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금메달을 많이 땄다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열심히 했다고 곳곳에서 생난리를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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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돌아옵니다. 이미 돌아온 선수도 많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모아 퍼레이드를 한다고 합니다. 25일 저녁에 펼쳐질 모양입니다.

저는 이런 퍼레이드가 선수들을 위한 행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분석이 아니라 어린 시절 제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1.
국민학교 6학년 때인 1975년 봄, 제가 들어 있던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의 탁구부가 문교부장관기 학생 선수권대회에서 3등을 했습니다.

여태껏 경남 단위 체육대회에서조차 우승을 해 본 적이 없는 학교였습니다. 그런 학교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남 지역 국민학교 대표로 전국 대회에 나가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런 성적을 올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카퍼레이드를 벌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시키는대로 차리고 기다리다가 화물차 짐칸에 올라타서 서 있기만 하면 됐습니다.

2.
화물차에 합판을 대고 글씨를 써넣거나, 이런저런 일로 이런 카퍼레이드를 하게 됐다는 안내 방송은 따로 준비가 됐습니다.

행사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쑥스러웠습니다. 원래 지니고 있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우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여주는 구경거리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구경거리라는 지위도, 국민학교 6학년짜리 어린아이한테는 과분한 것일 수 있었겠습니다만.

우리는 간단히 잊혀졌습니다. 저녁이나 점심 자리도 한 번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졌습니다. 학교 앞 가게에서 친구들이나 가게 주인이 잠시 기억해 줄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상이란 학교 수업 모두 빠지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훈련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기합을 받았고 어떤 때는 얻어맞는 일이었습니다.

3.
달라진 것은 물론 있었습니다. 우리를 담당했던 선생님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짐작건대 그 두 분이 지역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조금은 올라갔을 것입니다. 나중에 군수나 경찰서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하고 한 자리 잘했다는 얘기도 저는 들었습니다.

아울러 우리 탁구부 부원 한 녀석도 어깨를 매우 으쓱거렸습니다. 그 친구 아버지는 당시 토목업을 하면서 학교 육성회장도 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이번 카퍼레이드에서 그 친구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를 말입니다. 친구 아버지는 ‘이번에도’ 물건을 대고 돈을 댔을 것입니다.

위신 때문인지 아니면 금전 이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친구 아버지는 열심히 탁구부를 후원했습니다. 다른 데서 선수 데려오는 스카우트까지 돈 들여 거들 정도였습니다.

이런저런 물품을 사는 데도 돈을 내었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반찬이랑 밥을 해 나르기도 했습니다. 아들 얼굴만 보고 하는 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4.
결과 삼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육성회장은 카퍼레이드를 실제로 책임을 졌습니다. 대가로 이런저런 칭찬과 지역 유지들과 더욱 좋아진 관계를 얻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인사 고과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할 수 있는 가점을 얻은 데 더해 교장과 교감을 흐뭇하게 하고 지역 사회에서 위신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장과 교감도 학교 운영을 잘했다고 나름대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테고요, 담당 선생님도 바로 위 상관에게 잘 보이는 성과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잠깐 등장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으로 모든 역할이 끝났습니다.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5.
25일 서울에서 벌어지는 베이징 올림픽 관련 퍼레이드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대부분 선수들은 우리처럼 곧바로 잊혀질 것입니다.(몇몇은 그렇지 않겠지요.)

그리고 대한체육회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은 나름대로 자기 위상을 드높이는 한편으로 자기 윗사람에게서 이런저런 칭찬을 듣고 눈도장도 찍는 보람을 누릴 것입니다.

윗사람이랄 수 있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도 이로 말미암아 이른바 국정 수행 등등에서 잘했다는 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점수를 조져 먹었다면 여기서 만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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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경꾼이 왜 퍼레이드를 하는지 모를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어릴 적 겪었던 카퍼레이드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카퍼레이드를 하는 진짜 이유를 적어도 그 바닥에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구경꾼뿐 아니라 구경꺼리인 선수들조차 퍼레이드를 왜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이 올림픽 무대 뒤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은 ‘호감’으로 비치고 싶어하지만, 많은 이들이 ‘비호감’으로 보는 까닭입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 미디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25일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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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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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8.08.25 1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국민들은 전혀 그러하지 않을 것이지만,
    도로의 시민들이 카퍼레이드를 모두 외면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뒷 얼굴의 표정도 -

    무슨 꼬라지인지 - ;

  2. 2008.08.25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훤주 2008.08.25 1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합니다. <미디어스>에 보낸 글이라서 '발행'을 하는 대신 '공개'만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나가 일 보는 사이에 김주완 선배가 <미디어스>에 보낸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해도 되겠다면서 '발행'을 하셨습니당.

