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 보니 그런 일도 다 있네 그래.” 그렇습니다. 진짜 생각도 못한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즐겁기도 하니 이게 이상한 노릇입니다.

고3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방학을 맞아 그림을 공부하러 서울에 갔습니다. 서울에 있는 학원이 쉬는 바람에 이틀 한도로 4일 새벽 창원 집으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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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지면평가위원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 녀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술 좀 사 줄 수 없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받았을 때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술심부름을 다 시키다니……. 곧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왜 술을 사 달라느냐고 물었겠지요.

“아빠 있잖아요, 수능 치기 100일 전이에요. 친구들이랑 마시려고요.” 그래 제가 “그러면 니가 사면 되지, 왜……” 하고 물으려는데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나 술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바 어른이 아니면 살 수 없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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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 아들이 시키는대로 맥주 1.6ℓ 짜리 다섯 병 하고 안주를 좀 샀습니다.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아들은 자정 전후해 들어온다 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볼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들이 고맙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아들이 아버지가 자기를 믿는다는 것을 믿고 아버지한테 술심부름을 부탁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마음으로부터 이해를 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사실 저는, 4일 새벽 아들이 서울에서 돌아왔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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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돌아오자마자 제게로 다가와서는, 진짜로 반가운 얼굴 표정으로, 제 손을 으스러지게 꽉 쥐어줬습니다.

저는 그런 아들이 반갑고 고마워서, 한껏 품을 벌려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기에, 불쾌할 수도 있겠다 싶어, 등을 토닥거리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아들은 그날 밤 자기 친구들이랑 우리 집에서 제가 사놓은 술을 재미있게 마셨습니다. 다른 두 친구랑 함께 인생살이를 얘기하면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이튿날 친구들은 학교 보충수업 때문에 일곱 시가 되기도 전에 나갔고, 제 아들은 새벽까지 주고받은 얘기들을 꿈결에 되새기며 아침까지 잠을 잤습니다.

언젠가 제 아들은 이리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이랑 어울리려면 술은 마셔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담배는 피우지 않을래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지난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대목이 담배를 배운 것이란다. 정말 잘 생각했다. 그런 아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저는 그 날 제가 술심부름했던 그것이 아들에게 친구랑 더욱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들한테 듣기로, 사생활과 관련되는 얘기라 자세하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실제로 그리 된 것 같아 저는 흐뭇합니다. 친구들끼리 고민과 따위들을 많이 공유한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아들 술심부름을 하면서, 제가 처음 술을 마신 시절로 기억이 돌아갔습니다. 고1 겨울방학입니다. 1980년 2월 17일 설날 다음이었습니다.

저는 이른바 ‘떡’이 됐습니다. 마땅한 까닭도 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아마 제게 연락이 되지 않아 친구들이 따로 모였을 뿐인데도, 저는 저를 따돌리느라 그랬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쁜 여자애도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있는 산기슭을 향해 소주 두 되를 사서는 지고 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고 간 것보다 더 많이 마시고는 뻗어버렸습니다.

친구들은 당연히 감당이 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저를 억지로 산에서 끌고 내려오기는 했지만 집에다 데려다 줄 생각은 하지 못했나 봅니다.

친구들은 저를 집 앞에다 팽개치고 돌아갔습니다. 저는 쓰러져 있다가 어머니 눈에 띄어 업혀 들어갔고 어머니는 쌀을 물에 갈아 제 입에 넣었습니다.

이랬던 저에 견주면, 우리 아들은 그야말로 젊잖게 술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제가 무슨 치울 거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제가 적어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아들이 저를 믿어주니까요. 제가 아들을 믿는다는 사실을 우리 아들이 믿어주니까요.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요!!

제가 고3 아들이랑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신 적은 없지만, 저보다 더 정겹게 생각하는 친구들이랑 술을 마실 수 있게 장만해 달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아들이 더욱 믿음직스러워졌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뭐 이런 느낌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를 친구처럼 삼아 편하게 얘기를 나눌 아들이 그렇게 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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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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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치미 옆사람 2008.08.07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부럽습니다 저 역시 고3아들을 키워봤지만 아들은 부모와의 이해 관계가 무척 힘들더군요 눈높이를 부모의 위치에서 봐서 그런지 공부밖에 안보이더군요. 사람이 사랑을 하면 꽁깍지가 쒼다고 하는것 처럼요 100일 남은 기간 열심히 하십시요

