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계형 신용불량자의 공통 특징
생계형 장기채무불이행자(보통 신용불량자라 이릅니다만)의 특징을 아십니까? 모두 그렇다 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사람이 착하다는 점입니다. 또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2005년 겨울 고리대(高利貸) 피해를 취재 보도하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빚을 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빚진 죄인’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최소한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게 됐고 따라서 자기 힘으로 갚지 않으면 죽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가난한 사람은 더욱 살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이자율이 너무 높아 채무가 악순환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 이들은 파산이나 개인회생처럼 법률로 보장된 공적인 구제 절차가 있는 줄도 잘 몰랐으며 그런 방법을 전해 듣고도 자기가 갚아야 한다며 영 께름칙하게 여기곤 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오히려 괜찮다 하고, 그런 방법을 소개해 주는 이들이 더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채권 기관의 불법 추심(推尋)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자기 운명으로 여기는 딱한 이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높은 이자 때문에, 원금은 다 갚았는데도 빚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빚진 까닭도 대체로,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절박한 생계나 어찌할 수 없는 질병이 원인일 때가 많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빚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적은 돈이지만, 800만원을 보험회사에서 대출받아 아내 몰래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원리금 갚는 날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돈 생길 구멍은 어디에도 없고, 돈 갚을 날은 한 치 어김없이 돌아오고……. 카드 돌려 막기도 해 봤지만 그것은 규모를 더욱 키우는 짓일 뿐이었습니다.

거의 3년만에 어찌어찌 겨우겨우 벗어나기는 했지만, 한 달만 갚지 않아도 바로 걸려오는 독촉 전화는 지금 생각해도 징그럽기만 합니다. 그러다 2007년 제가 노조 전임을 시작하면서, 취재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그런 이들을 만날 일이 없어졌습니다.

2. 일흔 넘은 나이에 법정에 불려온 할머니
2006년 여름, 일흔이 넘은 나이에 법정에 끌려 나와 유죄 판결을 받은 70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제가 창원지방법원을 출입할 당시였습니다. 저는 이 할머니를 뵌 적이 없습니다. 판결문에서 이름만 봤을 뿐입니다.

그 날 저는 평소대로 법원장 부속실에 들어가 ‘오늘 무슨 기삿거리 없나?’, 판결문을 뒤적거렸습니다. 사기 절도로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기삿거리는 되지 않았습니다. 선고 형량이 ‘고작’ 벌금 300만원이었으니까요.

내용도 크거나 복잡하거나 색다르지 않고, 신용카드를 써 놓고 돈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생긴, 카드회사에서 고소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판결문을 챙겼습니다. 자체로는 기사가 되지 못하지만, 조금 보완을 하면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는 그것을 기사로 쓰지 못했습니다. 변명삼아 말씀드리자면, 몇몇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제가 바빠져 보충 취재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대로도 기사가 되는데, 제가 잘 써야겠다는 욕심을 벗지 못해 그리 된 것 같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내용은 이렇습니다. 1934년생인 이 할머니는 경남 한 지역의 조그만 임대 아파트에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58년생인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이 따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세 개 만들었습니다.

3. 원금 다 갚고도 벌금 300만원
2001년 6월 발급 받은 첫 번째 카드로는, 첫 날 다섯 차례에 걸쳐 300만원 현금 서비스를 받은 이후 이듬해 11월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쳐 다섯 개 금융기관 창구에서 1200만원을 빼내 썼습니다.

두 번째 카드는 2001년 8월에 발급 받았는데, 마찬가지 첫 날 현금 서비스를 받은 금액이 300만원이었고 횟수도 우연한 일치로 첫 번째와 같은 다섯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카드 돌려 막기를 한 흔적이라고 간주합니다만.

이 두 번째 카드로 2002년 12월까지 인출한 총액은 1100만원이었고 드나든 금융기관 창구는 여섯이었으며 횟수는 24차례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카드는 같은 해 9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썼는데, 당시는 여기에 제 눈길이 가장 많이 갔습니다.

현금 서비스는 가장 적은 300만원을 받았더군요. 그러나 많게는 500만원에서 적게는 100만원까지 여섯 차례 이뤄진 할부 물품 구입이 눈에 띄었고 의료기관 치료비 결제 40만원 남짓도 눈에 밟혔습니다.

치료비는 할머니 편찮아 썼다 쳐도, 할부는 대체 뭐야? 이렇게 여기실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할망구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면서 사치 낭비를 했나, 여기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한 순간이나마 그리 생각한 때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닙니다. 제가 이 할머니 경우를 놓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웃이나 친척이 혼수나 장롱이라든지 값나가는 가전제품 따위를 사려 할 때 이렇게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취재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할머니 아는 누군가가 딸 치우는 데 혼수를 장만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할머니는 자기 카드로 결제하고 대신 현금을 좀 융통해 달라고 사정합니다. 할머니는 아마 당장 돈을 써야 할 데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웃이 선의로 그리해 주면,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할머니는 당장 급한 현금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카드 결제를 12~18개월 할부로 해서 잘게 쪼개어 갚으면 되니까 부담을 분산하는 효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이렇게 해서 돌려쓴 돈이 1500만원이 넘었습니다. 얼마나 사정이 다급했으면 그리했을까, 나중에 할부금 메워 넣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제가 한숨을 다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판결 요지는 이렇습니다. 틀에 박힌 표현이지요. “발급 받은 카드를 사용하더라도 그 대금을 결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4000만원 남짓을 인출하는 등으로 절취한 것이다.” 그러고는 벌금 300만원 선고.

