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황점순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마산 진전면 곡안리로 향했다. 출발할 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좀 불안했다. 그래도 여느때처럼 노인정에 있으려니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집은 비어 있었고 노인정에도 없었다. 알고 보니 몇 달 전 요양원(진동애양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다시 택시를 타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처음엔 못알아보던 할머니가 "김 기자입니다. 김 기자!"라고 하자 마치 아들처럼 반겨주신다. 약소하나마 용돈을 드리니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말씀 도중 기억이 약간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헤어질 땐 1층까지 따라와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황점순 할머니는 1950년 자신의 나이 스물네 살 때 남편을 보도연맹원 학살로 잃고, 미군의 곡안리 재실 민간인학살로 하나뿐인 아들(당시 1세)과 시조부, 시어머니를 잃었다. 자신도 다리와 엉덩이 팔, 목에 총상과 파편을 맞고 간신히 살아나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혼자 살아왔다.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요양원 비용은 무료이지만, 아무도 찾아올 가족이 없는 무연고 노인이다. 할머니와 나는 1999년 10월 곡안리 민간인학살과 보도연맹원 학살을 취재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으니 이제 17년이 된다. 그때 할머니 나이는 73세였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90세가 되었다.

곡안리 학살과 남편 이용순에 대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할머니는 이웃 유족들과 함께 남편에 대한 재심 청구를 했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물론 소장을 낼 때 문서작성이나 서류 준비 등을 나와 함께 했었다. 그러나 재판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10월 3일 그렇게 할머니에게 다녀온 뒷날, 다시 할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거듭 고맙다고 하시며 마지막엔 "잘 살아라"고 하신다. 마치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하는 듯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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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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