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에는 나들이할 데가 많다. 전통 정원의 으뜸으로 이름 높은 소쇄원, 담양 죽물(竹物)에 착안하여 새로 꾸민 죽녹원, 가로수도 오래 묵으면 톡톡히 한 몫 한다는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 등등 그럴 듯한 데가 곳곳에 그득하다.

이런 가운데 명옥헌에서 삼지내마을을 거쳐 관방제림으로 이어지는 담양 나들이길은 당일 다녀와도 괜찮고 하루 묵는다 해도 좋은 코스다.

담양 하면 소쇄원을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소쇄원 말고도 멋진 전통 정원과 정자가 많은 데가 담양이다. 오히려 소쇄원은 너무 알려져 손을 많이 타고 저잣거리처럼 북적이는 바람에 한적함과 아늑함이 가셔버렸다.

명옥헌 트인 마루

하지만 풍경·건물은 물론 분위기·인기척까지 옛날 그대로인 명옥헌은 사람 사는 마을 너머에 있다들머리 주차장에서 내려 아담한 저수지를 끼고 마을을 가로질러 명옥헌 가는 길은 길지는 않지만 좀은 따분하다

무미건조한 길 끝에 도대체 무엇이 있으려나 싶은데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보석처럼 숨은 명옥헌을 마주하는 순간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진다

먼저 배롱나무 숲이 일품이다. 작은 연못을 병풍처럼 둘러싼 배롱나무는 지금은 신록으로 무성하지만 7월부터 피고 지고를 시작해 늦여름까지 펼쳐질 붉은 꽃들의 향연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명옥헌의 포인트는 사방으로 툭 트인 마루다. 자연을 벗 삼아 자리잡은 명옥헌의 넉넉한 인심이 마루를 통해 전해진다. 손님처럼 조신하게 굴면 재미가 없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앉아 주인 행세를 해보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자락을 품고 내려다보는 세상은 서두름 없이 여유롭다. 오른편 명옥헌 위로 하나 더 있는 연못은 물줄기 소리로 이어진다. 둘 모두 가운데에는 석가산이 동그마니 있고 둘러싼 연못은 대체로 네모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반듯하다는 동양 우주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표현이겠지.

삼지내마을 돌담장

돌담장으로 유명한 창평삼지내마을은 명옥헌에서 자동차로 10분 안쪽 거리다. 마을 돌담장은 길이를 모두 더하면 3600m를 웃돈다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다

마을 들머리 성당.

문패에다 개조심이라 적었다.

같은 마을이지만 낮은 담장이 있고 높은 담장이 있다. 이런 높낮이는 많이 가졌던 집과 적게 가졌던 집의 차이일 수 있겠다. 군데군데 70년대 또는 80년대 표정을 한 콘크리트 담장도 나타난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마을을 십자(十字)로 가로 세로 지르는 메인스트리트는 옛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분위기를 제대로 누리려면 골목골목 발품을 팔아야 한다. 돌아 나오는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들어가면 담쟁이덩굴 우거지고 여러 과일나무들 고개 뻗은 그윽함을 누릴 수 있다. 같은 돌담장이라도 골목에 있을수록 표정이 더 다양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고재환 옛집이라든지 몇몇 건물은 몇 년 전과는 달리 대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다. 안에 들어가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허물어져가는 흙담이나 바람벽 틈새로 한 때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쇠락의 쓸쓸함을 훔쳐본다. 사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던 옛집은 사람과의 단절로 쇠락의 속도를 더욱 재촉하고 있는 듯하다.

삼지내마을에는 유명한 엿집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강수지와 김국진이 마주앉아 엿을 만들던 그 집이다. 일부러 찾아가 1만원 어치 쌀엿을 샀다. 엿가락을 입에 넣으니 과연 그 맛이 특별하다. 가볍지 않은 단맛이 입 안 가득 감겨들고 끈적거림은 그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엿을 우물거리며 골목길을 돌아 길 끝에 이르니 쌈박하게 차린 돌담카페가 보인다. 잘 지은 기와집이다. 무심히 보면 잔뜩 멋을 부리기만 한 카페 같지만 시선을 고려한 자리 배치가 빼어나 어디 앉아도 편안하다

빙 둘러서 여럿이 어울리도록 방처럼 만든 공간도 있고, 무장해제하고 쉴 수 있는 공간, 바깥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다. 여행길에 차 한 잔으로 호사를 부릴 수 있는 아주 근사한 커피집이다.

