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산청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러다보니 실제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멀고 아득했다. 하지만 이제 산청은 진주에서 보자면 마실을 가도 좋을 만큼 이웃 동네가 되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길이 된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양면적이다. 길이 멀어 불편했지만 그만큼 누릴 게 많았던 데에 비긴다면 지금의 길은 편리하지만 밋밋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그조차 넉넉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기에 떠남은 언제나 좋다.


성철스님 겁외사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를 빠져나오면 멀지 않은 곳에 겁외사가 있다. 겁외사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멋있거나 경치가 아름답거나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겁외사는 볼거리가 많거나 아름답거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사철 끊이지 않는 건 성철스님을 모시기 때문이다. 스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무엇이든 남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우는 데 평생을 바친 성철스님 앞에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이 비는 기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성철스님의 생전 모습과 유물을 전시하는 泡影堂(포영당)에 글귀는 범인이 보기에는 심오하기 짝이 없다.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보이는…… 결국에는 어디에도 없다는 문……. 스님이 말한 문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눈에 담기는 즐거움에 매달려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겁외사는 말한다. 한 번쯤은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어쩌면 성철스님의 가장 큰 음덕을 입고 사는 건 겁외사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상대로 오밀조밀 농산물을 펼쳐놓고 파는 동네 아낙들인지 모른다. 호객을 하는 목소리가 와글와글 수다스럽다


그들의 이런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보다는 유쾌함을 느낀다면 이 또한 여행길에서 얻게 되는 힐링이 아닌가! 그 중에서 진국은 고구마다. 고구마는 맛있다고 먼 곳에서 찾아올 정도니 믿고 사도 좋을 듯하다. 2만원에 한 상자를 사서 싣고 바로 옆 남사마을로 옮겨갔다.


남사마을 돌담장과 기와집


남사마을은 오래된 돌담장과 기와집으로 유명하다. 최씨고가는 대문 빗장이 거북이 모양이다. 사람들은 거북을 장수의 상징으로 여긴다. 오래 살고 싶은 기원을 그렇게 담았을까? 아니면 병약한 가족이 있어 그이를 위한 액땜이었을까? 대문에 매달린 거북이 한 쌍은 나그네들에게 이야깃거리를 그렇게 풍성하게 던져준다


고가는 안채에 이르기까지 문이 첩첩이 이어진다. 대문은 열면 사랑채로 이어지고 사랑채 양 옆의 문은 안채로 이어진다, 마치 여인네들의 한복 속에 겹겹이 차려 입은 속옷처럼 경계를 지어주면서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다.


가위 모양의 회화나무가 그럴 듯한 이씨고가 앞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돌아서면 왠지 심심한 남사마을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나들이라면 다리를 건너 남사천을 따라 예담길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길지 않은 길 끝에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고문을 체험해보는 곳도 있고 함께 사진 찍기 좋은 오래된 모형 자동차도 나와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았더니 배가 출출해졌다. 마을을 벗어나면 괜찮은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빔밥이나 한정식, 고깃집이 골고루 들어서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먹기에 좋다.


단속사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단속사지가 있다. 남사마을을 찾은 다음 단속사지까지 돌아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탑 두 개만 덩그러니 서 있는데, ‘덩그러니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잘 생긴 탑이다. 단속사지는 인적이 드물어 오히려 빛나는 곳이다


절터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부터 노을이 지는 저녁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신을 거듭한다. 폐사지가 좋은 건 비워짐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자유다. 채우느라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전해주는 데가 단속사지다. 떠나는 날 부슬부슬 비라도 내린다면 만사 제쳐놓고 찾아가시길…….


유홍준은 문화재를 여행의 소재로 만든 인물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칭찬한 장소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대밭이 있는데 그이는 대밭에 드러누워 바람과 햇살을 누려보시라 권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려들지는 않았다. 돌아나오는 길에 600년 세월을 지나며 이제는 거의 말라붙은 정당매 매화나무가 겪은 인고의 시간에 연민과 찬사의 눈길을 보낸다.


산천재와 덕천서원


고향에 뼈를 묻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에 남명조식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고향 삼가(합천)를 떠나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 마을로 옮겨왔다. 그저 지리산이 좋아서다


덕천서원은 남명이 세상을 떠나자 가르침을 받던 제자들이 그 자리에 스승을 기리고 모신 곳이다. 배롱나무와 은행나무가 주인 없이도 잘도 자랐다. 따사로운 햇살이 한 움큼 자리를 차지한 마당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덕천서원 배롱나무.


왜 사람들은 이런 곳을 찾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강당 마루에 걸터앉아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여행의 고수들일지도 모른다.


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명 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산천재가 있다. 덕천강 물줄기는 나그네들에게 시원하게 인사를 건넨다. 산천재 앞마당에 서 있는 매화나무를 심은 주인공이 남명 선생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서신으로 안부를 묻던 친구 사이였다. 마음이 통해서인지 두 사람 다 매화를 좋아했다. 연모하는 여자를 생각하며 죽는 날까지 매화를 가꾸었다는 퇴계의 일화는 유명하다. 헌칠하게 잘 생겨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는 남명도 매화를 심은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이제 남명매 매화나무에서는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세월의 무게가 더 무겁다. 열어놓은 쪽문 사이로 오두마니 들어앉은 햇살이 주인을 대신하여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인걸은 간 데 없고 산천은 의구하다.


천왕봉의 관문 중산리


이제부터는 산천재에서 중산리까지 달린다. 차창을 열고 와락 달려드는 바람을 온 몸으로 껴안아도 좋다. 바람에 온몸을 맡겨도 좋다. 덕천강을 이어달리는 산바람 강바람에 찌든 때는 깨끗이 날려 보내자. 그렇게 달리다보면 길이 막다른 데에 이르게 된다. 중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가장 짧은 루트로 언제나 산사람들이 북적인다.


길 끝에 이르면 막걸리와 전을 파는 집들이 기다리고 있다. 애주가들에게는 언제나 반가운 풍경이다. 지리산중산산악관광센터에서는 숙박·전망·휴식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다. 1층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3층 전망대에 오르니 맞은편 산이 눈에 펼쳐진다


마음이 풍성해지는 산청 나들이는 가을이 깊어져도 좋을 곳이다.

 


겁외사 맛집

연화자연밥상 055-972-2255

 

남사마을 맛집

예담원 055-972-5888

남사예담촌 055-972-0079

 

중산리 맛집(카페·식당·숙박 겸업)

지리산중산산악관관센터 055-972-7588, 010-5521-0685

 

남사마을 고택숙박

이씨고가 010-2315-6502

사양정사 010-3789-0801

정양교고가 010-2079-8119

예담한옥 055-972-2223 / 011-727-0006

종가집한옥 010-9300-8105

최씨고가 055-973-5597 / 010-6801-5446


김훤주


※ 부산 소재 건설 기업 광흥건설의 사보 <광흥생각> 2017년 가을호에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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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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