키운 채 늘어서 있어 느낌이 좋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기운을 내뿜고 겨울에는 활엽수 잎진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다사롭습니다. 게다가 이리저리 적당히 굽어 있기도 하여 산자락을 따라 오솔길 구비구비 걷는 재미가 제법 알찹니다. 장춘사는 이렇듯 걸핏 하면 대형 불사를 일삼는 요즘 시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장춘사는 소설가 황석영과도 잠시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노동자와 남쪽으로 와서 여러 가지 막일을 하다 머리를 깎고 입산을 하였던 절이 장춘사이지요. 이런 사연 때문에 황석영이 머물렀던 절간이라 해서 멀리에서부터 장춘사까지 찾아오는 이들이 아주 드물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갔더니 여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대웅전 오른편 용왕각과 약사전 오른편 샘터였습니다. 

용왕(龍王)은 이를테면 커다란 강이나 바다와 가까운 절간에 있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장춘사는 해발 556m짜리 무릉산 중턱 240m 고지에 있는데다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직선거리로 14km 남짓 떨어져 있는데도 용왕각이 있어서 뜻밖이었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봤더니 물이 가득 담겨 있는 돌확이 한가운데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몇 장 엎어져 있었습니다. 

용왕각 내부 사진은 깜박 잊고 찍지 않았습니다.

기했습니다. 장춘사는 가파른 비탈에 바짝 붙어 들어서 있는데, 이런 데라면 물이 솟아도 가풀막을 타고 금세 흘러내려가 버릴 텐데 이렇게 고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이런 샘터가 용왕각 하나뿐이 아니라 약사전 옆에도 하나 있어서 크지 않은 절간에 둘씩이나 된다니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장춘사 약사전은 아무래도 이 샘물과 관련이 있지 싶습니다. 약사불은 대부분 물병을 들고 있는데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여기 약사여래불(정식 이름은 장춘사석조여래좌상)은 왼손으로 약수 그릇을 받쳐 들었습니다. 

장춘사 약사전의 약사여래불. 금칠이 되어 있습니다.

약사전 왼쪽에 있는 안내문을 읽으니 대충 이렇습니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한국에서 이름난 물 100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약수가 있답니다. 그에 얽힌 이야기도 한 자락 있답니다. 

앞에 말씀드린대로 장춘사는 832년 신라 흥덕왕 7년에 무염국사가 왜적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지은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무염국사를 모시고 수행하던 20살 젊은 덕원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이 까닭모를 등창과 위염을 앓아 죽을 고비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 

무염국사가 이 덕원스님을 낫게 하려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유별나게 지저귀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무염국사가 새가 있는 자리에 가보니 땅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국사가 지팡이로 찌르니 물이 솟아났고 그 물을 젊은 스님한테 먹였더니 등창과 위염이 모두 나았습니다. 

약사전 옆에 있는 샘터.

물론 이는 믿거나 말거나 하면 그만인 얘기지만 이런 산중 절간에 용왕각이 있으니 남다르고 이에 더해 샘터까지 두 자락이나 펼쳐져 있으니 한 번 더 남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장춘사 들르시거든 ‘무릉산중 사시장춘(武陵山中 四時長春)’, 우리말로 풀자면 ‘무릉산 한복판 늘 봄과 같다’고 적힌 길다란 현판 아래 마루에 걸터앉아 쉬는 것만 누리지 말고 거기 두 군데 샘물 맛도 더불어 누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과연 떠서 마셔보니 맛은 담백했고 느낌은 시원했습니다. 장춘사는 작음도 좋고 자드락 산길도 좋지만 여기에 더해 샘물까지 좋은 그런 절간인 셈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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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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