삼지내마을 창평시장

창평삼지내마을 바로 옆에 창평전통시장이 있다. 5일과 10일에 장이 서는 창평전통시장은 별로 크지도 않고 이름난 명물도 없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장터가 고만고만하다. 먹고 사는 일이 어느 지역이든 특별할 수 없는 때문이리라

그래도 시골 장터의 멋은 뭐니뭐니해도 촌할매들이 손수 기른 곡물과 채소를 갈무리해 들고 나와 펼쳐놓은 좌판이다. 이제는 시골장터도 세계화가 되었다지만 그 속에도 진짜는 숨어 있다.

장터를 찾은 날은 장날이 아니라 썰렁했다. 시장 한 구석에 검게 그을려 주름이 한층 깊어보이는 할매 한 분이 좌판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에서 깬 할매는 이른 시간임에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담았다

보자기에 싸인 물건은 말린 고구마 줄기와 꽈리고추다. 삶은 죽순도 있다. 고구마 줄기 두 봉지와 꽈리고추 한 무더기를 13000원에 샀다. 술 한 잔 값도 안 될 돈이지만 할매한테는 뿌듯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시골 장터에서는 그런 마음도 불쑥 생겨난다.

창평시장에서 은근히 이름난 것이 돼지국밥이다. 골목마다 자리잡은 국밥집은 장날이 아니어도 북적인다.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관방제림으로 발길을 옮겼다

관방제림 우거진 그늘

관방제림은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이 끝나는 지점 국도 24호선 학동교차로 건너편에서 죽녹원에 이르기까지 영산강 물줄기 2km 둑길 마을숲이다. 17세기 담양부사 성아무개가 홍수를 막으려고 처음 조성했다. 자기가 심은 나무가 훗날 담양을 먹여살릴 거라는 생각은 했을 리 만무하지만.

관방제림 숲은 규모나 종류 면에서 압도적이다. 푸조나무·느티나무·서어나무·음나무 등등이 아름드리 줄지어 서 있다. 어디서나 넉넉하게 내주는 나무그늘은 안고 온 세월만큼 무직하다

적당한 거리마다 놓여진 평상이나 정자는 나들이객의 발길을 묶어둔다. 제방과 아래 둔치에는 일행들이 함께 타는 자전거들의 한가롭게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관방제림만큼 유명한 것이 국수거리다. 하천을 따라 늘어진 나무그늘에 앉아 4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에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바다와 계곡이 아닌 색다른 여름 여행을 꿈꾼다면 담양이 딱이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그늘과 예스러운 운치와 인간다운 여유가 사람들의 찾는 발길을 반갑게 맞이한다.

 

명옥헌 맛집

산내음촌닭 061-383-8861, 010-2702-8861

창평전통시장 맛집

창평시장원조국밥(옛날그집원조국밥) 061-383-4424

창평삼지내마을 맛집

슬로시티약초밥상 061-383-6312, 010-2716-6312

갑을원(민박도 겸함) 1577-5201, 061-382-3669

고태석 쌀엿 061-382-8115

돌담카페 010-7211-9450(~:11:00~21:00, :11:00~19:00, :19:00~22:00)

창평삼지내마을 숙박

한옥에서 061-382-3832

달구지민박 061-382-8115

친구와돌담길(민박 겸 게스트하우스) 010-2239-7184

관방제림 국수거리 맛집

진우네 집국수 061-381-5344

※ <광흥생각> 여름호(제2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부산에 있는 중견 건설업체 광흥건설이 펴내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건축매거진'으로 계간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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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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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화호텔앤드리조트 2017.08.17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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