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윤리 문제에 손놓고 있었던 한국기자협회

아주 오래 전 한국사회에서 기자들의 촌지와 향응, 성매매 추문이 불거졌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언론자유수호와 기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일한다는 한국기자협회는 이들 기자들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최근 언론개혁과 자정실천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전국언론노조도 이런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조합원을 징계한 사례가 없다.

기자라는 직업은 변호사나 의사와 달리 ‘면허증’은 없지만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대체로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해왔다. 소위 전문가로 대접을 받으려면 자기들의 단체가 있어야 하며, 윤리강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자협회도 있고 기자윤리강령도 있다.

그러나 요즘 끊이지 않는 추문들을 보면서 오히려 윤리문제에 관한 한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가 기자협회보다는 훨씬 윤리적이고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원에 대한 징계엔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때가 2002년이다. 무려 14년 전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자협회 자격징계분과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기자윤리 위반에 대한 징계가 자기 분과의 일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의 협회소개.

그때부터 나는 기자협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아니 그 이전에 1999년 경남도민일보가 창간할 때부터 기자협회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자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경남도민일보 기자회’를 따로 만들어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기자윤리 확립,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공정보도 실현이 주 목적이었고, 실제로 경남도민일보 기자(윤리)실천요강과 선거보도준칙 등이 기자회 주도로 그때 제정됐다.

이후 2004년 무렵 기자협회 가입여부가 사내에서 논의될 때도 나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에 있던 신문사에서 기자협회를 경험해봤고 그 한계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젊은 기자들은 가입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내 생각을 고집할 순 없었다. 기자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이달의 기자상’ 선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이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래서 다시 가입하게 됐지만 나는 기자협회가 계속 마뜩찮았다. 공정보도나 언론개혁 과제는 아예 언론노조에 미뤄버린 채 손 놓고 있는 것도 그랬고, 회비는 꼬박꼬박 거둬가면서 회원들 친목행사 때 기업과 기관·단체의 협찬이나 ‘금일봉’을 받는 것도 못마땅했다. 게다가 각종 행사 때마다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을 불러 ‘가오’를 잡는 것도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회원으로 회비를 내면서도 협회 일이나 행사에는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자는 받으면 안 되고 협회는 받아도 되나

그러다 2007년 기자협회가 매년 주최하는 속리산 등반대회에 참석해봤다. 기자협회가 얼마나 변했는지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여러 기업에서 협찬 받은 온갖 선물이 넘쳐났다. 1992년 처음으로 기자협회의 ‘산업시찰’에 따라 가봤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현대그룹 계열사의 협찬으로 경주의 특급호텔에서 먹고 자고, 현대중공업을 견학한 후 푸짐한 선물을 받아가는 게 기자협회의 산업시찰이었던 것이다.

그건 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실천요강 중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며,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한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었다. 회원은 받으면 안 되고, 협회는 받아도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기자협회는 또한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 어떤 협찬이나 후원을 얼마나 받았는지 내역을 회원에게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스스로 투명하지도 못한 단체다.

참다못해 2011년 이런 기자협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칼럼을 썼다. ‘기자협회가 부끄럽다’는 제목으로 “첫째 투명하지 못하고, 둘째 기자윤리 문제에 대한 자정(自淨) 능력이나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셋째 오히려 기자들의 특권(特權) 의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특권 조장하는 기자협회는 기자들에게 '완장'일뿐

그 후 몇 차례 회장이 바뀌었지만, 이런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래서 2013년 또 이런 칼럼을 썼다.

“기자협회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이 있지만, 그걸 위반했다고 해서 단 한 번도 회원이나 회원사를 징계한 적이 없다. 심지어 기자들이 뇌물이나 성접대를 받아 사회적 파문이 일어도 그 흔한 논평이나 성명서 한 장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이비(似而非) 기자'일수록 기자협회를 일종의 라이선스나 완장처럼 여기고 가입하려 기를 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자협회가 단순한 이익단체나 이권단체가 아니라면, 자기 직업의 이익만 추구할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부과된 사회적 역할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자 윤리 확립’은 기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기자협회에 다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최소한 회원에게 만이라도 모든 수입과 지출을 세부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협찬, 지원, 금일봉 따위는 아예 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 취재원에게 금품을 받거나 특혜성 해외여행, 골프 접대, 출판물이나 광고 강매 등 윤리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제명을 포함한 단호한 징계를 해야 한다. 그런 위반 행위가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해당 신문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경우, 회원사 자격을 아예 박탈하고 이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셋째, 이번에 기자협회장 후보들은 ‘해직기자 복직’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우선 매년 8월 열리는 창립 기념식 자리에 언론장악과 통제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 초청 좀 하지 마라. 그런 자들의 축사를 청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술잔을 부딪치면서 '언론자유' 운운하는 모습은 역겹다.

그러나 기자협회는 세 가지 중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는 시늉조차 없었다. 그래놓고 ‘김영란법’이 통과되자 회원들에게 물어도 보지 않고 덜컥 헌법소원을 냈다. 그리고 합헌 결정이 나오니까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악용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정말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뭔 말인가? 어쨌든 기자협회의 성명은 이렇게 맺는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 시행 여부를 떠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지에 따라 기자사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취재윤리를 강화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제약하고 언론인을 위축시키려는 권력의 검은 의도에 굴하지 않고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제 길을 갈 것이다.”

김영란법에 언론인 포함, 기자협회가 자초한 일이다

웃기는 소리다. 김영란법에 기자가 포함된 것은 지금까지 기자협회가 기자윤리 확립과 자정활동에 손 놓고 있었던 책임이 가장 크다. 어쩌면 기자협회가 자초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놓고 저런 성명을 낼 수 있다니 그 후안무치에 놀랄 따름이다. 이제 와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취재윤리를 강화”하겠다고? 경상도 말로 섭천 소가 웃을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일부 뜻있는 언론인들이 개별적으로 기자협회의 이런 뻔뻔함에 조소를 보내고 있다. 기자협회 YTN 지회도 ‘한국기자협회의 ‘김영란법’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 YTN 기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한국기자협회가 8년째를 맞은 해직기자 문제 해결이나 언론 장악 청문회 등 주요 사안 요구에는 소극 대응하면서, 헌법소원 같은 민감한 판단은 각 지회의 공식적인 의견조차 묻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기자협회가 보여온 걸 보면 내 제안은 물론 이 질문도 그냥 ‘생 까고’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기자협회는 어떤 기자들에게 부끄러운 단체가 됐고, 또 다른 어떤 기자들에게는 완장이 됐다. 이런 기자협회라면 그냥 없는 게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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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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