      그래서 이렇게 됐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로 물리기도 좀 그렇고......

  3. mel21 2008.08.25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퍼레이드를 외면하면 선수들이 뻘쭘할 테고, 환영하자니 MB와 그 졸개들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고
    진퇴양난이네요~~하지만 카퍼레이드 이후에도 촛불은 타오를테니~~일단은 기다려야겠네요

  4. 역전의용사 2008.08.25 1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주는 선수들이 부리고 이득은 정치인들이 챙겨먹네요 -_-;;

    올림픽에서 눈물흘리고 고생을 하고 그래 해놓구서 메달도 못따면 그에 대한 보상도 못받고

    많이 힘들 선수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려는 이 나라나의 정부와 대통령이란 작자가 미워 죽겠네요 ㅡㅡ

    지들이 한게 뭐 있다고 왠 생색인지....

  5. wlsflrudckf 2008.08.25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 대통령님께 대적하려는 자는 보십시오.



    성경말씀에 보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를 미워하는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것과 같아 화를 당합니다. 저주받습니다.
    믿지않는 당신은 그와 싸워봤자 백전백패 합니다.
    그와 싸워서 이길수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그 보다 더 잘 하나님을 섬기고 믿은후에 싸우면 이길수있습니다.

    이대통령이 생각지 못한 좋은 정책을 펼쳐 국민경제에 이바지 하세요.
    그러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수 있습니다.
    과거 어떤 대통령이 자기 재산을 내어놓고 자기 월급을 사회환원했습니까?
    버스전철 통합요금제로 교통비 절감시켰으며 중앙로 버스전용도로안 같은 생각을 해냈습니까?

    예수믿고 훌륭한 사람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양보하고 베푸는사람 조금 손해보는 사람되십시다.
    죽을때 가지고 가지도 못할 돈 몇푼 더받아 낼려고
    뻘건띠 두르고 남에게 혐오감 끼치고 저주 받을짓 하지맙시다.
    위험하다는 수입소고기 사겠다고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2:10)

    • 하이고 2008.08.2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리경찰님 또 도배질이네요
      '위험하다는 수입소고기 사겠다고 줄지어 기다린다'는
      헛소리는 또 어디서 망상하신 건가요? 도배 글 자진삭제
      하고 사라져주세요

  6. k-sj53 2008.08.25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모두 긍정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십다.
    요즘 우리 나라 경제 상황이 어렵고 힘든 때 아닙니까?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되고 희망의 메세지가 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지요.
    골프선수 박세리선수가 IMF시절에 우승하여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어 우리나라가 조기에 졸업하는데
    일조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매일 같이 메스콤에는 살기 어렵다,힘들다하는 얘기만 하는데,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7위라는 국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 다시 도약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한만국 화이팅, 우리 선수 화이팅. 정말 우리 선수들 대단합니다.

  7. wlsflrudckf 2008.08.25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전의경 어머니의 편지





    Re:홍콩에서 발휘하는 한국시위대의 인생은...

    번호 : 169 조회 : 20 스크랩 : 0 날짜 : 2005.12.15 20:48


    이미 불속에 뛰어든 인생들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고통의 불속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원망과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해서

    그 속이 늘 썪고 문드러지는 문둥병자들입니다.

    미치광이와 같아서 물속에도 뛰어들고 타는 불속에도 뛰어들면서

    손에는 불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와 돌맹이가, 입에는 악독과 궤사와 죽이는 독사의 독이 그득하여

    언제나 남을 죽이고자 하나 먼저 자신을 죽여야하는 지옥불 인생입니다.

    회개할 수 없는 미련함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없는 소경이요,

    마음이 구부러져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요,

    스스로는 고통의 지옥불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날 수 없는 앉은뱅이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시끄럽고 입만 벌리면 불평과 죽이는 소리만 터져나오고

    그 마음은 돌짝밭처럼 황폐하여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는 들짐승들이 거하는 인생입니다.