  3. 스치미 옆사람 2008.08.07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엔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의 중요함 보단 부자간의 이해 관계가 아닐까요?
    살아온 생활 습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부모와의 대화와 이해 관계라고 생각하는데요

  4. 두 아들 엄마 2008.08.07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24살 중3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혼자 애들 키운게 십여년 넘다보니 술도 걱정 되더군요. 주위 의견듣고 고2때 맥주를 가지고 아들하고 마셔 봤습니다. 노래방가서 "사람이 꽃보다..." 노래두 셋이 하구요. 모레면 제대하는 울 아들 지금도 항상 자랑합니다. 엄마와 첫 술을 마셨다구..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잣대가 문제 아닐까요? 큰 아들이 모레 제대하면 멋지게 한잔 쏜다네요..군 월급 모았답니다. 자식을 믿어주는 센스도 필요한거 같아 고맙네요, 아자 아자~~입니다

  5. 엄정순 2008.08.07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아버님의 멋진아드님이시네요!
    요즘엔 웬만하면 다 이해를 하는편이지요!
    못된짓만 안하면....
    술은 처음 부터 어른들께 배우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못합니다
    담배는 건강에 해로우니깐 본인스스로가 알아서 ....
    아버님이랑 스스럼 없는것이 너무 부럽네요
    제 남편은 옛날 어른 노릇만 할려고 하는데...
    아들한테 아빠라는 권위만 세우고...

  6. 1stgood 2008.08.07 14: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다 큰 아들과 아빠가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라 생각되는데, 김훤주님 말씀대로 절반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셨습니다!! 뭘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가족간의 신뢰와 사랑이 있으면 모든 일은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7. 멋있습니다. 2008.08.07 15: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같은 세상에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그렇게 관계 좋기가 힘든데

    너무 부럽네요.

    멋있습니다.

    Cool 한 아버지시네요 ㅎ ^^

  8. 이뿐보아 2008.08.07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원 반림동이시네요. 저는 팔용동입니다. 저의 딸아이가 중3인데 가끔 가족끼리 외식가면 맥주한잔정

    도 딸아이에게 줍니다. 중2때 처음 맥주를 한잔 주었는데 맛이 없다면서 눈쌀을 찌푸리는 모습은 참으로

    예쁘더군요. 님의 아이은 남자라서 그런지 무척 늠늠할 것이라 생각이 더는군요. 여기서 미성년자가 술

    을 마신다고 흉을 보시는 분이 몇분 있는데, 커가는 자식과 함께 술한잔 나눠보시면 알 것입니다. 그건

    이미 술이 아니라 "정"이며 "사랑"입니다. 글쓴이의 화목한 가족의 모습에 부러움과 함께 찬사를 보냅니다.

  9. pjongmin9 2008.08.07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지네용 저도 교육산업에 종사 하는 사람이지만 딱히 정해진 잣대로만 아이들을 판단하는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무슨일이든지 바탕이 신뢰 속에 이루어 진다면.. 그아이들이 자라서 더욱더 신뢰감 있는 사회를 만들 사회의 구성원이 될거라고 확신합니다..그리고 훈훈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10. 스머프 2008.08.08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수능 100일때가 생각이 나네요. 술이란걸 처음 먹어본건 아니었지만 고 3때 학교 시험이나 모의고사가 끝나면 의례히 친구들 자취방에 모여 술한잔씩 기울이면서 잘본사람 못본사람이나 서로 격려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 어떤 분들은 일탈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지금도 이 자리에서 기운 술잔은 잊혀지지 않으며 소중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아드님 올해 수능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합니다.^^

  11. 마운틴 2008.08.08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 아들 7개월...

    믿음이 바탕되는 부모자식간 만들기위하여.. 아자아자. ㅎㅎ

  12. 냥이~ 2008.08.08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옛날(?)생각이....ㅎㅎ
    전 2000수능세댄데요..
    D-100일에 삼촌 이모.....등등등 외가친척들이 몽땅 우리집에서 몰려오셔서 술파티했다는...-_-;;;
    격려말씀도 듣고, 주도(?)에 대해서도 배우고..
    용돈도 받고..

    참~그립네요...흑흑..

