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플레이오프로 야구열기가 뜨겁다. NC팬과 롯데팬은 아주 신이 났다. 지난 11일 마산야구장 주변 거리는 NC와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들로 여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응원복장을 차려입은 많은 사람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은 한 명이 있었다. ‘등번호 11’ ‘최동원이라 새겨진 롯데 유니폼을 입은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또래 아줌마였다, 반갑다! 딱 내 마음이었다. 어느새 나는 최동원이 활약하던 그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반바지에 난닝구 차림으로 구덕야구장 담치기를 하다 철망에 걸려 빤쓰까지 찢어진 기억, 경비아저씨한테 걸려 두 손 들고 꿇어앉아 벌을 서기도 했었지


가난한 시절이라 공짜 입장이 가능한 7회까지 야구장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 적도 많았다. 그 때 안에서 들리는 타구소리는 또 어찌나 경쾌했던지


2011년 최동원 11번 영구결번식.


최동원 손에서 야구공은 마술을 부렸다. 미트로 빨려드는 속도가 순간이동 수준이었다. 투구를 마친 뒤 몸통을 일으키며 두어 걸음 뒷걸음질하는 모습도 압권이었지


프로야구 개막 이후 최동원은 그 샤프하고 도도한 이미지로 별명이 멍게였던 선동렬과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팬들도 지금 롯데 오리지날팬이냐 순혈 NC팬이냐처럼 서로 경쟁상대로 여겼었다. 그 파마머리 아줌마는 최동원 팬이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최동원은 가고 없다. 최동원이 아쉽기도 하고 롯데가 야속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야구는 다만 스포츠가 아니라 한 시절을 공유하고 엮어주는 우리들의 축제였던 것이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나서.


마산야구장이 새로 건립하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덕분에 야구장 주변 활기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경기가 있는 날은 오거리에서부터 북적인다. 길이 막히는 불편이 있어도 야구팬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살기 팍팍한 동시대인들에게 이만한 호사가 또 있을까. 마음껏 소리치고 마음껏 즐기자!! 훗날 등번호 47번 나성범 또는 등번호 2번 박민우 유니폼을 입은 중년 아줌마가 20대 딸과 함께 야구장을 찾을지도 모른다. 야구장에 가고 싶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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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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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6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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