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명박이, 지난 5월 현직 대법관 김황식을 감사원장으로 내정했습니다. 그 뒤 법원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새사회연대 등이 줄기차게 반대했지만 무시했습니다.(2일 국회 인사 청문회를 했으니 이제 ‘다 된 밥’인 셈입니다.)

1. 이미 좀비가 돼 버린 김황식
7월에 이렇게 내정한 현직 대법관 김황식을 감사원장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김황식은 그 뒤 열흘 가량 더 대법관직에 머물러 있다가 18일에야 사표 수리가 확인됐습니다.

감사원장 자리가 얼마나 좋고 얼마나 힘이 센지는 잘 모르지만, 사법부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김황식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말하자면 좀비(zombie)이지요.

김황식은 2005년 10월 대법관에 임명된 뒤 보장된 임기인 6년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이명박에게 ‘스카우트’됐습니다. 사법 독립의 지표가 되는 대법관 자리를 팽개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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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스카우트’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것입니다.  더불어 6월 23일 발표된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성명처럼 “사법부와 대법관에 대한 모독”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말고 김황식이 보여준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이는 대법관(≒사법부)이 권력의 시녀임을 보여줬습니다. 그이는 우리나라 구성원 대다수가 사법부에 기대하는 바를 전면 부정했습니다.

이로써,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의 독립’을 믿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의 독립’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제 생각일 뿐이기는 합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이제, “헌법과 법률을 핑계 삼고 권력 의지에 따라 종속되어 심판한다.”로 번역될 것입니다.

멀쩡하게 재판을 잘 하던 사람이, 법관이라면 누구나 되고 싶어 목을 맨다는 대법관이, 권력이 ‘콜’하니까 곧장 강아지처럼 달려가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대다수 사람들 눈에는 그리 비쳤습니다. 그이에게 이른바 실존적 고민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이로써 ‘법치국가의 가장 중요한 조직적 징표의 하나’이며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삼권 분립의 요청’인 ‘사법부의 독립’(따옴표 안은 대법원 홈페이지에 나오는 설명입니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역사 속 문화유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2. 불의와 부당에 맞선 지난날 사법 파동
더욱 심각한 사태는, 대부분 판사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대법원장을 비롯해 정작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할 법관들이, 적어도 겉으로는, 찍 소리조차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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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방법원 전경. 경남도민일보 사진.

저는 우리나라 사법 역사를 거의 모르지만 몇 차례 파동이 있었음은 알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권력이나 법원 지도부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해 이른바 소장 판사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난 일입니다.

1차 사법 파동은 1971년 7월 서울지검 공안검사가 서울형사지법 판사 둘을, 반공법 위반 항소사건을 ‘똑바로’ 다루지 않는다고 조그만 잘못을 빌미삼아 구속함으로써 일어났다고 돼 있습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법관 150명이 사법부 독립을 요구하며 사표를 냈으며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법무부장관을 불러 직접 수사 중단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역사에 적혀 있습니다.

2차 사법 파동은 1988년 2월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노태우가 전두환 시절 사법부 수뇌부를 재임명하자, 소장 판사 355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소장 판사들은 성명을 통해 △김용철 대법원장 사퇴 △정보기관원 법원 상주 반대 △법관 청와대 파견 근무 중지 △유신악법 철폐 등을 요구했고, 결국 대법원장이 물러나고서야 진정이 됐습니다.

3차 사법 파동은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개혁 기대가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실망스러운 사법부 개혁 방안을 내놓았을 때,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 40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한 사건입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판사들이 집단으로 움직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3명을 추천하면서 본인 독단으로 서열과 기수 위주로 진행한 데 대한 혁신을 바라는 반발이었습니다.

지금 대법관으로 있는, 당시는 서울지법 부장판사이던 박시환은 사표를 냈고 숫자가 150명 안팎이던 소장 판사들은 의견을 모아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3. 이명박보다 무서운 법관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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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난 역사에 비춰볼 때 지금 법원의 이 같은 조용함을 저는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일이, 사법 파동을 일으킨 원인과 견줘 그리 크게 작은 일은 절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황식이 인품이 뛰어나 따르는 후배 법관이 많아서 이리 조용할까도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답은, 그렇다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 입니다. 어쨌든,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제게 남는 짐작은,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불려가면 영전 내지는 발탁이라고, 대부분 법관이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입니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행정부를, 살아 있는 권력을, 대통령과 그 실세를, 어떻게 대하고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겠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스스로 처신을 하면서, 그것을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법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나아가 사법부 그 자체인 법관들은, 이번 김황식 파동으로 죄다 사라져 문화유산으로도 남지 못했나 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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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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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연 2008.09.06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이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왜 나는 몰랐을까?

  2. 다정 2008.09.07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입법/사법/행정의 최고 대장은 대통령이고 엘리트라고 자처해도 불쌍한 엘리트입니다.
    국민이 쥐어준 자신들의 권한도 제대로 행사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아빠 2008.09.08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리위에 누워있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걸 최근 실감했습니다. '다정'님 말씀대로 국민이 쥐어준 권한도 제대로 행사못한다면 어쩌자는 겁니까? 우리가 다시 거둬들일까요?

    • 김훤주 2008.09.08 2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법원은 죽었다, 가 제 결론입니다. 물론 개별개별로 보면 죽지 않은 법관도 있지만, 집단으로서 법관은 이미 숨을 거뒀습니다. 이번에 숨을 거뒀음이 확인됐습니다.

  4. 헨츠 2008.09.14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갑갑한 현실이네요...사법권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