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박물관은 그야말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박물관에 관심이 별로 없으시지요? 사실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다수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무척 소중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지역박물관이 빈곤한 세 가지 이유

박물관에 가면 해당 지역 역사와 문화를 나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지역을 돌아보면서 박물관을 찾아가 보면 세 가지 문제에서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문화의 빈곤이라 해야겠지요.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약탈적 행위입니다. 지역에서 발굴된 나름 값어치를 인정받는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은 지역에 그대로 두지 않고 서울로 가져갑니다. 지역에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제대로 보관하기 어렵다고 둘러대곤 합니다. 

이는 핑계일 따름입니다. 지역에 박물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똑바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임무이고 역할일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값나가는 문화재들을 국립중앙박물관 있는 서울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우리나라에 관광하러 오는 외국인들만 만족시킬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서울 그것도 국립중앙박물관에만 가면 한국의 어지간한 보물은 모두 감상할 수 있거든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참 괘씸한 또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지역에 오면 지역의 중심 문화재로 크게 대접받을 만한데도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냥 수장고에 쳐박아 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건을 마련해서 지역으로 돌리려는 노력이 거의 전혀 없는 실정인 것입니다.) 

또하나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약탈입니다. 보기를 들면 이렇습니다. 고성 고자국 가야와 창녕 비자가야의 고분을 일제가 도굴해 그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렸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유물이 빈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유물이 출처를 잃어버리는 곤란도 겪게 되었습니다. 

도굴해 간 인간들은 그게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만 그게 돈으로 얼마나 하느냐가 관심이고 그에 따라 아름다움의 완성도만 그냥 중요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를테면 ‘창녕 출토 유물’이라 하지 못하고 ‘전(傳) 창녕 출토 유물’이라 일컬어집니다. 고향을 잃은 셈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는 해당 지역 자치단체의 무관심 무성의 게으름입니다. 의령을 보기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의령 출신 문화재 가운데에는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있습니다. 중국 어느 나라에서 연가(延嘉)라는 연호를 썼는데 그 7년째 되는 해에 만들었다는 문자 기록이 있는 조그만 불상입니다.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신라 목간=나무에 새긴 편지.

아울러 의령이라면 가야 이후로는 신라 영토였을 텐데, 이 금동불상은 메이드 인 고구려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불상은 어떤 경로를 거쳐 저 멀리 북쪽 고구려에서 남쪽 신라의 변방 의령으로까지 스며들었을까요?

그런데 이 진품은 앞에서 제가 얘기한 대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의령박물관에는 그 모조품이라도 있을까요? 요즘은 제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대여섯 해 전에 찾았을 때 거기에 있는 것은 모조품조차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진품을 복사한 종이가 하나 달랑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참 황당하지요. 종이 또한 고급 용지 이를테면 아트지라든지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복사용지였습니다. 이 또한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의령 출토 연가7년명여래입상 앞뒤.

이처럼 지역 박물관이 제 구실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보자면 함안박물관은 군계일학입니다. 함안박물관 말고도 제 노릇 나름 하는 지역박물관이 양산과 고성에도 있지만 고성박물관은 2012년 양산박물관은 2013년 세워져 2003년 들어선 함안박물관에게는 아우뻘이 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2. 강력하고 풍성했던 함안의 아라가야

함안박물관은 해당 지역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갈무리하며 잘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징과 장점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라가야가 다른 세력과 어디에서 어떻게 다른지에 초점을 맞춘 알찬 기획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라가야의 장점은 강력한 세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특징은 독창성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라가야는 6세기 전반인 529년 신라·백제와 왜를 자력으로 아라가야 영토로 불러모아 고당회의를 열기도 합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록인데요, 함안에는 그 고당 유적이 발굴되어 있기도 합니다. 고구려를 등에 업은 신라와 스스로 힘을 키운 백제 두 나라의 가야 영역 진출을 막기 위해 왜를 활용하는 외교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흔히 가야 역사를 얘기할 때 전반기는 가락국(김해)이 가장 세었다 하고 후반기는 대가야(경북 고령)가 가장 세었다고들 합니다.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벌을 받아 가락국이 크게 쇠퇴한 뒤로 고령 대가야가 강성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라가야는 가야 역사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에서 강력한 세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넘버 투’였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고당회의는 그와 같은 강력함을 안팎으로 보여주는 보기로 종종 꼽힙니다.

3. 강력함을 보여주는 말갑옷 등과 미늘쇠

함안박물관에는 이런 강력함을 보여주는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쇠로 만든 말갑옷과 말머리가리개입니다. 알려진대로 가야는 풍부한 쇠를 바탕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습니다. 말갑옷과 말머리가리개는 철 생산이 많았음은 물론 쇠를 다루는 기술까지 매우 발달했음 또한 보여줍니다. 

