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의 표지 이야기로 오른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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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표지

주간 잡지 <시사인>이 3월 1일치 24호에서 386세대를 표지 이야기로 다뤘더군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이른바 ‘386’들이 예전하고 그대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세 꼭지 가운데 40쪽 좌담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제목은 “반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러설 때는 아니다”입니다.


그런데 ‘반성’은 “엘리트주의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 한 번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테면 “우리 세대는 편 가르기 식 사고를 했다.”처럼, 이른바 ‘반성 모드’로 볼 말이 없지는 않지만, 곁가지 정도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밖에 인상적인 부분으로는 “(386세대인) 지금 40대에게 운동은 골프다. 영어 몰입 교육을 낳은 기러기 아빠도 대부분 386이다. 강남 사교육을 일으킨 장본인도 386이다.”였고 나머지에서는 반성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성은 적고 자랑만 많은 386


자랑이 많았습니다. 저는 조금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한 번도 후퇴나 좌절을 안 해 봤고, 심지어 군부정권까지 꺾어냈으며, 새로운 정권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한 동력을 가진 세대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 노동(조합)운동이나 진보정당운동을 주로 해온 이들에게는, 한 번도 후퇴나 좌절을 안 해 봤다는, 이들의 얘기가 낯이 섭니다. 이들은 민주당 따위 보수 야당 관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항쟁도, 꾸미는 말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국민 전체의 승리니 운운하지만, 사실 알갱이를 따져보면 보수 야당의 승리일 뿐입니다.


이어서 “민주화를 이끌면서 80년대 학번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됐다. 그 세력이 정치 세력화해서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 권위주의를 다 깼다. 그러면서 세계화에 적응할 기회도 얻었다. 권위주의를 깼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본다.”


“386 중에 1960년대 생이 가장 중요한 팩트다. 우리는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는 세대다. 성장이 자연스러운 세대가 대학에 들어가 인정할 수 없는 독재체제를 보니까 답답했다. 정치 이념에 도전할 생각을 했고 결국 극우독재를 깼기에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도, “민주화가 되고 지난 10년 동안 권력 집단, 정치권력 속에 편입되면서 개척자 노릇을 하기보다는 질서 속에 안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대 요구도 달라졌지만 새로운 시대 명제를 만들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한다.”는, 좀은 겸손해서 낫습니다.


‘386’에서 핵심은 대학 학번

저는 이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자기들 잘못이 무엇인지 근본에서 돌이켜보고 있지 못하구나, 하기는 그런 성찰이 그런 사람들한테 있을 수 있으리라 착각한 내가 잘못이지, 이렇게 여겼습니다.


제가 보기에 386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가장 핵심은 ‘8’입니다. 80년대 대학 학번이 없으면 여기에 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90년대에) 30대였고 60년대에 태어났다 해도, 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386세대가 아닌 것입니다.


80년대 독재 정권에 맞서 벌인 여러 운동 가운데 학생운동만 대접을 받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따위들은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386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386’들의 네트워크는 고졸 이하에 대한 차별과 배타


차별과 배제(=배타)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비정함과 괴로움을 모릅니다. 386세대는 차별과 배제의 주체이지 그것을 당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 좌담에서 이렇게 서슴없이 지껄일 수 있습니다.


“연대와 성취, 이런 데 인이 박혀 이 세대는 네트워크 능력이 탁월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장단점이 다 있다고 꼬리를 달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끼리끼리 노는 꼴’을 네트워크 능력이라고 과감히 표현을 했습니다.


다른 이는 이렇게도 얘기했습니다. “전대협 한총련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시 도별로 다 있다. 그게 그대로 사회에 나가서도 네트워킹으로 연결되면서 어떤 세대보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이 됐다.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이 통한다.”


그런 다음에 “386은 만나면 무슨 학교 몇 학번 하면 다 통하지 않나.”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전대협 한총련 같은 학생조직이, 대학을 나온 이들에게 정치 밑천이 되고 사업 밑천이 되고 장사 밑천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은 이미 배제돼 있어 전혀 무관한 제3자로 여긴다는 자백입니다.


이들은 대학에 아예 들어갈 수가 없었고, 따라서 전대협이나 한총련 따위 ‘밑천’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노동자나 농민과 빈민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얼마나 박탈감에 시달리는지 모릅니다. ‘밑천’에 대한 접근이 아예 ‘원천 봉쇄’ 당한 이들에게는 386 자체가 차별과 배제임을, 이들은 아예 짐작도 못 합니다.


386이 새로 나아가야 할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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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을 다룬 책

학벌 갖춘 이들은 학벌 그 자체에 대해 당연히도 아무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거의 없습니다. 이번 좌담에 참석한 넷을 보니, 공교롭게도 서울대 출신이 둘이고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이 각각 하나씩이네요. 이들은 학벌로 손해본 적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고교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에 가는 시대가 됐다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른바 명문대 중심으로 학력과 학벌 문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초-중-고교로 이어지는 공교육은 거의 다 망가졌고, 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386세대가 반성하고 새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과 빈민운동과 여성운동 같은 분야에서 활동해온 같은 세대의 ‘학번 없는 운동가들’에게 “80년대와 90년대 운동의 성과를 독식하다시피 했다.”고 자백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데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능하다면 집단을 이뤄서, 자기들이 기득권을 알게 모르게 누리는 터전이 됐던 학력차별을 폐지하는 운동에 힘을 보태는 한편으로, 대부분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일 비정규직 남성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내놓는 모습을 보이는 데 있습니다.


기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돌아볼 줄 모르게 고개가 굳어 있습니다. 이미 자기네 네트워크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니 뭐니, 학력 철폐니 뭐니, 노동운동이니 뭐니, 농민운동이니 뭐니, 빈민운동이니 뭐니 따위는 신경 쓰기도 싫습니다. 그들에게 운동은 옷장에 박혀 있다가 추억거리가 필요할 때 한 번씩 불려나오는 노리개입니다.


5년 전과 견줘 달라지지 않은 386의 의식


2003년 9월에 우리 <경남도민일보>에 ‘386에 담긴 학벌 우월주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시위나 돌멩이 던지기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이는 ‘개나 소나’ 자신을 386이라 한다. 하지만 80년대에 고졸이나 중졸 학력으로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한 사람을 386이라 이르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개뿔도 아닌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는, 가진 게 없어 배움터 대신 일터로 가야 했던 같은 또래 농민·노동자의 설움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로는 이해를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몸으로 실감은 하지 못한다.”고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몇몇이 반박 댓글을 달았더군요. 하나는 “당신이 386이 아니라서 배가 아프냐?”였고 “‘개나 소나’라니, 당신 쓴 글을 보니 그냥 짜증난다.”였습니다. 이번에 <시사인>을 읽으면서, 5년 전 그 때와 별로 달라진 인식이 없어 보여서 저는 무척 쓸쓸해졌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발바닥만큼은 뜨거웠던, '직업적' 실업자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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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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