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 재발견>(산지니, 2016)은 한겨레 기자인 신동명, 최상원, 김영동 세 기자가 <한겨레> 지면에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도 부산과 경남 일대에 산재한 왜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치욕스런 역사의 상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왜성에 대한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책을 통해 주장한다. 치욕의 상징물이 아니라 "16세기 말 우리 조상이 절체절명의 국난을 마침내 극복하고 얻은 전리품으로 왜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군이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성을 쌓은 배경을 지적한다. "성에 의지해 조명연합군의 공격에 최대한 버티다가 여의치 않으면 바닷길을 통해 일본으로 안전하게 철수"하기 위해 왜성을 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부지방엔 없다. 서해, 동해안에도 없다.


어쨌든 왜군이 7년 전쟁 기간동안 쌓은 성은 부산 11개, 울산 2개, 경남 17개, 전남 1개 등 31개이다. 기타 군사시설도 많지만 학계가 성으로 인정하는 것은 현재까지 31개라는 것이다. 시군별로는 울산시 부산시 양산시 김해시 창원시 거제시 고성군 진주시 사천시 남해군 순천시에 걸쳐 있다.



그 중 지금 산호공원이 왜성이었고, 6.25 전몰군경 위령탑이 있는 그 자리가 천수각 터였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고, 봉수대가 있는 진주 망진산도 강건너 본성을 경비하기 위한 왜성이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망진왜성은 조명연합군이 남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대부분 왜성은 강이나 바다 근처의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독립된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왜군은 전략적 요충지에 본성을 쌓고, 본성 근처에 방어를 돕는 요새 격의 지성을 배치했다.



왜성은 16세기 한일간 축성 교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의 읍성은 백성을 보호하는 행정 목적의 성이었다. 하지만 남한산성과 수원화성 등 전쟁 이후 축성된 성벽 각도는 예전 읍성처럼 수직이 아니라 왜성처럼 비스듬하다. 성벽 모서리 부분도 왜성처럼 돌의 길고 짧은 면을 엇갈리게 쌓아올렸다. 방어전략도 읍성 중심 수비체제에서 산성 중심으로 바뀌었다.


일본 또한 조선에 영향을 받아 전쟁 뒤 축성된 일본 성엔 조선 읍성처럼 성벽에 치(雉)와 같은 네모난 모양의 돌출 구조물이 들어섰다. 또 전쟁 뒤 에도막부 시대에 축성된 성 부근엔 행정관청이 들어섰는데, 이는 수성과 전투원 보호 목적으로만 건설됐던 이전 성에 백성을 보호하는 행정 목적의 특성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 정부는 주요 왜성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왔으나 1997년 왜성의 문화재 가치 등급을 지방기념물 또는 문화재자료로 낮췄다. 이후 왜성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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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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