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한겨레> 1면을 보는데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민주주의운동을 진정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해온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민주주의운동을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내는 인간들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의 문장이었다


1. 해결되지 않은 비극의 역사와 동시대 


<문 대통령 5·18 기념사 요약>이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 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선 것이 비단 문재인 대통령만은 아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좀더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는 이제부터 대통령과 대한민국 일반 유권자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간 사람들 가운데는 나도 있었다. 그 자체로 민주화운동’이 되었던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나도 순간순간 두려움에 떨며떨며 함께했다


나는 1982년 가슴과 얼굴이 무참히 으깨진 광주 사진들을 보았다. 타고난 새가슴인 나조차도 그 뒤로는 동료 여럿과 함께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내게는 20대 30대 청년이 자신과 마주한 동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2. 촛불 광장에서 확인한 오월 광주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지난 겨울’ ‘촛불오월 광주의 부활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 번도 빠질 수 없었던 촛불 광장에서 나는 1980년과 그 이후 오월 광주의 자장을 못 벗어나고 민주주의운동을 벌였던 수많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이들은 혼자가 아니었고 대부분 젊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이들은 집안으로 치면 아들딸과 함께 왔고 일터나 사회로 치면 동료나 후배들과 함께 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오월 광주가 만들어낸 들불들이 자기 삶터와 일터에서 원래 뜻을 잃지 않으면서 제대로 살아낸 표지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월 광주가 없었다면, 그 뒤로 오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벌였던 전국 각지 수많은 이들이 없었다면 지난 겨울 촛불은 방방곡곡에서 1700만으로 타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3.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과거완료형일 수는 없겠지만 


자유한국당 정우택은 5.18기념식에서조차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입을 닫고 있었다. 한겨레 사진.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 그이들의 아득한 죽음에 어찌할 바 몰랐던 스무 살 시절이 떠올랐다. 그이들의 슬픈 죽음을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구속 사유가 되었던 전두환 시절이 떠올랐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물론 서러운 죽음과 고난은 과거완료형이 아닐 것이다. ‘서러운 죽음과 고난은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속으로 괜찮다, 다 괜찮다는 마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가 이런 서러운 죽음과 고난을 완전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강요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순간 생겨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서러운 죽음과 고난을 무더기로 강요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은밀해졌다. 게다가 이들 정권은 영문도 모르는’ 죽음과 고난까지 얼마나 강요하고 을러댔던가


4.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는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면 이기지 못할 세력이 없고 헤칠 수 없는 파도도 없고 넘을 수 없는 산악도 없다. 국민이 그런 세력이고 파도이고 산악이기 때문이다.


“5·18정신을 국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어헌법 전문에 담겠다고도 했다대통령이 내가 공약했으니까’ ‘나의 의지로 그리하겠다고 하면 옳든 그르든 저항이 일기 마련이다. 국민의 뜻에 맡기면 한밤중에도 환하고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푸근하다. 사람의 눈빛과 사람의 체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보고 울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루종일 내내 울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감정이 메말라 있는 나는 속으로 감정 과잉 아냐?’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사람 냄새가 나는 대통령사람 냄새가 나는 정부정말 오랜만이다


한겨레 사진.


나는 오늘 아침 <한겨레> 2면에서 한 번 더 울었다. <한겨레>는 오늘 스트레이트 기사인데도 따뜻하게’ ‘절절하게’ ‘떨리는등등 형용사를 많이 썼다. 지면을 촉촉하게 적시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형용사를 빼고 팩트만으로도 이미 지면은 젖어 있었다


<김소형(37)씨는 이날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김씨 아버지 김재평씨는 1980518일 태어난 딸을 보러 전남 완도에서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5·18은 제가 이 세상에 왔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제 아버지를 빼앗긴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김씨는 이어 한 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아이가 이제 당신보다 더 커버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 사랑합니다. 아버지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편지 낭독을 마치고 들어가는 김씨를 따라가 안아주며 위로했다.> 


소형씨 편지에서는 그이의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 상실감과 박탈감과 죄책감이 낱낱이 느껴진다. 대통령의 행동에서는 소형씨 그런 심정에 대한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절절한 공감과 공감과 공감이 묻어난다


5. 광주는 광주만의 광주가 아니라고 말해도 되는 대통령 


다시 1면 머리기사로 가서 본문을 보니 이런 대통령 얘기까지 실려 있다. “광주 시민들께도 부탁드린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달라.” 


광주는 광주만의 광주가 아니다. 1980년 오월 광주 직후에 일어난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도 광주다. 1984년 민주정의당당사점거농성사건도 광주고 1985년 서울미국문화원점거농성사건도 광주다.(이 둘에 나도 조금은 가담이 되어 있기에 특별하게 기억한다.) 


이를 비롯해 해마다 5월이면 5월을 달아오르게 하고 미치게 했던 그리고 5월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던 갖은 몸부림이 다 광주다. 전두환 시절과 그 이후 시절 감방을 차고 넘치게 만들었던 이름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쳤던 숱한 투쟁과 조직과 선전이 모두 광주다.


이처럼 광주 아닌 것들은 모두 광주에 빚졌지만, 광주 아닌 것들의 달아오른 미친 몸부림이 없었다면 광주는 광주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하지만 아무나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와 함께했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우리는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얻었다. 이런 발언을 해도 되는 대통령을 얻었다. 이명박·박근혜 따위는 이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할뿐더러 설령 이런 발언을 하더라도 그것은 광주와 오월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지고 말았을 것이다.

 

한겨레 사진.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5·18유공자 이세영(57·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6. 문재인이 실패하면 그것은 유권자의 실패다 


이 모두는 많은 이들과 더불어 민주주의운동을 함께했고, 민주주의운동을 함께한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밖에 다른 많은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안을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덕분이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5·18 기념식을 보지 못한 나는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서 대한민국 일반 유권자 대다수와 주파수가 맞는 대통령을 보았다. 물론 이런 대통령조차도 앞으로 펼쳐질 5년이 늘 꽃길만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 쉽사리 실패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그것은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다수 일반 유권자의 실패다.(가문 날 논바닥 같이 감정이 메말랐고 머리카락 홈을 파듯 매사 따지고 비판하는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쓰고 나서 나도 놀랐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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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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