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게다. 아버지가 가끔 막걸리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랬다. '사오라' 하지 않고 '받아오라' 했다.

그러면 정지(부엌)에서 노란 주전자를 챙겨 큰길 가에 있는 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왔다. 집까지 거리는 약 500미터. 경사진 길을 내려 오면서 우리 집이 보이는 방향으로 꺽이기 직전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막걸리 맛을 본 기억이 있다.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시큰하면서도 쿰쿰한 누룩 냄새가 나는 그 오묘한 맛이 아직도 코끝에 감도는 듯 하다. 어머니가 직접 막걸리를 담가뒀다가 걸러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맛도 술집에서 받아온 그 막걸리와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막걸리.

대학 시절, 우린 가난한 학생이었다. 술이라고 해봤자 학교 앞 할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얇은 정구지 부침개를 시켜놓고 막걸리는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취기가 돌면 젓가락 장단에 맞춰 고래고래 민중가요를 불러댔다. 더 흥이 오르면 술집에서 아예 일어나 해방춤을 추기도 했다.

분식집 말고는 공사장 함바에서도 가끔 마셨다. 캠퍼스 내 잔디밭으로 막걸리를 사 와서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더 이상 막걸리를 마실 일은 많지 않았다. 수년 전 서울 공덕시장에서 지인들을 만나 돼지족발과 장수막걸리를 먹었던 기억이 있고, 가끔 마산에서 아구찜이나 복매운탕을 먹을 때 한 잔씩 먹는 정도다. 그것도 점심 때 반주로...

그런데 요즘 막걸리는 너무 닷 맛과 탄산음료 맛이 많이 느껴지고 특유의 누룩향이 없다. 특히 악덕기업으로 유명해진 부산생탁이 그렇다. 그런데 그놈의 부산생탁이 워낙 많이 팔리다 보니 전국의 막걸리가 부산생탁을 닮아가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부산생탁 하나만 파는 식당에선 아예 막걸리를 시키지 않는다. 차라리 소주를 먹고 말지.

그나마 서울 장수막걸리와 마산 창동막걸리가 좀 나은 듯 하고, 전주에서 먹었던 송명섭 막걸리도 좋았긴 한데, 어릴 때 맛봤던 그 막걸리와는 좀 거리가 있는 맛이다.

그러다 최근 내가 어릴 때 먹어봤던 그것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막걸리를 맛보게 되었다. 얼마 전 사회적 기업 '해딴에'가 운영하는 함안 팸투어 때였다. 마지막 일정은 함안 가야시장 안에 있는 '진이식당'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거기서 바로 그 막걸리를 직접 담가 팔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식당 분위기도 막걸리를 마시기에 딱 걸맞는 곳이었다. 

안주로 시킬 만한 명태전이나 파전 등이 있긴 했지만, 그냥 밥을 시키면 함께 나오는 밑반찬이 워낙 다양하고 맛있는 것들이어서 그걸 안주 삼아 먹어도 된다.

사진에서 보듯 거의 농촌의 집밥 분위기다. 나는 이날 호박잎 쌈이 특히 맛있어 배터지게 먹었다.

막걸리는 이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가서 주전자에 퍼준다.

여름이라 냉면 육수 보관하는 냉장고 같은 곳에 걸러 놨다가 내기 때문에 시원하기도 하다.

누룩향이 살아 있는 시큼털털한 그맛. 바로 그 막걸리였다. 다만 알콜도수는 좀 낮은 듯 했다. 여러 잔을 마셨지만 취기가 돌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함안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생겼다.

함안 가야시장 안 진이식당의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시장통에 있는 식당답게 허름하다. 그러나 막걸리 맛은 좋았고, 음식도 깨끗했다.

일행 중 강원도 양양에서 온 한사 정덕수는 아래와 같이 된장과 나물을 슥슥 비벼 엄청난 양을 먹었다. 아마도 양양에 도착할 때까지 배가 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함안 가야시장 안 진이식당이다. 전화번호와 위치는 아래 지도를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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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470-14 | 진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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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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