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조세 창고가 경남에는 셋이었다창원 마산창, 진주(지금은 사천가산창, 그리고 밀양 삼랑창이었다마산창과 가산창은 1760년 생겼고 삼랑창은 1765년 생겼다


마산창은 임금이 있는 서울에서 볼 때 왼쪽에 있어서 좌(조)창이 되었고 가산창은 우(조)창이 되었다삼랑창은 후(조)창이라 했는데 앞쪽 바닷가에 있지 않고 뒤쪽 육지 한가운데 있어서 그랬다


지금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일대다밀양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어귀다밀양강 물결()과 낙동강 물결과 부산에서 밀고 드는 바다 물결 이래서 삼()랑이 된다고 한다

이른바 '후조창 유지 비석군'. 삼랑창터 비석들이다. 올라가는 길에 찍었다.


조세 창고가 있었으니 지키는 시설도 당연히 있었겠다뒷산 후포산에 산성이 있었다후포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비석들이 줄줄이 서 있다옛적 삼랑창이 있던 시절 고을 벼슬아치들을 칭찬하는 내용들이다그리로 해서 올라가 마루에 서면니 낙동강과 밀양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후포산 마루에서 본 밀양강. 사진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왼쪽 위에서 아래로낙동강이 흘러온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최헌섭 원장은 경남도민일보 2011년 6월 14일치 낙동강을 품는다(17) 밀양강을 건너 삼랑진에 들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빨간색 별표 자리가 정상으로 오르는 들머리이고 파란색 동그라미가 의충사다.


지리적 요충지로 일찍이 전략적으로 중시됐습니다뒷구릉 후포산의 삼랑진성 혹은 낙동성지 산성이 증거입니다서쪽 뒷기미나루는 …… 이 삼랑포 뒤에 있는 후포산 자락에 있어 그리 불렸습니다


…… 성은 규모가 작아 보 정도 수준이지만자리는 빼어납니다낙동강 위아래와 밀양강이 한눈에 듭니다이런 입지적 탁월성이 성을 구축한 배경일 것입니다지금은 주민들도 모를 정도로 허물어졌습니다서쪽과 남쪽은 낙동강과 밀양강에 붙은 비탈로 천연의 방벽이고동쪽 성벽에 돌로 쌓은 흔적이 남았으나 시기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의충사 얘기도 함게 하고 있다


전하기로 삼랑진성은 밀양의 거성인 박·손 두 장군이 힘겹게 적과 싸운 곳이며정상 의충사에는 지금도 두 장군 영정이 있습니다


의충사는 삼랑리 중심 신당이라 정월 보름마다 전날 밤부터 제를 지냈습니다나루가 흥했던 때는 삼랑리 다섯 마을이 합동으로 열흘 넘게 굿판을 벌여 북새통을 이뤘으나 지금은 상부마을서만 모신다고 합니다.” 


2017년 12월 25일 찾아갔다·박 두 장군의 영정이나 아니면 위패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그러나 허물어지고 없었다사당이 있었으리라 여겨지는 자리에는 콘크리트가 바닥에 남아 있었다

후포산 정상 모습. 살풍경하다. 가운데 즈음 나무가 위쪽만 보이는데 거기가 의충사 자리겠다.




무슨무슨 공사를 하느라 헐어버린 모양이었다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땅주인이 사업 목적으로 건물을 짓기 위하여 마을과 협의를 거쳐 철거했다고 한다공식 문화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옛적 사람들 자취인데 아쉬웠다



이제 마을 사람들이 정월 보름마다 지내던 제사도 없어졌겠다다섯 마을이 합동으로 열흘 넘게 떠들썩거리던 시절은 오래 전에 과거가 되었다이제는 다만 한 마을이나마 조촐하게 제사 지내는 시절까지 과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나무는 그럴 듯하게 남아 있었다둘 가운데 한 그루는 사람들로부터 제사를 받는 나무 같았다앞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놓여 있었는데 제사 지낼 때 쓰는 제단(祭壇)이 아닐까 싶었다아래에 있는 빈 공간은 촛불을 켜서 놓는 자리로도 쓰였음직했다


앞쪽 아래 언덕배기에 소나무가 두 그루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그 품이 그럴싸했다. 일부러 그렇게 구불구불하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크기도 한 아름은 되어 보였다.


아울러 모과나무도 두 그루인가 있었다굵거나 크지는 않았다이 녀석들은 내가 알기로는 저절로 나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사람이 일부러 심어야 하는 나무다그렇다면 여기에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갖고 심었다는 얘기인데그 목적이 무엇일까 살짝 궁금해졌다


한 해가 저무는 무렵에 찾아간 때문도 있겠지만어쨌거나 허물어지고 깨어지고 망가지고 사라지고 하는 자취가 자욱해서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낙동강과 밀양강 탁 트인 조망은 좋았지만.


내려와 마을을 지나 낙동강을 끼고 아스팔트도로를 걸어나왔다옆을 보니까 1930년대 적산가옥이 한 채 1970년대 담벼락에 둘러싸인 채 남아 있었다조금 더 가니 오른편으로 참게 요리를 장하게 하는 가게가 나왔다


그 너머로 김해로 이어지는 다리가 낙동강에 걸쳐져 있었다. 삼랑진교라 한다. 콘크리트로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너비가 좁아서 자동차 두 대가 겨우 마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찬 바람 맞으며 타박타박 걸어서 건너갔다 오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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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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