    그러한 인생들의 도발적인 욕설과 멸시와 돌팔매질과 쇠파이프 타작들을

    불평없이 받으며 서있는 전의경 아들의 손에는

    믿음의 방패가 들려있습니다.

    모든 고통을 순히 받는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불법 폭력 시위자들이 죽음을 맛보는 이유는 저들안에 義가없기때문임을,

    믿음의 방패가 없기때문임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고통을 감당할 능력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춥고 배고픔도 가족의 그림움도 흐르는 눈물도 억울함도 아픔도 외로움도

    두렵고 떨림도 오직 믿음의 방패로 이기고 감당하는 전의경 아들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출처 : cafe.daum.net/ParentsPolice

    3줄요약
    1.시위대의 인생은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지옥불 인생이다.
    2.전의경의 손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는 믿음의 방패가 있다.
    3.시위자들이 죽음을 맛보는 이유는 저들안에 義가없고,
    믿음의 방패가 없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며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찌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찌니
    (레위기 24:17~21)

  8. wlsflrudckf 2008.08.25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진국의 평화시위문화는 어찌 확립되었는가?



    [만물상] 도심 시위
    2006년 11월 8일 (수) 19:44 조선일보

    [조선일보]

    1960~70년대 미국·유럽의 대학가와 거리는 반전과 혁명을 외치는 시위대가 점령했다. 60년대 후반부터는 과격해진 시위대와 중무장한 진압경찰 사이에 무력충돌이 잦아졌다. 1970년 5월 미국 오하이오 켄트주립대에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하던 학생들에게 주방위군이 총격을 퍼부어 4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이 ‘13초간의 난사(13 seconds of gunfire)’는 폭력시위를 줄이는 계기가 됐다.

    ▶시위에서 소규모·비폭력 양상은 80년대 들어 뚜렷해졌다. 1995년 미국 워싱턴의 사상 최대 흑인운동시위 ‘100만명의 행진’에선 사고는커녕 교통혼잡도 없었다. 올봄 텍사스 댈러스에서 ‘이민자 차별 반대시위’를 벌인 50만명은 대행진 후 시청 광장 집회까지를 경찰과 약속한 1시간 반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경찰병력 750명에 앰뷸런스 7대만 동원됐고 병원 후송자 2명, 연행자 1명이 나왔을 뿐이다.

    ▶불법폭력시위를 막기 위해 뉴욕경찰은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정책을 쓴다.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도 행진을 허락할 뿐 차도 행진은 99% 불허한다. 시위장소도 덜 붐비는 곳으로 제한하고 타임스퀘어나 5번가 같은 중심가는 아예 허가를 안 내준다. 법을 어긴 시위자는 무자비하게 체포한다. 뉴욕경찰은 이를 ‘삶의 질 경찰활동(Quality of life policing)’이라고 부른다.

    ▶경찰청이 시민에게 극심한 불편을 주는 서울 도심시위를 금지하겠다고 하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자유롭게 집회를 열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네만 나라의 주인이고 생업을 위해 휴일에도 시내에 나와야 하는 서민들, 지친 심신을 달래러 모처럼 도심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들러리란 말인가. 기본권 논쟁을 하기 앞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오만한 발상이다.

    ▶서구에선 60~70년대에 지나간 불법·과격·폭력 난장판을 우리는 21세기에 와서도 지긋지긋하게 보며 살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개인과 집단이 대부분 건전한 상식, 건전한 사고, 건전한 직장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회의 일탈자(逸脫者)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의 이목을 못 끄는 평화시위는 이빨 빠진 시위고 맥빠진 시위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난폭한 시위를 해야만 귀를 기울이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에게도 다수 국민을 위한 ‘삶의 질 시위정책’이 필요하다.

    (김형기 · 논설위원 hgkim@chosun.com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1/08/2006110860471.html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6110901509

    선진국의 평화시위문화는 오직
    불법시위를 하면 죽음뿐이라는 공감대에서 나옵니다!

  9. 2008.08.25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훤주 2008.08.25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저는 아무래도 많이 긴장이 돼 있는가봐요. 무엇이든 누군가 무어라 말을 하면 그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 하는 식으로......