잘 모르는 사람은 4000만원 빼내 쓰고 벌금 300만원이면 할만 하다, 이리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하나가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같은 기간 동안에 갚은 돈이 3000만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시겠지만, 신용카드 이자는(다른 이자도 그런가요?) 이번 달에 못 갚으면 다음 달 원금에 합산돼 나옵니다. 만약 이번 달에 원금 100만원과 이자 10만원(이자율 연간 12%로 쳐서)이 나왔는데 이를 갚지 못하면 다음 달에는 원금이 110만원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연체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자율도 적어도 7~8%가 비싸게 쳐서 계산됩니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만 거치면 이른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리는 사태’로 갈 수밖에 없게 돼 있습니다.

100만원이 110만원 120만원이 되고 한 달 뒤 다시 140만원 150만원이 되고……. 이자가 이자를 낳는 복리에 연체 이자율로 이렇게 1년 정도 구르게 되면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내몰리고 말지요.

저도 겪어본 일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갚느라 했지만, 3년 뒤 갚으려고 보니 제 몫으로 남은 원리금이 800만원에서 1200만원 남짓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다달이 갚은 돈이 적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할머니가 지난 세월 카드회사에 꾸역꾸역 메워 넣은 3000만원이, 아무리 줄잡아도 원금보다는 틀림없이 많으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 주인 노릇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렇다 해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4. 남편 위암 수발에 정신 나갔을 할머니
그런데 알고 보니 원래 형량은 벌금 500만원이었습니다.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가 됐었는데 벌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정식 재판을 청구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담당 판사가 마음 좋게 200만원을 깎아 준 셈입니다.

그래 판결문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양형(量刑) 이유를 훑어봤겠지요. “피고인은 고령으로서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로 위암 수술을 받은 남편과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고 그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참작.”

그러니까, 할머니는 작으나마 생계 지원도 받았습니다. 또 위암 치료비를 카드로 결제한 자취가 없는 데 비추면, 의료 지원도 받기는 받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일흔 넘은 노부부의 쓸쓸하고 처참하고 암담한 나날들이, 눈앞에 바로 그대로 그려지지 않으시는지요?

이제 막 시작된 경기 침체 경제 불황 등으로 한계 상황은 갈수록 더욱더 많아질 텐데, 사회복지가 충분하지 못하고 대부분이 개인 능력에 맡겨진 경쟁지상주의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 더 곰곰 생각해 봅니다.

김훤주

잡식동물의 딜레마
카테고리 건강
지은이 마이클 폴란 (다른세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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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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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8.11.11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요, 따님의 명의로 카드를 석장 발급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얼마나 급한 사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정도를 생각하고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요.
    그리고 카드를 처음 발급 받으면 현금서비스가 300만원까지 되지 않을 겁니다.
    아마 100만 이내일걸요. - (저는 발급 받은지가 오래 되어서 지금은 상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기자님이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직장 생활을 하는 저희는 제 카드가 1장, 가족 카드가 1장입니다.
    요즘 젊은 학생들도 카드를 여러장 소지하고 있는데요, 수입이 없으면서 카드를 발급 받는다는 자체가 잘못 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발급도 문제고요.

    추워집니다. 암튼 할머님 건강하셔요!()

    • 김훤주 2008.11.11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이런 분들 나날살이가 대부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데 있다는사실이거든요. 실정을 제대로 알아보면 상황이 극한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도움 받을 길조차 원래 없었고 질병 따위 돈 들 일은 갈수록 생기기만 합니다. 잘잘못을 따질 겨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분명 법률상으로는 잘못이지만 그리할 수밖에 없는 내적 요인이 충만돼 있습니다요.

      카드 현금 서비스 금액에 대해서는요, 이 할머니 발급 받으신 카드 가운데 둘은 잘 알려진 그런 카드회사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런 카드회사는 연체를 유도하고 불법 추심을 통해 돈을 챙기려는 의도가 조금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머지 한 카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카드회사 것이었는데, 여기 이 카드에서는 하루에 300만원씩을 빼내쓰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현금 서비스 상한액은, 할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카드회사의 문제인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조금(또는 꽤 많이) 편향된 해명 말씀이었습니다. ^.^

  2. ㅠㅠ 2008.11.11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의 삶에 고통이 느껴지네요. 사회가 좀더 어려운 분들에게 열려 있었으면 합니다..

  3. zz 2008.11.11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나라에서 자기책임이란 오로지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에게만 가혹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네요. 건설사나 은행이나, 자신이 벌인 경재활동에 대해서는 모두 자신의 책임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건설사의 아파트를 돈을 주고 사주고, 은행은 자기부실을 공적자금으로 회생하고도 아무런 재재를 받지 않았지요.

    더 큰 비극은 국민들은 이 상황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다는 겁니다.

    • 김훤주 2008.11.11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합당하신 지적입니다. 못 먹고 사는 사람에게 보태주는 것은 근로 의욕이니 자활 정신이니를 좀먹는다면서 못하게 하고 말입니다.

      자본이 자기 책임과 권한 아래 이윤 추구 열심히 하다가 어렵고 힘들어지면 마구잡이 무제한으로 나랏돈을 퍼 갖다 주지요.

      말씀대로, 이런 상황의 비극스러움을 저를 비롯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는 문제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4. 닭장군 2008.11.11 2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장난 아니네요 ㅡ,.ㅡ