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출판사 클, 1만 5000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1쇄가 나온 게 2014년 3월이었는데, 2017년 5월 3쇄가 나왔으니 그리 많이 팔린 책은 아닌 것 같다.


박래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자 1988년 6월 분신한 고 박래전 열사의 형으로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가 쓴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이 책 외에도 《아!대추리:대추리 주민들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투쟁기록》, 《새로고침》 등의 저서가 있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진주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지난 10월 24일 박래군 초청강연회를 열었고, 마침 진주문고가 강연회장 앞에서 이 책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빠르고 부지런한 진주문고!)


두 시간에 걸친 그의 강연을 열심히 들었고, 질문도 했다. 내 질문과 그의 답변은 아래 영상으로 첨부한다.



강의를 듣고 나니 좀 더 그의 삶과 생각을 알고 싶었다. 다음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펼쳤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라는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총 4부로 구성된 내용 중 1부는 인권운동을 시작하기 전 성장 과정과 대학 시절의 학생운동, 그리고 감옥살이 등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2부는 인권운동을 해온 과정과 겪었던 일들, 3부는 용산참사 이야기, 4부는 현재의 고민과 미래의 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나는 1부를 가슴 아프게, 그러면서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어린 시절 뻥튀기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이야기부터 대학 시절 학생운동, 강제징집(이른바 녹화사업), 위장취업과 노동운동, 그리고 감옥생활과 옥중투쟁, 동생 박래전의 분신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좋았던 것은 이런 이야기를 자랑거리나 무용담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 깨달음의 계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강제징집으로 군복무 시절 85년 12대 총선 때 시키는대로 여당을 찍었던 굴욕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가 아닌 다른 강제징집자 1명은 소신껏 야당을 찍었다가 연병장 뺑뺑이를 돌고 다른 부대로 전출당한다.


"그는 양심대로 야당을 찍은 것이었고, 나는 소신을 꺾고 시키는대로 여당을 찍었다. 나의 첫 투표 기억은 굴욕이었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일을 그르쳤던 순간, "내가 경험 있는 노동운동가라면 그때 승리감에 젖어 술에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움은 사실 그때부터였으니까. 초짜 노동운동가였던 나는 그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유가협 활동부터 시작해 인권운동사랑방을 거쳐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삶을 서술한 부분도 그랬다. 운동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성찰과 새로운 깨달음이 그를 발전시켜왔다. 그런 의미에서 책 속 주인공인 그는 '입체적 인물'이다.


평택 대추리 투쟁과 쌍용자동차, 용산참사 등 사건도 그동안 언론보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이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인권운동 현장을 지킬 생각이 없다고 책에서 밝힌다.


"예전에는 죽을 때까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짧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장강의 앞물은 도도히 흘러오는 뒷물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변화하고,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똥차'가 되어, 운동의 경험만 파먹고 사는 권위적인 추한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292쪽)


그는 스스로 말한다. "나는 생각도 낡았고, 운동방식도 낡았다. 감수성도 감각도 이론도 활동경험도 모두 뒤떨어진 것이리라. 참신한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새로운 양식의 운동문화를 생산하기에는 너무 낡은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의 이러한 말은 철저한 자기성찰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다. 그래서 그는 "나이 60에는 정말 마운드에서 내려서고 싶다"면서 "인생 3막은 딱 10년 만 잡았다. 그 시간동안 인권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맘껏 소설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81학번이니까 60이 되려면 약 5년쯤 남았나? 그가 쓴 소설을 읽고 싶다. 나도 후배들에게 '똥차'가 되지 않고 얼른 비켜줘야 할 텐데, 내 인생 3막은 뭘로 해볼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주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