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운동권이 생각을 하는 데에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축입니다. 이리 잘라 말하는 까닭은, (그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돌아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MBC는 이미 민영화돼 있습니다. MBC를 ‘민’이 운영하지 ‘관’이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소유 구조는 공적이지만, 운영은 이미 민에게 맡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대통령 이명박의 MBC ‘사유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면서도, ‘MBC 민영화 반대’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이 선점한 용어를 그대로 따라 쓰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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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은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똑 같습니다. 똑바로 알지 못하면 여기저기 찾아봐야 하는데, 찾아보지를 않습니다.

총파업은 영어로 하면 제너럴 스트라이크(Gnereral Strike)입니다. 모든 산업에서 모든 노동자가 진행하는 파업입니다.

일제 시대 원산총파업을 보기로 들자면, 원산에 있는 모든 산업 노동자가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니까 단일 산업 노동자가 벌이는 전면 파업을 두고 총파업이라 하면 맞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금속노조는 언론노조는 총파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총파업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총연맹’만 할 수 있는 전술입니다.

그런데도 언론노조는 ‘총파업’을 내걸었습니다. 총파업의 뜻을 모르고 하는 언사입니다. 이러다 보니 단위 사업장 노조에서도 ‘총파업’을 내겁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으름에는 허위의식이 있습니다. 모자라는 객관적 역량을, 넘쳐나는 주관적 의지로 대체해 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총파업이라 하면,  사실은 그냥 집회를 하는 수준일 뿐인데도 무언가 대단한 결의가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반대로 실제 파업을 하는데도 총파업이라 내걸지 않으면 정말 사소하게 느낍니다.

투쟁 방법은 다양합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쓸 수 없고, 소 잡는 데 닭 잡는 칼 쓰면 안 됩니다. 나아가, 특정한 칼 한 자루(한 가지 투쟁 방법이나 투쟁 형태)만을 두고 절대화하거나 하면 바로 망합니다.

주어진 조건과 역량을 잘 따져서 할 수 있는 투쟁을 하면 그만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언론노조는, 현재 조건에서, 잘해 봐야 부분파업입니다.

그러나, 부분 파업도 위력이 대단합니다. KBS본부는 못하더라도, SBS본부는 못하더라도, MBC본부가 하면 됩니다.

지역 방송도 하면 됩니다. 조건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지역 MBC나 KBS 지역 본부나 같은 데에서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저항 투쟁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한겨레지부나 경향신문지부도 파업을 하면 됩니다. 아울러 경남도민일보지부 같은 지역 일간지 지부 몇 군데가 파업에 나서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이명박의 언론 장악 정책에 맞서서, 서울의 방송과 신문이 투쟁에 나섰고, 못지 않게 또는 더 크게 지역의 방송과 신문이 투쟁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총파업을 알리는 깃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우리 투쟁은 이런 면에서 ‘실용’을 지향합니다. 그래야 자본과 권력의 ‘실용’ 이명박(벌써 지겹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김훤주

닳지 않는 손 상세보기
서정홍 지음 | 우리교육 펴냄
서정홍 시인의 동시집. 표제시「닿지 않는 손」은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표현한 동시이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맑고 곱게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감성이 아이들의 마음에 콕 와닿을 것이다. 특히 이야기 들려주는 듯한 시적 표현은 아이들로 하여금 동시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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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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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데요.. 2008.08.06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총연맹이 아니라 산별노조, 단위노조에서 총파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건 총력투쟁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건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안의 시급성을 알리고 조합원 대중을 결집시키는 데에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요.
    오히려 투쟁을 가로막는 건, 총파업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소위 <실용주의> 운운하는 입장에 가로막혀 싸워야 할 때를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요?

    • 김훤주 2008.08.06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죄송하지만, 중요하거나 또는 중요하지 않거나를 따지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총파업 만능주의라 하셨는데, 과연 말씀하시는 그것이 총파업 만능주의라도 될까요? 총파업을 할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총파업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의 무감각함을 저는 짚었습니다.

      그리고, <실용>과 <실용주의>도 구분해 써야 합니다. <자본>과 <자본주의>가 서로 다른 것처럼, <실증>과 <실증주의>가 같은 뜻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둘을 같은 것처럼 섞어쓰고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말한 <실용을 지향한다>는, 군더더기도 없고 허풍이나 과장도 없이 실제 쓰임새를 제대로 발라내어 값어치를 매기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실용주의는, (정신적인 가치나 명예 따위는 별로 돌아보지 않고) 실제 쓰임새만을 제일로 치는 생각 또는 행동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립니다. <사안의 시급성을 알리고 조합원 대중을 결집시키는>이라 하셨는데, 이 또한 공급자 중심 사고, 대중을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올해도 총파업 찬반투표를 했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지부에서는 열성 조합원들이 오히려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도 않을 텐데 투표는 왜?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받아들이는 조합원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총파업을 찬성하는 이들에게는 허위의식도 있습니다.(최상재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고민이나 의지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7월 17일 임시 대의원회에서 '23일 총파업을 한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저는 물론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총력투쟁이라 해야 맞다고 봤습니다. 왜냐, KBS본부가 동참하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총파업(또는 전면파업)은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3일 서울에 모였습니다. 대오는 제가 보기에 800명밖에 안 됐습니다.(조합원 숫자는 1만 명을 훨씬 웃돕니다.) 우리 지부는 전체 76명 가운데 14명이 참가했습니다. 부분파업 수준입니다. 저희 지부는 반대를 하기는 했지만, 결정이 있고나서 곧바로 조직에 들어가 부서별로 한 명씩을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의원회에서 총파업에 찬성했던 이는 70명이 넘었습니다.(반대는 20명 정도였습니다.) 찬성한 이들은 한 주일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요?(제가 자랑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대의원도 분명히 많겠지만, 그냥 말로만 '총파업'을 한 대의원도 적지는 않음을 충분히 눈치채고도 남음이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