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영화 찍는다면 재벌이나 4대강 사업 문제 다룰 것"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을 본 후 잠시 자문해봤다. '나라면 저걸 취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지역신문 기자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내 선입견 속 국정원의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이 증거로 제출한 중국 화룡(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는 출입경 기록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는 최승호 감독의 패기에 나는 더 기가 죽었다. 설마 국가기관이 중국 외교문서까지 조작한다는 것은 내 상상력을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

내가 이런 생각을 최 감독에게 털어놓자 그는 "김 국장도 그 당시 제 입장이었다면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었을 거예요"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뷰 중인 최승호 PD @사진 : 단디뉴스 권영란

"왜냐면 저희가 유우성 씨 사건을 쭈~욱 취재를 해왔잖아요. 그래서 1심에서 이미 무죄로 나왔고, 출입경 기록을 조작한 것은 2심에서 증거로 제출되었거든요. 1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우리가 중국에 가서 취재해봤더니 검찰의 기소내용 모두를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출입경 기록에서 유우성 씨가 북한에 갔다는 그 기간에 중국 어디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우리가 다 알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 기록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죠."

그의 설명을 듣고 다소 위안은 되었지만, 어쨌든 <자백>은 정말 굉장한 영화다. 한국에서 그동안 수많은 간첩 조작사건이 있었지만 모두 수십 년이 지난 뒤 법원 재심을 통해 그 진실이 드러났을 뿐, 조작이 진행 중인 당대에 저널리스트가 실체를 밝혀내고 그 과정을 담아낸 영화는 <자백>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조 파업을 이유로 MBC에서 해고된 최승호 PD

그래서 최승호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여러 자료를 검색해봤지만 최승호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1961년 12월 16일 강원도 인제군 출신. 경북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대학 연극반 경험이 있고 1986년 MBC 입사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언론노조 MBC 본부장을 했고, 'PD수첩' 간판 PD로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조작사건과 검사와 스폰서 등 많은 특종을 터뜨리고, 2012년 6월 20일 노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으며, 이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 PD이자 앵커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진주에서 최승호 감독의 강연이 있는 날 미리 가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중인 최승호 PD

Q. MBC에 있을 때와 지금 뉴스타파에서 일하는 환경을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MBC에 있을 때가 편하긴 편했죠. 그땐 말로 (지시를) 하면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웃음) 지금은 내가 손발을 다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고. 재미도, MBC에 있을 때가 잘 될 때는 재미가 있었죠. 그때는 방송 하나 했다 하면 팍팍 바뀌는 맛도 있고 그랬으니까."

Q. 그런데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또 연극반 활동도 오래 했는데, 어떻게 PD가 될 생각을 했나요?

"그 당시에 학생들이 다 우울한 삶이었잖아요. 졸업하고 취직을 하긴 해야 하는데, 대기업이나 이런 데 들어가면 정말 꼼짝 마라 굴복하고 나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조직논리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Q. 공무원은 더더욱 그랬을 거고.

"그렇죠.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언론사 기자 시험 치면 기자들은 좀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죠. 더군다나 성적도 안 본다니까. 제 성적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신문 기자 시험을 보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MBC에서 PD 모집이 먼저 있기에 그렇게 된 거죠."

Q. 그렇게 하여 PD가 된 걸 후회하진 않고 만족하시나요?

"PD가 된 걸 매우 행복하게 생각하죠."

Q.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직업이란 점에서?

"그런 것도 있고, 또 제가 연극을 했던 경험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연극이라는 게 스토리텔링하는 거니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연극을 하면서 갈고 닦았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 단디뉴스 권영란

보도 프로그램 <뉴스타파>와 영화 <자백>

Q. 지금까진 보도 프로그램을 하다가 <자백>을 통해 영화라는 장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두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일반 보도 프로그램은 팩트가 중요하죠. 어떤 팩트를 밝혀내느냐가 관건인데, 영화는 어떻게 관객의 정서에 다가가느냐가 진짜 중요하더군요. 그래서 접근 방식도 달라야죠."