1992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갑옷.

말갑옷을 갖춘 말을 타고 있는 개마무사 모형. 그 앞에는 개마무사 모양 토기가 조그맣게 놓여 있습니다.

갑옷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른 말은 요즘 전차와 같은 존재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갑옷과 말머리가리개는 말을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동시에 말이 뛰고 달리는 움직임을 가로막아서도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쇠 가공 기술이 뛰어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무구(武具)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미늘쇠입니다. 미늘쇠는 평평하고 납작한 철판입니다. 아래보다 위가 조금 더 널찍한데 아래쪽 끄트머리는 나무 막대기 따위에 끼울 수 있도록 동그랗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자리를 빙 둘러서는 구멍을 내어 새모양 미늘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장식품이지요. 대단한 지배세력의 지위를 강력하게 드러내 보이는 위세품이라고도 하고 공식 행사에 쓰였던 의전물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다른 가야세력과 신라에서도 나오지만 함안은 그런 미늘쇠가 풍부하게 출토되었기에 남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함안박물관에는 이런 말갑옷과 미늘쇠가 다양하게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함안박물관을 알리는 안내판은 미늘쇠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말이산고분들을 가리키는 표지는 미늘쇠에 달려 있는 새 모양을 디자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강력함이 아라가야의 독창성을 낳았습니다. 물산이 풍요롭지 않으면 강력해지기 어렵습니다. 또 강력하지 않으면 풍요로운 물산이 있다 해도 오래 지키기 어렵습니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찌들리고 허덕거렸다면 다른 것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4.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라가야의 토기

강력하면서 동시에 풍요로웠기에 그리고, 풍요로우면서 동시에 강력했기에 아라가야는 독창성=다양성이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독창성과 다양성은 아라가야 토기에서 잘 나타납니다. 

등잔 일곱 개 모양 토기.

가야 여러 세력 가운데 함안 아라가야만큼 이상한 토기=정해진 모양에서 벗어난 토기=이른바 이형(異形)토기가 많이 출토된 고장도 드물다고 합니다. 토기를 만들 때 그릇이라는 용도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등잔 네 개 모양, 등잔 일곱 개 모양, 개마무사 모양, 뿔 모양, 집 모양. 수레바퀴 모양 등등입니다. 이런 토기들의 생산과 유통이 가능하려면 먼저 만드는 사람의 심신이 자유로워야 할 것이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 또한 재산이 여유로워야 할 것입니다. 

토기에 새겨진 갖가지 무늬.개마무사 모양 토기.

아라가야는 이 둘을 모두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라가야에서 가장 빛나는 독창성은 불꽃무늬입니다. 불꽃무늬가 새겨진 토기는 아라가야 영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기에 불꽃무늬는 바로 ‘메이드 인 함안’을 뜻하게 되었을 만큼 상징성이 강합니다. 

함안박물관에 와서 그토록 많은 토기에 새겨져 있는 불꽃무늬를 바라보노라면 조형미에 자기도 몰래 빨려들어가곤 합니다. 이지러지지 않은 보름달 위에 고깔모자를 얹어놓은 것 같이 단순한데도 어쩌면 그리 하늘로 가볍게 솟아오르는 상승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요! 

여러 가지 불꽃무늬토기들.

아라가야 사람들의 뛰어난 미감에 경탄하지 않을 도리가 저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함안박물관은 건물 전면에 불꽃무늬를 새겼습니다. 박물관 내부 전시 공간에서도 불꽃무늬를 모태로 한 디자인을 곳곳에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함안박물관은 이밖에도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읍지(邑誌)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함주지(咸州誌)>(1587년 한강 정구라는 인물이 함안 고을 수령을 하고 있을 때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역사·문화·지리·자연 등 함안 전반에 대해 기록한 책)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얘기까지 하면 너무 늘어질까봐 여기서 일단 줄일까 합니다. 어쨌거나 함안으로 걸음하신다면 꼭 둘러봐야 할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함안박물관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함안박물관은 뒤쪽이 말이산고분군으로 이어지면서 열려 있어 느낌이 아늑하며, 들머리는 광장이라고나 할 만큼 널찍하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그 놓인 입지만으로도 거칠 것 없는 여유로움까지 안겨주는 명품인 것입니다. 

함안박물관 바로 앞에는 700년 전 고려 시절 씨앗에서 2010년 솟아난 아라홍련 시배지도 있고 조금 떨어진 함주공원에는 함안 습지에서 절로 나서 자라던 법수옥수홍련을 주축 삼아 조성한 함안연꽃테마파크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썩 좋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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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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