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학살 피해자의 딸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그리운 아버지께.

죽음이 무언지도 모르던 다섯 살 아버지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를 볼 때마다 우시던 삼촌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철이 없던 사춘기 소녀가 되어선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어머니는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억울하다 하셨지만 그때마다 저는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말은 저에게 모두 변명이었지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해군통신학교 교장으로 제자 몇 몇이 여순사건에 가담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저는 핑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자기 국민을 죽일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만한 죄를 지었을 거라고.

전술손 씨. @김주완

잡혀가신 뒤 김구 선생으로부터 3개월 생활비를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지하 항일운동을 했고, 해방 후에도 민족의 미래를 생각해 해군에 투신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뜬금없이 위인들까지 끌어들인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심지어 우리가 아버지의 현명함으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어요. 위험을 미리 알고 가족이 있다는 것을 서류에 적지 않아서 살아 남은 것이라고. 어느 사령관은 일가족까지 다 죽었다고.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아버지니까 딸에게 좋은 말만 하시는 거겠지 하고.

갓 스무 살 때 병원에서 일할 때였어요. 하얀 완장을 찬 청년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는 무슨 죄인을 대하는 것처럼 저를 경멸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연좌제의 공포를 아버지는 모르시겠지요.

그렇게 오랬동안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할 바엔 왜 저를 낳으셨는지 원망도 많이 했고요. 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먼저 가셨는지 생각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이제 칠순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가 했던 말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현명했으며,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헌신했던 나라로부터 돌려받은 것은 억울한 죽음뿐이었지요.

최소 717명 이상이 학살 수장당한 마산 원전 앞바다. @김주완

그리운 아버지, 이제 수십 년 미워했던 아버지께 용서를 빌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씼어 내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조작사건들의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들, 우리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의 불의와 부정의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명예를 회복시켜드릴게요.

항일 애국자로서의 명예, 민주주의자로서의 명예, 올곧은 군인으로서의 명예 말이에요. 웃으며 지켜봐 주시고,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될 그날 자랑스러운 딸로 반갑게 맞아주세요.

2016년 7월 9일 딸 전술손 올림

※전술손은 1950년 마산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고 전호극 소령의 딸이다. 그는 지난 9일 마산 원전 앞바다 괭이바다 선상에서 치러진 제66주기 추모식에서 이 편지를 낭독했다. 전술손 씨의 허락을 얻어 이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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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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