Q. 보도 프로그램보다는 좀 더 스토리텔링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는?

"그럼요."

Q. 둘 사이에 만족감의 차이는 어떤가요?

"뭐가 크다 작다 이런 것보다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옛날에 황우석 특종을 할 때나 검사와 스폰서를 방송했을 때, 그다음 날 세상이 달라져 있는 모습을 볼 때 굉장히 큰 뭔가가 있었죠. 영화는 그런 정도까진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깊은 느낌을 갖게 되는 관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영화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하는 게 좀 더 깊은 맛이랄까?"

Q. 영화는 영화대로 맛이 있고?

"그렇죠."

Q. 영화 <자백>은 간첩 조작사건을 갖고 만드셨는데, 한국사회의 문제 중 간첩 조작 말고도 많을 텐데, 예를 들어 재벌 문제라든지 그런 굵직한 주제로 계속 연작 영화로 만들어 갈 생각은 없나요?

"그런 걸 제가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해보고 싶어요."

Q. <자백>처럼 자연스럽게 뉴스타파 보도와 연계해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간첩 조작 사건도 어느 정도 취재가 된 후에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확신이 왔던 거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죠. 그런데 영화로 한 번 성공했기 때문에(웃음) 이제는 뭐 내가 영화 한다고 하면 아무도 못 말릴 걸요?(크게 웃음) 그러면 처음부터 이건 영화로 하자 그럴 수도 있겠죠."

Q. 만일 차기작을 준비하신다면 어떤 분야를 해보고 싶은가요?

"한다면 재벌 문제는 굉장히 매력적인 주제죠. 영화로 그 내밀한 재벌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거냐 하는 난점이 사실 있어요. 접근이 참 어렵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우니까 또 접근을 하면 큰 감흥을 줄 매력적인 주제죠. 그게 아니라면 4대강 사업 같은 경우도 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못하고 있는 부분이죠. 4대강 사업은 지금 뭐, 제가 MBC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만들고 결국 쫓겨났는데, 그 이후로 지금 강이 완전히 엉망이 됐잖아요."

사진 : 서성룡

황우석 사태와 PD수첩

Q. 저 같으면 간첩 조작이나 중국 외교문서 조작을 취재할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는 얘기를 아까 드렸는데, 황우석 사건의 경우엔 최 PD도 좀 망설이지 않았나요? 워낙 엄청난 일이라….

"그 당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보자가 확실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안 뛰어들었을 거예요. 제보자가 자기 신원을 밝혔는데, 황우석 줄기세포 팀에 팀장이었거든요. 전직 팀장이죠. 황 교수의 연구행태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왔던 거죠. 그런데 자기가 나온 뒤에 줄기세포 열한 개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나오니까 이 양반이 놀란 거예요. 그건 불가능한 건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는 거죠. 물론 그분도 증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판단이지만, 어쨌든 취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니면 방송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으로서 취재는 해야 한다, 반드시 검증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거죠."

Q. 그 취재 보도 과정을 갖고 2014년 <제보자>(감독 임순례, 주연 박해일 이경영 유연석)라는 영화도 나왔잖아요. 영화에서 실제와 다른 부분은 없었나요?

"설정은 사실과 다른 면이 꽤 있어요. 마지막에 해결되는 과정도 실제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거기 보면 우리 한학수 PD로 분한 박해일 씨가 MBC 사장에게 방송 꼭 내보내주십시오, 하면서 방송강령 이야기하고 그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사장이 그래 해봐! 하면서 되는 것처럼 나오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죠. 당시 젊은 과학자들이 브릭이라는 과학 사이트에 PD수첩이 이런 걸 취재했다는데, 우리가 논문을 살펴보니 실제로 이런 문제가 있더라며 증거를 올리고 하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들 덕분에 PD수첩이 맞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고, 그러고 난 뒤에야 비로소 MBC가 방송을 허락한 거죠. 그러니까 얹혀 간 거죠. 그 전에는 PD수첩을 영구히 없애버리겠다는 게 당시 MBC 사장의 입장이었습니다."

