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역 광장에는 두 개의 비(碑)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하나는 '가고파 노산 이은상 시비'이고, 또 하나는 이은상의 독재 부역 행적을 고발하는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입니다.


역 대합실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정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이은상을 추앙하는 무리의 입장에서 보면 괜히 '시비'를 세웠다가 감추고 싶은 이은상의 부끄러운 과거를 널리 알리는 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사실 문인의 친일 또는 독재 부역에 대한 논란은 해묵은 일일뿐더러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정으로도 진실을 덮어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이 인간 의식의 맨 밑바닥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임을 염두에 둔다면, 진실 가리기는 문학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고, 그 작가들을 영원히 허위 속에 가둬놓는 일이 된다."

 

마산역광장 이은상 시비(왼쪽) 옆에 세워진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 @경남도민일보 사진


작가의 친일이나 독재 부역행위는 그것을 드러내놓고 작품과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아울러 황현산 선생은 그런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베트남의 예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그는 과거 한국이 미국을 거들어 베트남전쟁에 끼어들었던 일을 사과하기 위해 한국작가회의가 소속 작가들과 함께 베트남 작가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트남 작가들은 한국 작가들의 방문을 고마워하면서도 크게 감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기들이 승리한 전쟁인데 새삼스럽게 사과는 무슨 사과냐'는 것이었답니다. 승자의 아량과 자신감이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을 맺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승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친일의 상처에서 해방되려면 우리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이끌어야 한다. 분단된 민족의 우애를 되찾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더욱 높게 받들어져, 사회의 민주적 토대가 굳건해지면, 어떤 나쁜 기억도 우리를 뒤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앞 세대 작가들의 의미 있는 작품들을 우리가 떳떳하게 누리는 일은 그들을 미화하고 그 과오를 숨기는 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벌써 튼튼하다면 과거의 상처가 우리를 어찌 얽매겠는가."

 

그렇습니다. 광복 7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일과 독재부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정의가 바로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씨가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깡그리 무시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던 것도 그 스스로 불의한 권력이었기 때문이고, 그 불의한 권력을 뽑아준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다행히 우리는 불의에 패배해온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파면시켰고, 새로운 권력 선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이 끝은 아닙니다. 새 정권이 촛불집회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촛불이 명령한 과제를 반드시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 깨어 있어야 하고 조직되어야 합니다. 저희도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겠습니다.

 

5월에는 저희를 비롯한 전국의 지역출판사들이 제주도에서 모여 '제1회 지역도서전'이 열리는 달입니다. 25일부터 29일까지 제주 한라도서관과 제주도내 북카페 등에서 열리는 지역도서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블랙리스트' 없는 사회에서 풍성한 지역콘텐츠가 지역문화를 되살리고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

※월간 피플파워 5월호에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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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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