  10. 파비 2008.08.27 0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76년의 여름,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투철한 유신교육 탓이었겠지만, 10월 유신만이 우리 민족을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곧 100억불 수출과 1000불 소득이 달성 되면, 신동엽 화백이 유신 선전용 팸플릿으로 그린 만화에서처럼 정원 딸린 그럴싸한 집 마당에 자가용을 세워두고 텔레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런 꿈을 믿는 순박한 시골 소년이었다.

    그러나 1976년은 어린 소년에겐 무던히 힘든 한해였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아야 할 만큼 처지가 고달팠던 나로서는 다가오는 중학교 진학이 부담스럽고 겁나기만 했었다.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내야 할 공납금은 창창한 인생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와도 같아 보였다. 그래서 열세 살 소년이 결국 가야할 길은 마을 뒷산에 두더쥐굴처럼 널려있는 ‘갱도’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형들처럼 ‘후끼야마’를 거쳐 ‘사끼야마’가 되어야만 할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형이 죽었다. 옆집의 그 어린 형은 나보다 겨우 세 살 위였는데,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광산에 다녔다. 나의 친형과 함께 일했던 그 형은 더운 여름날 동료들과 마을 앞 개천에서 개를 잡아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어린놈이 싸가지 없이 대낮부터 술을 쳐 먹고 다닌다고 그의 아비에게 엎드려뻗쳐해서 장작개비로 피가 터지도록 맞고도 병반을 들어갔던 그는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막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옆집 어린 형이 상여를 타고 떠나는 걸 바라보며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었다. 아! 어쩌면 내게도 언제든 닥쳐올 운명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러나 그 운명은 다행히도 나를 비켜갔다. 아니 나의 형이 내게 주어진 운명을 거두어주었다. 중학교 입학원서를 숨겨놓고 고민하던 것을 형이 눈치 채고 나의 담임선생님과 상의하여 입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꽤 우수했던 시험석차는 나의 아버지도 결국 내가 중학생이 되는 걸 말리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머리를 빡빡 밀고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하교하던 길에 제무시(광산촌이었던 우리 마을에선 탄차용 트럭을 그렇게 불렀다) 조수석에 매달려 허허로이 지나가던 동창 녀석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안도감에 휩싸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그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몸을 떨던 그 1976년 여름에, 옆집 어린 형이 복날 개 맞듯이 맞고 들어갔던 병반의 막장에서 죽어나온 그해 여름에, 대한민국의 레슬링 대표선수 양정모는 금메달을 땄다. 양정모는 순식간에 국민영웅이 되었는데, 커다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지프 위에서 손을 흔들던 모습은 정말 장하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중앙청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던 그의 얼굴을 흑백텔레비전으로 보며 나는 위대한 영도자의 약속이 정말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던 터였다. 그 순간만큼은 죽은 옆집 형도,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장한 생각만 넘쳐날 뿐이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며 국가에 꼬박꼬박 세금을 바쳤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언저리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올림픽에서 한 개도 아닌 열 세 개의 금메달을 따는 세계 7위의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내 살아가는 모습은 32년 전보다 더 고달프다. 그래도 그땐 지금보다 행복지수라는 게(사실은 그런 게 뭔지도 모르지만) 조금은 더 높았던 거 같다.

    내가 아는 00형님과 친구 99는 비정규직이다. 월급 150 정도 받는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는 나라에서 토요일에 쉬지 못한다.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마저 마음놓고 놀 수 없다. 그냥 주 44시간제나 할 것이지(그러면 비정규직이라도 토요일 오후는 놀 수 있다), 웬 배부른 40시간제 해가지고선...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기도 버겁다. 술값으로 만원짜리 한 장 내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 ............

    세상이 변하고 나서 안하던 짓거리를 다시 한다고 하니 그냥 옛날 추억이 되살아나서 주절거려 봅니다만, 그것도 잠이 와서 못하겠네요. 하여간 길바닥에 사람들 모아놓고 퍼레이드 하면서 빵빠레 울리면 행복해 질까요? 그럼 우린 또 모든 걸 잊고 골빠지게 일해서 잘 살게 될까요?

    위에 보니 약간 맛이 가신 분들이 지다랗게 약 팔고 계시길래 저도 같이 함 맛간 냄새나는 추럭 나부랭이 팔아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셔요~

    이만 취침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