Q. 그러면 그 영화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보는 건가요?

"아뇨. 우리 임순례 감독님의 뜻을 이해해요. 저에게 그 말씀을 하셨거든요. 언론이 죽은 이 시대에 그래도 언론의 모델이 되는 모습을 살려보고 싶었다는 게 감독님의 뜻이었어요. 그래서 그 뜻을 이해하죠."

Q. 참, 가족이 어떻게 되나요?

"애가 셋이고 와이프 있고 그렇죠."

Q.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가족관계는 전혀 안 나오더군요.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웃음) 음. 가족이나 이런 개인적인 것은 공개를 않으려 합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Q. 그럴 수 있겠네요. 부인이 작가로 알려졌던데, 방송작가?

"네."

Q. 거기까지만?

"네. 거기까지만.(웃음)"

인터뷰는 여기까지였다. 인터뷰에는 진주 <단디뉴스> 권영란 대표도 함께했다. 그는 인터뷰 과정을 영상으로 요약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링크 : https://youtu.be/CYLMmfgSacM


대한민국의 민낯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곧장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옮겨 진주시민 100여 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특강 중 청중 질문과 답변 몇 가지를 옮긴다.

Q. 취재하러 갔을 때 당사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외면할 때 화가 치밀어오를 텐데 어떻게 참고 순화된 말로 콘트롤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백>에도 나오는 김기춘 씨나 원세훈 이런 분을 만날 때 저도 화가 나죠. 원세훈 씨 만나서 실랑이하는 과정에선 제가 화도 내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가급적이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많이 쓰죠. 오랫동안 취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아요.

20대에 PD를 시작해서 지금 50대 후반이 되었는데, 옛날에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PD수첩 방송을 하고 나면 선배들이 '니가 형사냐, 니가 무슨 헌병이야?'(청중 웃음) 제가 예전 군대에서 주특기가 헌병이었거든요.(웃음) '왜 방송에서 고함을 지르고 난리야' 이런 야단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런 게 안 좋더라고요. 결국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는 거지, 제가 거기서 제 느낌을 보여주고 화가 난다고 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하는 건 결코 좋지 않더라고요. 방해가 되죠. 오히려. 그래서 되도록 저보다는 답변하는 사람이 잘 부각되도록 해야 하죠. 제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건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취재를 합니다.

검사와 스폰서 할 때도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저한테 '니가 피디야? 니가 뭔데' 이랬잖아요. 그 얘기 들으면서 '아, 이 새끼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짜증 나죠. 그래도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사실 그 장면 때문에 박기준 검사장이 날라간 거죠. 그걸 본 시청자들이 완전 열 받은 거죠. 다음날 바로 검찰에서 직위 해제했죠. 검찰이 하고 싶어서 그랬겠어요? 국민이 무서워서 했지."

사진 : 서성룡

Q. 많은 언론인들이 해직되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채용한 시용기자들은, 나중에 세상이 바뀌고 민주주의가 좀 실현되었을 때 그런 분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재철 사장이 시용기자를 많이 뽑았고, 안광한 사장이 경력기자도 많이 뽑았죠. 참 그게 고민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주 언론인으로서 기본 상식을 위배하고 아주 큰 문제를 일으켜서 도저히 언론인으로서 용인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면 새로운 방송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Q. 지금 해고무효 소송인 줄로 아는데 만일 최종적으로 승소하게 된다면 <뉴스타파>를 떠나 MBC로 돌아갈 건지요?

"지금 2심까지는 해고무효 판정이 났고 대법원에 가 있는 상태인데요. 아마 정권이 바뀌고 난 뒤에 판결이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법원에서도 해고무효 판결이 나면 당연히 원소속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건가요?(청중 웃음) 뉴스타파에는 너무나 훌륭한 기자와 PD들이 있고 심층 탐사보도에 대한 실력과 기능이 있으므로 제가 없어도 잘할 거라고 봅니다. 이런 말 하니 좀 이상하네요. 왜 이런 걸 물어봐요?(청중 웃음)"

※월간 <피플파워>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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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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