  13. 아들입장에서도 2008.08.08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꽤나 기뻐했을거예요 친구들한테 아빠자랑도 좀 했을거구요
    저도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는데
    처음먹을때도 아빠엄마께 말씀드리고 갔어요 안된다 하시면 졸라서라도 가려고 했지만
    안된다 하지 않으시고 그래 적당히 먹고오라 하셨어요
    지금은 대학생이고 아직도 술먹는 것에 전혀 터치안하십니다.
    내딸아이 잘할거란 믿음 느껴져서 술자리 좋아하지만 한번도 지나치게 술먹어본적없어요
    그리고 고2여름 주민등록증을 받을때쯤 친구들이저희 집에 놀러왔어요
    아빠는 너희 모두 주민등록증받으면 와라 술한잔 사주마하셨어요
    생일이 모두 다르니 다 받을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친구들과 몰려가 아빠께 술얻어먹었습니다.
    저희 아빠도 그때 글쓴분처럼 기뻐하셨을거 같은 생각이드네요

  14. 이창섭 2008.08.08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안주가 좀 약하네요...^^
    학생들인데 안주가 좀 더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15. 나장원 2008.11.12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말고 따른 대안을 찾아 보셨으면 좋았을 듯!
    (글을 쓰신 분의 집안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을 듯)

    단지 부자지간의 정을 생각해서..
    내 자녀가 다 컸구나..
    음.. 술은 부모에게 배우는거야..
    음.. 음지보단 양지에서.. 라는 의미로
    청소년에게 술을.. 그것도 부모가 직접 주는 것은 좀..

    위의 생각들로 인해..

    없어져야 할.. '백일주문화' 정말 필요 없는 그런 인습들이..
    지속되어지는 건 아닐지..
    그런 불필요한 문화들을 부모가 인정해 버린 꼴이 되어버린듯..

    님의 생각은 좋았으나.. 그에 따른 행동이 조금은 아쉬운듯...^^

    성인이 되어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듯..!!

    ㅋㅋ

    내의견.. 그냥 내의견..

  16. 이성철 2008.11.12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보기좋습니다. 나도아들하나 딸하나있죠 .저는누누이강조합니다. 술은 먹어라 다음날일어나 전날기억이날정도로만먹어라.그대신담배는 않된다. 아이들도 그건지키고있죠 .저는어렸을때 아버지가 제사끝나고 음복으로주던술 그맛을 잊을수가없어 저도자식에게 어렸을때부터 음복시 ㅅ술한잔씩주고하였읍니다.그리고 사나이끼리어느정도 성인이도면 같이한잔씩하면서 세상사는이야기 그리고서로의고민거리등등 이야기할떼아 아들둔보람이있구나 느끼는경우가많아요

  17. ^^ 2008.11.12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드님과 소통이 잘 되시고 있으신것 같아 부럽습니다.
    술은 좋지 아니하나 고민을 부모와 함께 공유하고
    그 고민을 존중해 주는 부모가 있어 부럽습니다.

  18. 유경환 2008.11.12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수능전날 감동 ㅜㅜ

    소름이 쫙 돋내요

  19. TheSoas 2008.11.12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의 폰번호를 공개해버리신 나쁜아버지~
    문자로 스팸이.......폭주!


    농담입니다 ㅠㅠ

    오해하지마세요

    • 김훤주 2008.11.12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합니당, 나쁜 아버지가 돼서요.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이 글을 읽고서 저희 아들에게 다음에 수능 치고 한 번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신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한 번 만나 사귀어 보자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여자는 아니고요, 남자고, 또 군대까지 다녀온 그러니까 선배뻘 되는 사람 한테서요.

      아들도 그래 문자를 보냈고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았아고 제게 일러줬습니다. 거듭거듭 고맙습니다.

  20. 고3여ㅋㅋㅋㅋ 2008.11.14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씨
    짱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쓸려고 보긴했는데 쓰는게 좋을것같아서...ㅎㅎ

    멋잇으시네요..
    제나이로서 보기에도.. 부자간에 그런관계
    본받을만하다고봅니다.
    숨기고 담배피고, 술마시는게 태반인데

    제가할말은 아니지만 할래요.ㅎㅎㅎ
    잘컷네요아들.ㅋㅋㅋㅋㅋㅋㅋ
    잘키우셨어요.ㅋㅋㅋ

    부럽네요..ㅜㅜ 허허허


    계속 행복한가정~~ㅎㅎ

  21. Gadgeteer 2009.08.06 2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부자관계네요. 글속에 사랑이 느껴져 정겹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